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生을 위한 삶, 고아이야기 [도서]

버려지고, 남겨진 이들이 살아가는 이유
글 입력 2019.02.03 21: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xxlarge.jpg
 


The orphan's tale, 고아 이야기

책 표지에 선명하게 적힌 영어 이름과 한국말로 적힌 이름, 그 영어는 어려운 영어는 아니어서 한국어로 '고아 이야기'라는 말을 들을 때와 영어로 들을 때 별반 차이 없이 들을 수 있다. 제목 아래에는 금발 머리에 붉은색 스팽글이 달린 의상을 입고 무릎에 공중그네를 걸친 소녀가 보인다.

책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때의 유럽이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모조리 학살하던 그 시기에, 네덜란드의 아리아인 노아는 독일군의 아이를 가져 집에서 쫒겨난다. 나는 preview를 쓸 때까지만 해도, 노아를 매몰차게 쫒아낸 부모를 욕했다. 자기들이 낳았다면 그 아이가 적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아가 독일군을 좋아해서 그 아이를 무책임하게 가진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노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걸까.

때론 정말 대답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답하기 곤란해지고는 한다. 나의 생각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의 편을 드는 것이, 또는 그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나의 모습을 대변하기 때문인 것일까. 결국은 나를 욕되게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하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니까.

전쟁이란 건 겪지 않았지만 일상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다. 오늘, 이런 책을 읽었다.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들과,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믿는 여성들을 남겨두고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마치 자기들은 전쟁에서 멋진 승리를 거둔 영웅의 자격만 갖추었다는 듯이, 과거를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미화해버린다. 위안부도 마찬가지다. 본인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며 늘 돌려대기 급급한 그 문제를, 이 책에서도 만나는 것이 불편했다.



아스트리드

노아와 아스트리드가 어쩐지 서로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상황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스트리드의 남편은 독일 나치 친위대였다. 정부에서 유대인과 이혼할 것을 명령하자 그의 남편은 아스트리드와 이혼을 한다. 사랑하지만, 국가에 종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버린 사람. 아스트리드는 결국,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했기에 버려졌다. 그녀는 다시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자기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친구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


KakaoTalk_20190203_213214228.jpg
 


노아

그에 반해서 노아는 아이도 낳고, 유개화차에서 아이를 주워와서 기르면서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남자에게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나이 차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아무런 사랑이 싹틀 여지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남자가 호감을 보였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건가? 서로를 알아간 시간도 없는 사이에 그렇게 깊은 사랑에 빠져서 도망가자는 이야기에 혹할 정도로 그렇게 순진한 나이인가? 독일군과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KakaoTalk_20190203_213213708.jpg
 

사람 성격 차이일 수도 있다. 아스트리드는 전남편과도 그런 사랑을 했고, 피터와도 그런 사랑을 했다. 노아는 독일군이 보이는 관심과 루크가 보이는 관심에도 쉽게 반응해버린다. 나는 그런 노아가 너무 싫었다. 누군가 당신을 바라본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과연 현실적인가.


캡쳐쳐.PNG


처음에 아스트리드는 노아를 질투했다. 서른 후반을 바라보는 자신과 십 대 중반의 노아. 자기보다 젊은 얼굴을 보면서 아스트리드는 자기가 너무 늙어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터가 노아를 바라보는 다정함을 질투한다. 그것은 아마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스트리드는 노아가 아이를 동생이라고 속인 것을 싫어했고, 믿을 수 없는 애랑은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노아는 처음부터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단지 선의를 베푸는 서커스단장에게, 아이를 동생이라고 속였다. 노아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노아는 비겁했다. <작은 곰>에서 나온 호랑이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이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을 받아주고 구해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것이 사실인 줄 알도록,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도 모르도록. 하지만 서커스단장에게는 그런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커스단에 오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버림받음이 있었을까. 저마다 무슨 사연을 안고 서커스단으로 가게 되었을까. 그것을 궁금해하는 것마저 사실은 내가 그 고통 밖에 있기에 갖게 되는 호기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처지 역시 차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상대방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동정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 그뿐이었다. 마치 소설 속 인물들이 실재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 다가서서 이야기하지 못할 것처럼 내 안에 벽을 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그저 가상 인물이었다면 그들에게 감정을 마음껏 느끼고 동정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싫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과 너무 닮아서라고 하고, 자신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건 핑계다. 그냥 싫은 거다. 싫은 것에 이유를 달아서라도 합리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누구를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상처를 숨기기 위해 변명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솔직할 수 없는 사람은 그저 그런 변명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때문이다.


차이.PNG
 


노아와 아스트리드는 정말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는 한 장면이다. 점술을 믿는 장면에서도 노아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미리 듣고 싶어 하고, 아스트리드는 곧 알게 될 텐데 왜 굳이 지금 알아야 하느냐고 한다. 가끔 정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어쩌면 조금은 닮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완전히 닮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비슷한 부분이 있었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운 노아와 아스트리드를 서로 의지하게 하였다.


KakaoTalk_20190203_213215601.jpg
 

차차 서로에게 조금씩 털어놓으면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거짓말을 한 사람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아스트리드가 왜 노아를 믿었는지는 쉽다. 아스트리드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곤 한다. 아스트리드는 노아가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거나, 루크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을 믿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나도 사랑할 사람은 사랑하고, 그런데도 잃을 사람은 계속해서 잃고, 모든 것을 잃어도 살아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이 끝이 나지 않는다. 죽을 만큼 큰 위협을 몇십 번, 몇백 번 거쳤다고 생각해도 또 다른 고통이 덮쳐온다. 갈등 없는 삶은 없고 고난 없는 삶은 없다. 과거로부터 꼬이고 꼬여서 내려온 현재는 버틸 수밖에 없는 관문이다. 절대로 이곳을 피해갈 수가 없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죽음 앞에서 태어난다. 아스트리드와 노아는 살기 위해 발밑이 깜깜한 높은 공중에서 그네를 탔다. 거기서 회전을 하고 곡예를 부린다. 한번 실수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곳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서, 조금이라도 생을 연장하기 위해서 살아갔다. 생을 위한 삶. 삶의 이유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책을 덮으면서,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나에게도 솔직해질 수 없는 그 이야기를 나는, 아무에게도, 어디에서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끊임없는 거짓말이 조금이라도 나의 삶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어나갈 것이다. 끝낼 수 없다면, 끝을 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자신을 잃어버렸다. 내가 쓰는 글인데, 내가 쓰는 것 같지 않은 그런 글을 쓰고 있다. 제자리에서 반복되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글. 답답하다.

두려워진 거지, 너 말고는 다들 솔직하잖아?



<고아 이야기>는 나에게 절대 재밌는 책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고아였다. 누구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면서도 살아갔다. 삶을 꿰뚫는 좌절감,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리는 좌절감. 그리고 이름 모를 '그것'에 대한 죄책감. 나에게 <고아 이야기>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고아 이야기
- The Orphan's Tale -


지은이 : 팜 제노프(Pam Jenoff)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미국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504쪽

발행일
2018년 11월 12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5176-0-1 (03840)


[박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