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췌장을 먹고 싶어졌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고
글 입력 2019.02.03 20: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中 -


[크기변환]c0239682_5b4c7e0919dd5.jpg
 

좋아하는 단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드물지는 않은 경험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많이 듣는다. 실제로 목숨을 내놓는 건 주저할 수 있을지언정,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아낀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일 테다.

사랑은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관계로 재정비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나와 유사한 성격과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은 덜 하겠지만, 많이 다른 사람이라면 변하고 조율하게 되는 폭은 넓어진다.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크기변환]c0239682_5b4c7e0998941.jpg
 

우시지마 신이치로 감독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8)』는 서로에게 오직 한 명뿐인 특별한 존재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괴한 영화 제목과는 달리 두 사람의 사랑은 풋풋하고 산뜻하게 묘사된다. 여학생인 미야우치 사쿠라가 췌장에 생긴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거대한 틀 아래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껴간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시간의 제약을 받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스토리는 솔직히 제법 많다. 그러면서 남겨진 주인공이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를 확인하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은 스토리 또한 적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스토리를 그대로 떠안고 가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개성적인 '관계'에 대해 초점을 두어 꽤 흥미롭다.


[크기변환]K-057.png



관계의 정립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름 중요하다. 특히, 호감을 느끼거나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은 우리가 흔히 아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보이는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연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둘은 그런 의혹들을 에둘러 표현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도 그렇다. 시가 하루키가 우연히 사쿠라의 일기장 '공병문고'를 줍게 된 걸 계기로, 사이가 가까워져도 두 사람은 '좋아해, 사랑해'와 같은 표현을 한 번도 내뱉지 않는다. 오히려 사쿠라는 그런 표현에 반감을 느끼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단어들의 자리는 '췌장을 먹고 싶'다는 낯선 표현이 대신한다.

아픈 부위의 해당하는 동물의 부위를 먹으면 몸이 낫는다는 어느 고전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영 쉽지 않다. 동경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손톱 때를 달여 먹고 싶'다는 일본 속담을 차용하는 표현 또한 그렇다. 단순히 남들과는 다른 개성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하기에는 해석이 조금 아쉽다. 한 번,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루키를 위해 남겨 둔 사쿠라의 유서를 살펴보자.


"나는 말이지.
죽기 전에 전하고 싶었어.
너의 손톱 때라도 달여서 마시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말로는 안 되겠지?
너와 나의 관계는
어디에든 있는 흔한 말로 나타내기엔 아쉬워.
그래서 떠올랐어.
네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中 -


사쿠라의 죽음이 그녀의 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앓고 있던 췌장암이 아니라, 복선처럼 간간이 언급되던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로 생을 마감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다른 이들과는 특별할 거라는 생각은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영화의 표현대로,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두 사람의 표현이 서로에게 닿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애틋함과 아련함은 배가 되어 다가온다. 세상은 1인칭 시점으로 보면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3인칭으로 바라보면 보편적으로 평범한 삶을 사유한다. 나를 중심으로 한 삶 속에서 하루키와 사쿠라는 서로라는 낯선 별을 만났다. 좋아하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 나를 많이 바꾸어 준 원동력이 된 고마운 사람. 서로의 췌장을 남김없이 먹고 싶은 단 한 사람으로 정립되면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관계'로 기억된다.

 
[크기변환]K-058.png
 

그래서 후반부에 어린왕자의 모습을 패려디한 연출은 조금은 뜬금없을 수 있지만, '관계'라는 맥락성을 잡고 보면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사쿠라가 제일 좋아한 책인 '어린왕자'의 줄거리랑 교훈을 떠올리며 보면 더욱 그렇다.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다니던 중, 여우에게 인연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러 별을 여행하고 난 뒤, 어린 왕자는 수많은 장미를 만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보듬어주고 친구가 된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 곁에 남는다. 마찬가지로, 연출에서 하루키는 수많은 벚꽃 중에 사쿠라(=일본어로 '벚꽃')을 고르고, 사쿠라 역시 수많은 행성 중에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하루키를 선택한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나와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사람의 존재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부를 때, 다른 사람의 존재는 잊히지 않고 싶은 '하나의 눈짓'으로 탈바꿈한다. 어쩌면 이렇게 제목을 기괴하게 지은 데에는 자칫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화에 특별한 관계를 부여해보고 싶은 작가의 신선한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청춘, 로맨스, 연애 같은 카테고리로만 분류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


131.jpg
 


영화 예고편






원종환.jpg


[원종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