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하다] 아라시의 활동 중단 "해산은 아닙니다."

2020년 12월 31일의 아라시에게.
글 입력 2019.01.3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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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019년 1월 27일



(글의 시작에 앞서, 이것은 어떠한 정보를 주고자 쓰는 글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서글픈 혼잣말이자 추억의 파노라마를 꺼내보며 그들에게 열렬한 환호와 응원을 보내는 글임을 알린다.)

아주 추웠던 날. 약속 때문에 바깥으로 외출하느라 휴대폰을 주머니에 쳐박아두고 한참을 안보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오고 나서야 주머니 깊숙이 있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나보고 괜찮냐던 일본인 친구의 연락을 받고 잠시 멍- 때리다가 정신을 차리니 그제서야 현실이 눈 앞에 있었다.

[수미야 괜찮니..? 아라시 활동 중단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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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러니까 사태파악을 해보자면, 1월 27일 팬클럽 회원들만 볼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아라시가 하나의 영상을 보내왔고, 그 내용인 즉슨 내년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 이었다. 이유는 리더인 '오노 사토시'의 '쉬고 싶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증.'이라는 의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명이 빠지면 곧 아라시가 아님이 되어버리기에, 데뷔 이후 20년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동고동락 해온 팀워크 좋은 아라시는 리더의 의견에 따라 2020년을 기점으로 모두 다 같이 한 템포 길게 쉬어가는 시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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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급 소집 된 듯한 기자회견이 사람들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저녁 8시에 이어졌고,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갑작스러웠지만, 이미 2018년 6월에 모든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다던 그들은 누구보다 아쉬울테지만 겉으로는 덤덤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밝고 책임감 있게 기자회견을 이어나갔다.

누구보다 좋아했고 응원했던 그룹 아라시는, 그렇게 그룹의 임시 유효기간이라는 이름의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젠간 꼭 아라시 시리즈 칼럼을 연재해야지- 다짐만 했던 나는 이렇게 [동경:하다] 첫 아라시 게시글을 활동 중지 관련 칼럼으로 작성해나가고 있다. 아, 가슴이 답답하고 꼭 울 것만 같다.

여담이지만 아라시가 활동 중단을 발표한 직후, 아라시 유료 팬클럽 가입자의 수가 10만명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일본 소속사는 우리나라와 조금 달라서, 소속 가수의 단독 콘서트는 유료 팬클럽 회원들에게만 참석 권한을 주는데, 이런 상황에 팬클럽 회원 수가 그렇게 증폭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라시의 2020년 까지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서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평소에 팬클럽이나 굿즈 같은 것에는 일절 관심도 없던 내가, 콘서트 같은 걸보러 어떻게 일본까지 돈 쓰고 시간 써가며 가냐며 포기만 해왔던 내가. 어렵사리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팬클럽에 가입했다. 처음 가입해본 팬클럽은 의외로 강력한 소속감을 주었고, 출항 직전의 노아의 방주에 탄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직은 내가 콘서트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난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1. 1999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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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아라시라는 그룹에 대해서 아예 모를 수도 있으니 짧게 설명하려 한다. 우선 아라시는 1999년 9월 15일. 하와이에서 최초 공개되고, 1999년 11월 3일 첫 앨범을 낸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다.

리더이자 낚시를 좋아하고 뛰어난 그림실력을 지녔으며 분야를 막론하고 다재다능한 오노 사토시, 명문 게이오기주쿠 대학 졸업 후 아이돌 최초 뉴스 캐스터라는 수식어를 얻은 엘리트 사쿠라이 쇼, 동물하면 떠오르는 아이돌이자 아라시 내에서 특유의 허당끼로 예능을 담당하고 있는 아이바 마사키, 쟈니즈 사상 최초로 일본 3대 영화상을 휩쓸며 팀 내 연기 입지를 굳건히 다지며 츳코미로 유명한 니노미야 카즈나리, 꽃보다 남자의 도묘지역이자 아라시 콘서트 연출에 누구보다 열정이 뛰어난 아라시 입덕 담당 꽃미모 마츠모토 준 까지.

이렇게 다섯명이 모인 아라시라는 그룹은 일본에서 20세기에 데뷔한 아이돌들 중에서는 아마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신화, 동방신기 등등 장수하는 아이돌이 많긴 하지만, 멤버 변화, 소속사 변화 없이 그리고 6개월 이상의 장기간의 공백기 없이 꾸준히 활동해오며 거의 연예계를 잠식 해나간 이 그룹과는 비교할 대상이 못된다.

