[PRESS] 우울하지 않은 우울증 만화, 추락

글 입력 2019.01.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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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우울하지 않은 우울증 만화
추락


삶에서 ㅁ 하나 빼면 살이 된다. 살은 말랑 말랑하고 기분 좋은 촉감을 가졌지만, 종이만 스쳐도 피가 줄줄 난다. 단어를 들이밀지 않아도,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우리의 삶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눈물을 줄줄 흘렸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사랑하는 무언가의 상실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에게 나의 일부를 자연스럽게 스며드들 나누는 것이고, 이별은 대상이 사라진 후 대상에게 나눠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때 우리는 상처가 찢긴 것 처럼 괴로워한다. 나는 슬픔이 기본적으로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의 탄생은 어머니와의 단절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결할 무언가를 찾아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합일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상 이별과 부조화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불확실하고, 상처받기 쉽다.  오늘 소개할 <추락>의 주인공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슬픔을 짊어진 사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그녀는 슬픔으로 가슴이 뚫려 좀 더 고통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때로 무력감에 젖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때로는 곡기를 끊고 잠자기만 한다. 그녀는 정신병리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을 앓고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말이다. 오랜 정신적 고통으로 그녀는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끔찍한 상상까지하곤 했다.

금발과 밝은 낯빛, 발그레한 볼이 매력적인 여자 캐롤린은 밝고 명랑하다. 심지어 그녀는 행복할만한 모든 것을 갖췄다. 예술적 재능으로 충만한 작가이자, 스키를 즐기고,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이가 있다. 주변인들은 그녀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그녀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사실 책에서 묘사된 것만 읽어보면, 그녀가 하고 있는 고민은 내가 하는 고민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을정도로 특이하지 않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두려워하는 것, 더이상 그녀의 신체가 매력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감, 부모님과의 갈등과 통제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불안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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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을 '소소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의지박약한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과거사가 있다고 믿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그녀가 앓고 있는 슬픔은 상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녀가 앓고 있는 이 병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울증의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단순히 개인적 기질이나 뇌 기능 장애로 요약될 수 없는 것이 우울증이다.

단순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도 뭐한 것이, 우울증도 여러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 실제 정신병리진단 책을 뒤져보면 그 기간과 주기에 따라 다른 이름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이유만큼이나 처방전도 다양하다. 상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심리치료 방법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심리치료를 가장한 사기 행위도. 뻔히 보이는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우스운가. 하지만 나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도 마음이 너무 답답할 때는 타로카드를 보러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때 심리상담사를 꿈꿨기 때문에 무엇이 캐롤린의 적응을 도왔는지에 대해 찾기 위해 고민헀다. 캐롤린은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증세가 만성적이고 꽤 심각했음을 고려했을 때, 현재 그녀가 일상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사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그녀는 샤를리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름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꼼꼼히 읽어본 내가 내린 결과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회복 탄력성이고, 또 하나는 샤를리 박사의 접근 방식이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이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탄성이 다르다. 역경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되튀어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외상 후 성장과 비슷하다. 어떤 불행한 사건이나 역경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이 회복탄력성은 습관을 들여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하다. 사실 이 책은 캐롤린의 회복탄력성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우울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만, 땅바닥을 딛고 일어나려 노력했다. 수년의 시간동안 큰 진전이 없었음에도 우울증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에는 쌓아올린 마음의 근력으로 두 발로 굳건히 서게 되었다.

​그녀의 에너지는 책의 색감으로 드러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만화는 끔찍한 우울에 대해 서술 하고 있지만, 만화에서 그녀는 결코 유머를 잃지 않았다. 우울증의 증상에 사용되는 칙칙한 색깔은 노란색을 강조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그녀의 반짝이는 금발머리처럼 가득찬 노란색은 고통스러운 현실에도 다시 튀어오르겠다는 그녀의 의지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가 사용하는 노란색에는 활기가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이 여타 다른 우울증 만화보다 더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도 그녀 특유의 당찬 마음이 이미지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재기에 큰 도움을 준 샤를리 박사에게도 노란색이 가득하다. 박사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노란색 왕관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풍선이 노란색으로 연출되었다. 그녀의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샤를리 박사는 강한 자질을 가진 캐롤린에게 '병은 병일 뿐이고', 그에 비하면 '당신은 행복을 선택할 에너지가 있는 강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줬다. 후에 책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캐롤린과 샤를리은 작가 싸인회에서 마주친다. 샤를리 박사는 캐롤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캐롤린은 입을 쭉 찢고 웃는다. 샤를리 박사를 어깨에 맨 캐롤린은 병자가 아니라, 강한 인간으로 보인다.

​모든 알들은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서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나온다. 결국 모든 성장과 성숙에는 고통이 필요한 법이다. 긴 긴 고통을 이겨내고, 또 이겨내고 있는 캐롤린은 그 누구보다 성장할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를 단순한 '우울증 극복 환자'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표현이다. 그녀를 이야기할 때 우울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그녀는 그보다 성장한 사람이다. 아직도 정신병리에 인색한 사회에게 헌정하고 싶은 책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

추락
우울증 심연 일기

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
정가: 20000원
출판사: 이숲
출간일: 2018년 11월 15일 출간
쪽수: 16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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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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