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CA #242 2019 Jan/Feb [도서]

나를 설레게 하는 단어, 디자인
글 입력 2019.02.04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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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 문화콘텐츠학과에서는 주로 스토리 기반의 콘텐츠 기획을 배웠는데, 과제를 하면 할수록 내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3학년이 되어서야 시각정보디자인을 부전공으로 택해 공부했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그래픽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가 뭔지도 몰랐던 디자인 무식자였다. 그래서 첫 학기엔 1학년 1학기에 들어야 하는 전공필수 과목을 일단 수강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만져본 적도 없는데 디자인 과제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 수업은 디자인의 정의부터 기초 이론과 역사를 훑는 디자인사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곧 그래픽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음 학기에 수강한 디자인세미나 수업에선 본격적으로 그래픽디자인과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공부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그래픽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 심미적인 디자인과 기능적인 디자인,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국가의 디자인 등의 주제들을 매주 고민하고, 에세이를 써서 발표 및 토론을 했다.


이렇게 이론을 탄탄히 다져놓은 덕분에, 이후 걱정했던 타이포그래피나 아이덴티티 디자인, 3D 애니메이션, 사진과 영상 등의 실습수업을 재밌게 배웠고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


하지만 전문 그래픽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학교를 졸업하고는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게 사실이다. 어도비 디자인 프로그램을 굳이 쓰지 않아도 쉽고 간편하게 사진을 편집하거나 문서를 작성할 수 있고,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작업물을 구입하는 편이 시간도 단축되고 퀄리티도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차 디자인과 멀어져가던 와중에 디자인 매거진 CA를 읽었다. 매거진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아트인사이트의 초대가 아니었다면 직접 읽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혜택에 새삼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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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242 2019 Jan/Feb 호의 타이틀은 <New Year, New Star>다. 그와 함께 황금색의 돼지 얼굴 일러스트가 나를 반긴다. 미소를 띤 돼지 얼굴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찬찬히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페이지의 모든 부분(내용과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피까지)을 눈여겨보고,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파란 볼펜으로 코멘트를 적으며 말 그대로 이 잡지를 ‘정독’했다.


디자인적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정성이 깃든 이 잡지를 보자, 디자인이 제대로 된 출판물의 매력이 주는 즐거움이 다시 나를 매료시켰다. 서체의 선택, 자간과 자폭, 빈 공간의 활용, 그리드 디자인, 페이지 넘버, 전체 레이아웃까지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왜 세로쓰기를 하행이 아닌, 상행으로 썼을까 등을 생각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씩 넘겼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알찬 구성의 콘텐츠도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진우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곧 오픈하는 내 친구의 작업실을 기대하게 했고, 디모니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내가 과제로 작업했던 카페의 BI 디자인을 추억하게 했다.


파비오 노벰브레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내 가치관과 정확히 일치해서 크게 동그라미를 쳐놓고 ‘great!’이라고 적어놓았다.



Q. 이전 세미나에서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불가능한 유토피아로의 노력’을 디자인에 있어서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유토피아는 무엇인가요?


A. 삶 자체가 유토피아죠.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모르고, 어디로 당신을 데리고 갈지 모르니까요. 인생은 빈 노트를 채워가는 여정이에요. 결말이 무엇일지, 심지어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도 모르지만, 한 줄 한 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운명이니 미리 정해진 것이니 하는 것은 없어요. 우리는 그저 각자 펜을 들고 써 내려가면 되는 겁니다.


- 파비오 노벰브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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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사 ‘로고가 막 움직이는데’는 로고 디자인의 현재를 진지하게 논의해보는 과정이었다. 현시대 속 로고의 위치와 로고 디자인 구성 과정, 로고 디자인 트렌드, 잘된 로고 디자인의 사례, 움직이는 로고 디자인의 중요성, 훌륭한 로고의 조건으로 따라가는 흐름은 마치 강의를 한 편 들은 것 같았고 로고 디자인의 생태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특집 기사 ‘반짝이는 샛별들’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내딛는 신입 디자이너들을 소개하고, 작년에 샛별들로 소개된 디자이너들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이다. 비슷한 또래로서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인상 깊었던 건, 대부분이 ‘졸업 직후 못 해서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나도 1년 뒤 같은 대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코 시미즈의 인터뷰에서도 노벰브레가 했던 것과 비슷한 대답이 있었다. 요즘 내 머릿속을 가장 지배하는 생각이라 더 눈에 잘 띄는 걸지도 모르겠다.



Q. 다음에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A. (중략) 사람의 일생에서 어느 시점에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는 언제든 생길 수 있고, 특히 전혀 예상치 못할 때 그런 경우가 많죠. 우리는 해답을 구하지만, 인생에 늘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죠. 동시에 답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인생은 흥미로워요.


- 유코 시미즈 인터뷰



이외에도 LICO라는 콘텐츠 회사의 브랜드 디자인, 헌인마을 사회적 예술 활동 프로젝트, 디자이너의 정신적 건강 이슈,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공모전과 SNS,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트렌드까지. 모든 콘텐츠의 구성이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났다.


이 잡지 한 권으로 내가 디자인을 부전공하며 공부했던 모든 것을 복습했고 또 새롭게 공부했다. 정말 철저하게 정독하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그중에서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나도 편집 디자인을 직접 한 독립출판물을 발행하고 싶다.’


다행히 나는 글 쓰는 것을 즐기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전에 했던 독립출판은 외부 디자이너에게 편집 디자인을 맡겨 결국 만족하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이번엔 내가 직접 컨셉, 글, 디자인까지 모두 해서 스스로 만족스러운 출판물을 발행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오랜만에 무언가 하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고 몸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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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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