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유디트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2.0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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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로마, 피렌체, 시에나, 파도바와 베네치아 등 많은 도시에 들러 포로 로마노, 판테온, 두칼레 궁전, 스크로베니 예배당과 같이 유서 깊은 장소들을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우피치 미술관이다.

사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부터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는 날을 기다려왔다. 그 이유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25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작품들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 제목을 정확히 모르더라도 그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릴 만큼 유명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을 가장 기대했던 이유는, 그가 화폭에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이 매우 선구적이었기 때문이다.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 블로그나 SNS, 칼럼, 백과사전 등을 좀 찾아보았다. 어느 블로거는 젠틸레스키의 작품 사진 아래에 ‘가이드분이 최초의 여성 화가라고 짧게 설명하고 넘어가셔서 아쉬웠어요’ 라고 리뷰를 남겼고,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예술적 특징보다 그의 인생에 있었던 굴곡들이 더 자세히 쓰여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해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았던 사람들의 글과,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백과사전 글을 보며 ‘과연 이 예술가의 실력과 작품을 ‘여성 작가’, ‘여류 화가’ 라는 말로 한정할 수 있는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작품 자체가 아닌 그의 인생을 서술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가?’ 와 같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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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다. 역동적이고, 명암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 그의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다른 화가와 비교해 봐도 손색없을 정도다.

젠틸레스키는 여성을 남성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했다. 벗은 몸을 한 채 오묘한 표정으로 누워 관람객을 바라보는 여성, 나이 든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태연하게 거울을 바라보며 목욕을 하는 여성은 더 이상 그의 화폭에 없다. 대신 그의 화폭에는, 적극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림 속 사건에 몰입하는 담대한 여성이 있다.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젠틸레스키의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유디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쪽 손으로는 칼을, 한쪽 손으로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그의 목을 베고 있다. 유디트의 왼쪽에는 하녀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돕고 있는데, 하녀와 유디트는 모두 그림 속 사건 자체에 완벽히 몰입하고 있다. ‘유디트와 하녀’라는 젠틸레스키의 또다른 작품에서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을 바구니에 담아 든 하녀와 유디트가 또다시 등장한다. 이처럼, 목을 베는 장면과 사건 이후 그것을 처리하는 모든 흐름 속에서 유디트와 하녀의 연대를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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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유디트는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젠틸레스키처럼 담대한 유디트를 그려내지는 못했다. 젠틸레스키의 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카라바조는 그의 화폭에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결연하고 담대한 것이 아니라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모습으로 유디트를 그렸다. 클림트는 대담한 모습으로 사건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는 유디트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유혹하는 듯한 느낌으로 유디트를 표현했다. 지오반니 발리오네의 그림 속 유디트 역시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이다.

이처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당대 화가, 또는 이후 화가들과 견주어 봐도 손색없는 화가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작품을 설명할 때 흔히 따라붙는 그의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여류 화가’ 라는 호칭으로 그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인생에서 있었던 사건들도 물론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젠틸레스키가 훌륭한 작품을 남긴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그의 예술가적인 면모나 실력이 주가 되어야 한다. 젠틸레스키가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다른 예술가들과 똑같이, 어떠한 작품을 그려내고 이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필요하지 않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여류 화가’ 라는 호칭으로 한정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예술가였다. 그는 그의 인생사가 아닌, 실력 자체로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한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본, 너무나도 역동적이며 극적인 그의 그림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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