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너, 너는 나.

도서 <고아 이야기> 리뷰
글 입력 2019.02.0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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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서 <고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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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을 만났다. 어쩌면 이 책은 처음부터 나를 슬프게 할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전쟁, 여성, 비극. 책과 영화, 공연 장르를 따질 것 없이 항상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등장인물들은 나를 그들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든다. 줄거리와 구성, 결말 등 책을 평가하는 모든 요소를 다 떠나, 두 여성 캐릭터들의 감정과 인생을 엿보는 것은 서글프면서도 행복한 일이었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에 놀랐으나,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책 <고아 이야기>는 공허하고 참담한 아픈 역사의 한 자락을 견뎌낸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삶을 그들의 시선에서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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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서커스'라는 소재는 늘 내게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아마도 '서커스'라는 것을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는 서커스라고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살짝 본 것이 전부다. 그래서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이야기가 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문득 서커스라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걸친 이 공간이 진실과 거짓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던 두 사람의 관계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와 아스트리드


부끄럽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노아와 아스트리드가 당연히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 소녀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또래의 소녀 둘이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서로를 위하고 도우며 살아남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여성 등장인물과 그 둘의 관계는 내게 더 새롭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서로를 신뢰하고 믿지 않으면 곡예를 제대로 해낼 수 없고, 자칫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딘가 위태롭고 삐걱거렸다. 테오의 존재와 자신의 과거를 거짓으로 둘러내며 상황을 모면하는 노아와 갑자기 서커스단에 나타나 함께 생활하게 된 낯선 여자아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아스트리드의 모습을 보며 괜히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두 사람이 안쓰러웠다.

숨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철저히 숨기고, 그럼에도 자연스레 생기는 연대감과 신뢰에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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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 나는 너


책을 읽으며 나는 노아와 아스트리드,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내가 판단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옳다, 그르다, 이렇게 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다-와 같은 수많은 가치 판단들과 가정들은 무의미했다.

책을 읽으며 노아도 되었다가, 아스트리드도 되었다가, 때로는 그 안에서 빠져나와 제3자가 되었다가, 테오가 되었다가, 피터도 되어보았다. 나 같으면 무서워서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 그 삶을 피워내고, 그러다가 스러진 모두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얼마나 진실되었나'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내가 위태로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었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 옛날 어딘가에서 힘겹게 살던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읊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내가 쓰고 있는 내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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