사실 그들은 나한테 있어선 좀 특이하게 느껴지긴 했다. 한국 아이돌처럼 군대를 가기 위한 공백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식적인 휴식기를 가진 적도 없다. 늘 일본 티비를 켜면 어느 방송사에선가는 아라시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고, 마트에 가더라도 아라시가 광고하는 상품이 팔리고 있었고(CF도 마찬가지), 언제든 음반 매장에 갈 때면 아라시의 앨범이 늘 베스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저 사람들 저러다가 과로사하는거 아닌가..."싶을 정도로 그들의 연예계 생활이 고되어 보였다. 무언가에 아무리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기계도 과부하가 오는 세상에 인간이 사이보그처럼 20년간 하드한 스케줄을 전부 소화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큰 무리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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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년 ??월 ??일


처음은 마츠모토 준의 드라마였다. 그로 인해 아라시라는 그룹을 알게 되었고, 점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예능을 찾아봤던 것 같다. 어린 중학생 시절에 뭘 안다고 바다건너 연예인들이 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자막으로 읽어내려가며 낄낄댄건지. 어느덧 10년차가 훨씬 넘은 팬이 되어서 일상 속에 자연스레 그들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내게 어느 틈엔가 스며든 수채화 같았다. 진하게 제 자국을 남기는 유화같다기 보다는 딱, 수채화와 같았다. 그래서 정확히 그들을 언제 좋아하게 되었는지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게 아니라, 어느 순간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 계산을 해보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정도로 정의해두자. 그 때부터 2019년이 되기까지 수 많은 활동이 있었고, 수 많은 영화, 드라마, 예능, 시상식 등에서 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아라시였다.

아라시 덕분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었고, 아라시 덕분에 '일본어'를 배우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었고, 아라시 덕분에 첫 해외여행지가 '도쿄'가 되었고, '일본 교환학생'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삶은 그들이 직접 수놓은 변주곡 속에서 언제나 항상 같은 주제로 단지 모습만 변해가며 그렇게 성장해왔다. 떠나려는, 아니 잠시 쉬려는 그들 앞에서 단지 한 명의 외국 팬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득담아 진심을 써내려가는 것 뿐이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행위가 아라시와 팬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애초애 '덕질'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푹 빠지게 했을까? 첫 번째 질문의 내 대답은 아마 '누군가의 결과물 혹은 창작물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진 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지지하고 따르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고, 두 번째 질문의 대답은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하기 어렵고, 이유를 텍스트로 표현하기엔 그때의 분위기나 감정등이 지배적이여서 쓰기 어렵다.'정도가 될 것 같다.

아직도 주변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이젠 아저씨가 된 바다 건너 일본 가수가 아직도 왜그렇게 좋은거야?' 그럼 나는 그 의아하면서도 호기심 넘치는 그 질문에 바로 마주보고 대답하기 위해 진지해지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역시 결론은 하나다.

"아라시니까. 그들이 아라시니까 좋아하는거야."

나는 흔히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보이는 정보력이 빵빵한 팬도 아니고, 그 흔한 콘서트나 시상식 조차 가본 적 없는 일개 해외팬이며, 그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2000년대 중반 무렵엔 경기도 파주에 살며 컴퓨터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초등학생이었다. 딱히 남들처럼 정보를 많이 모은다거나, 최대한 많은 굿즈를 산다거나, 모든 콘서트에 참석한다거나... 그런 것에는 내 팬심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냥 나는 순간과 계절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세월을 함께하는 팬으로 남고싶다. 이따금씩 어떤 주제를 갖고 추억을 되짚어가다보면 정확한 단어나 말로 표현할 무언가가 떠오른다기 보다는, 그 때의 벅차올랐던 감정, 행복했던 느낌, 하늘에 붕 뜬 듯한 기분 등이 떠오르곤 한다. 주로 노래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할 때 위와 같은 상황이 연출 되곤 하는데, 나에게 아라시란 그런 것이다. 단순히 팬-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나의 오감과 함께했던 추억이자 현재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3. 2020년 12월 31일



