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설날 차례상, 좋아하십니까? [문화 전반]

허례허식이 되어버린 화려한 차례상
글 입력 2019.02.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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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설날에 고향은 다녀오셨는지. 아침에 제사 지내고, 음복하고, 한 상 가득한 제사 음식들을 먹었는가? 아버지가 말해주시길, 자기 어릴 적에는 명절이나 제삿날이 가장 기다려졌단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음식들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명절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기름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그 많은 튀김과 전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 남기는 걸 매우 싫어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억지로라도 먹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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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SBS 뉴스



올해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발표한 차례상 비용은 약 35만 원이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의 상 차리기 기준을 지킨다면 말이다. 차례상 준비는 설 한참 전부터 시작된다. 할머니는 한 달 전부터 언제 장이 열릴 때 미리 과일을 사두고 생선을 손질해놓을지 계획을 짜놓으신다. 그리고 고생할 며느리들을 위해 몇몇 음식을 미리 준비해놓고 기다리시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명절을 좋아했다. 절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음복할 때는 쓴 술을 처음 마셔보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왜 이런 걸 먹는 거야?"하기도 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명절마다 멋진 양복이나 한복을 입으셨고, 항상 비슷한 덕담을 하시며 세뱃돈을 주셨다. 할아버지는 제사에서 가장 먼저 절을 하셨고, 의식을 주도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지금은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아서 하신다. 이제 제사를 주도하는 것이 나의 아버지 세대라는 말이다.

제사를 지내는 방식은 똑같다. 그러나 느낌은 어린 시절과 다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할머니는 이제 제사 음식량을 줄이겠다고 하셨다. 지금 올린 차례상에도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데, 예전에는 대체 얼마나 거창했던 것일까? 어릴 때는 제사 준비에 참여를 안 하니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의문이 든다. 이렇게까지 음식을 차려야 하나?


***


어린 시절에는 제사를 지낼 때 어른들이 '노할머니가 와계셔. 니가 절을 하면 좋아하실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절하면서 증조할머니께 '할머니, 저 왔어요. 저 이번에 학교 들어가요!'하고 마음속으로 말씀드렸다. 영적이고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이렇게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기능을 한다. 제사 풍습의 출처로 주로 거론되는 <격몽요결> 7장 '제례'에서 율곡 이이는 생자가 제례 활동으로 하늘로부터의 '본연지성'을 깨달아 유교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음과 더불어, 생자가 제례를 통해 망자를 슬퍼함에서 공경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감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요즘 설날의 제례에서 그 의미를 찾기란 어렵다. 설을 포함해 제사상을 차리는 일은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 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일치고는 좀 많다. 중요한 것은 이 행사가 너무 잦고 간단한 일도 아니어서 제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를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가까운 가족의 제사야 의미 있게 지낼 수 있다고 해도, 전국 각지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친척들이 자잘한 모든 제사에 매번 참여하기는 아주 힘들다. 게다가 보통은 그 집의 장손이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데, 그것은 그 가정에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사는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식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이 훼손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이는 예(禮)가 지나쳐서 3년 동안이나 죽을 먹었다 하는데, 만일에 그가 참으로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고 털끝만큼도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보다 지나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 옳다 하겠다. 그러나 만일 효성이 지극하지 못한데 억지로 지나치게 예를 차리는 것이라면 이는 제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격몽요결』, 「상제」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다 바치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니, 집안이 가난하면 가산의 규모에 따라 하고, 병이 들었으면 제 근력을 헤아려서 제사를 행한다. 재력이 미치는 자는 예법대로 행할 것이다.


『격몽요결』, 「제례」



이이는 제례에서 중요한 것은 예식이 아닌 공경하는 마음이라고 명확하게 말한다. 할아버지는 유교적 가치를 품고 사시는 분이었다. 그가 정립해놓은 집안 행사들과 내게 주신 가르침들은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또한 그에게는 족보와 성씨가 아주 소중했다. 그에게 명절과 제사를 지내고, 묘를 관리하는 등의 일은 이 씨 가문을 더욱 견고히 뭉치게 만들고, 명예를 드높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화려한 차례상이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족보가 그리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그것은 이제 예전 같은 힘이 없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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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그럼에도 우리가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례 자체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지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명절에 여전히 남아있는 의미는, 설날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는 일 년에 몇 없는 날'임에 있다. 그것은 정말로 잃어버리면 안타까울 소중한 가치다. 많은 친척들을 한 번에 뵙는 것은 명절이 아니고서야 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린아이에게 큰 가족의 구성원임을 알려주며 그의 정체성을 형성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의 명절은 자연스레 거창한 제례보다는 '가족의 유대'쪽으로 가치를 옮겨가고 있다. 주변 친구들의 집에서도 대부분 부모님과 이야기하여 차례상을 간소화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기도 하며, 가족 다 같이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형식적인 제례에 힘을 쏟는 것이 우리 집 연휴 대부분의 일정이다. 아직 많은 가정들이 우리 집과 같을 것이다. 왜 변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 이유가 어른들이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지나친 예식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 같은 경우,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세월을 제사를 준비하는 데 보냈다. 바깥에서 일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명절이나 제사는 무엇보다도 가장 큰 행사였다. 차례상을 잘 준비해내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임무였던 것이다. 집안의 가장 큰 행사인 명절 제례를 관장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주었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요소였다. 그들에게서 갑자기 이 중요한 연례 의식을 빼앗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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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의 제사상 진설도.

과일의 종류나 방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즉, 제물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외에도 명절 허례허식의 부작용은 너무도 많다. 사실상 '가족 유대'의 기능도 잘 발현되고 있는 집은 별로 없다. 젊은이들이 명절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잔소리에 상처받기 때문이다. 어색한 친척들과의 대화는 공허하다. 작년에 유명했던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에서 잘 나타나듯 말이다. 게다가 막상 그 상다리가 휘어질듯한 차례상 자체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최근에 발명된 전통일뿐이라니 실체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것은 차례상에 대한 불합리한 집착뿐이다. 껍데기밖에 없는 명절 의식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진정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풍습을 유지하고 싶다면 새로운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고 전통의 가치도 지킬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상다리 휘어져야 조상에 대한 예의? 차례상에 대한 오해, SBS 뉴스, 2019.02.04​


‘차례상 차리는 법’ 언제 어떻게 유래됐나, 주간경향, 2014.09.16


[사유와 성찰]“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경향신문, 2018.09.21


[인터뷰] 황교익 "청와대선 왜 왕의 음식을 먹을까?", 프레시안, 2017.01.19


문미희, 2017, 『격몽요결』의 「상제」·「제례」장에 나타난 의례의 교육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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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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