앞으로 브레이크를 걸기 전까지 약 1년 11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리더의 얼음과도 같았던 굳건한 결단이 모두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은 녹여지고, 일단은 2020년 이후로 모든 활동 중단. 해산은 아닙니다. 언젠가 꼭 돌아옵니다. 라고 말해두긴 했지만, 사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상황 따라 기분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이 오기 전 까지는 아무도 쉽사리 약속의 말을 내뱉을 수 없다. 말에는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니 적어도 오노 사토시에게는 그 책임감의 중압감을 가하고 싶지 않다. 그를 이해 한다거나 놓아주고 싶다거나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팬으로서 그를 기다리다가 먼 훗날 그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와 같은 일반인의 삶이 좋아서 우리들 속에 영원히 동화 되더라도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도 한 명의 사람이었으며 모든 인간이 죽으면 흙이 되어 결국 모든 것이 시작 되었던 땅으로 귀속되는 것 처럼, 그도 그렇게 자기의 삶의 흐름 속에서 자아를 찾아 나가고, 결론적으로 그가 그토록 바랐던 진정한 자신, 아라시 리더가 아닌 오노 사토시라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에는 아무런 비난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까지, 20년간 너무나도 잘 해주었고, 우리앞에 아라시라는 그룹의 리더로서 나타나서 많은 행복과 영감과 치유를 주었고, 사실 정말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기에 언제든 무책임하게 다 내려놓고 떠나버릴 수 있었을테지만, 끝까지 팬들과 멤버들을 생각해서 노력해줬고, 진심을 담아 공손한 마음으로 생각을 전해줬고, 본인의 현재 상황에 감사하며 팬들에게 미안함을 전했고, 마지막으로 아라시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애정을 보여준 것 까지- 모두 다 잘 했다고,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사실 모든 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다. 다른 멤버들의 기분을 생각하자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한번 맺은 인연을 진심으로 소중히 대하고 인연이라는 끈을 팽팽한 상태로 계속해서 유지해나가는 그들의 의리 또한 존경스럽다. 그 와중에 마음을 전한 오노를 생각하면 또 짠하면서도, 아라시라는 존재는 영원했으면 하는 팬으로서의이기심까지. 정말 요 근래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자꾸 맴도는게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 말대로 그들은 늘 잘해주었기에. 그들을 좋아하고 팬이 된 것에는 후회는 없기에. 나는 계속해서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여러가지 형태의 믿음 속에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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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부분, 과거이자 현재이고 또 미래가 될 아라시기에. 진심으로 울고, 진심으로 웃고, 진심으로 고민하고, 진심으로 살아갈 아라시를 응원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본이 그들 문화의 자랑거리이자 큰 일부분인 국가의 보물같은 존재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두의 마음이 행복에 닿기를.

아라시는 다섯명이서 '아라시' 5人で嵐。​




体中に風を集めた僕ら

카라다츄-니카제오아츠메타보쿠라

몸 속에 바람을 모았던 우리들

支えきれない悲しみも

사사에키레나이카나시미모

버티기 힘든 슬픔들도

あなたがいたから笑顔にできた

아나타가이타카라에가오니데키타

​네가 있었으니까 웃을 수 있었어

​無邪気に奏でた不協和音は

무쟈키니카나데타후쿄-와온와

천진난만하게 연주했던 불협화음은

色んな世界を見て来たんだ

이론나세카이오미테키탄다

여러 세계를 보아왔어

気がづけばいつの間にかそれが

키가즈케바이츠노마니카소레가

정신을 차리면 언제부터 인지 그것이

僕らになってた

보쿠라니낫테타 

우리가 되어있었어.

本気で泣いて 本気で笑って

本気で悩んで 本気で生きてる

혼키데나이테 혼키데와랏테

혼키테나얀데 혼키데이키테루

진심으로 울고 진심으로 웃고

진심으로 고민하고 진심으로 살아가

いまがある

이마가아루

지금이 있어

胸をはれる

무네오하레루

​가슴을 펼 칠 수 있어

- 아라시 10주년 기념 곡 '5x10'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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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ぎ行く時の中で

스기유쿠토키노나카데

흘러가는 시간 중에

無駄な物はなかった

무다나모노 나캇타

쓸모없는 건 없었어 

僕らはきみがいると

보쿠라와키미가이루토

우리들과 당신이 있으면 

どこまでも飛んで行けるんだ ずっとずっと

도코마데모톤데유케룬다 즛토즛토

그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어 언제나 언제까지나

. . . 

情けない事

나사케나이 코토

한심했던 일

悔しい事

쿠야시이 코토

분했던 일

あったけど

앗타케도

있었지만

でも僕らはずっと5人て一緒に

데모 보쿠라와 즛토 고닌테 잇쇼니

그래도 우리는 항상 5명이서 함께

あしたを見続けて来た

아시타오 미츠즈케테키타

내일을 계속 봐왔어

. . . 

顔を見ただけで

카오오 미타다케데

얼굴을 본 것 만으로

声を聴いただけで

코에오 키이타다케데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何を思ってんだなんて

나니오오못텐다난테

무엇을 생각하는지

そんなの分かるんだよ

손나노 와카룬다요

그런거 다 알아

5 and you ×20

次は何しようか

츠기와 나니시요우카

다음엔 뭘할까?

気にしないでいいか

키니시나이데 이이카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嘘じゃない今までが

우소쟈나이 이마마데가

거짓말이 아니야 지금까지가 

教えてくれるから

오시에테쿠레루카라

가르쳐줄테니까

だから今はもう一度

다카라이마와모우이치도

그니까 지금은 다시 한 번

僕らからみんなに

보쿠라카라민나니

우리들로 부터 모두에게

ありがとう

아리가토우

고마워


- 아라시 20주년 기념곡 '5x20'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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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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