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이 보지 못하는 색깔들 [전시]

글 입력 2019.02.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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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에 하양을 섞으면 나오는 색을 우리는 하늘 색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하늘은 하늘 색인가? 하늘 색은 하늘의 색이지만 하늘의 색은 하늘 색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늘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하늘의 일생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하늘의 일생


구름을 깨끗이 빨아 널고 나서야 꽃을 따러 갈 수 있었다


엄마의 걱정은 잠시 뒤꽁지에 숨겨 놓고 나는 몰래 바람의 옷깃에 매달렸다
누군가 내 뺨 언저리에 보조개를 조각해놓고 간 걸 나는
뒤늦게 알아 차렸지만 이미 발뒤꿈치는 봄을 간질이고 난 후였다


제비꽃이 켈록
재채기를 했다


나는 바구니 가득
흔적들을 주워 모았다


그림자가 한 뼘 더 커졌을 때
나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언덕 너머로 지켜보는 내일을 향해
곧 꺾일 꽃들이 살랑대며 눈웃음을 치고 있었고
나는 어둠을 피해 달렸다


태양이 꼴깍꼴깍 마지막 숨을 내뱉기 직전
나는 어느새 길어진 팔을 뻗어 제비꽃을 흘려주었다
와그작 와그작 꽃잎을 씹는 입술 사이
찐득한 즙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나는 치맛자락을 펼치고 떨어지는 하루의 부스러기들을 받아 들이마셨다


보랏빛으로 물든 시간 속
서늘한 입김이 뿌옇게 일렁였다


벌써 내일이 어둠을 걷어 내기 시작해서
나는 더 이상 눈을 깜빡일 필요가 없었다


점차 느리게 들이마셔지는 새벽에
내 목을 죄여오는 절망을 느꼈지만


곧 날아와 꽂힐 햇살 조각을 생각하다 그만
어제를 까먹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공개한 적이 없기에 조금 부끄럽지만 이 시는 내가 느껴왔던 다양한 하늘의 색깔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색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한정되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느낌에 시각적인 요소도 포함시킨다고 보자. 이렇게 하늘의 색은 다양한데 왜 우리는 한 가지의 색에게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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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Delaunay, 1915, Nu à la toilette (Nu à la coiffeuse)

oil on canvas, 140×142cm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피카소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전시장에는 피카소보다 다른 입체파 작가들의 작품이 더 많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은 로버트 들로네의 ‘Nu a la coiffeuse(욕실에서 알몸으로)’ 였다. 이 거대한 캔버스를 멀찍이 서서 바라보면 우리는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를 보게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그 형체는 기초적인 도형들로 해체된다. 접혀 있어 더욱 사실적인 살들과 탐스러운 머리칼은 사실 동그라미에 불과할 뿐이다.


색조차 일반적이지 않다. 사람을 그릴 때 푸른 색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피콜로도 아닌데 이 그림 속 여성의 몸은 옅은 파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점에서 의문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그림의 사실적인 느낌을 가중시킨다.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색의 의미 자체를 재정립시키는 듯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한동안 머리 속에서 그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07_로베르 들로네_리듬 no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jpg

Robert Delaunay, Rythme n°1

décoration pour le Salon des Tuileries, 1938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아 보이게 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처럼 만든다는 것. 이것이 입체주의의 중심 원리이다. 큐비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형태의 재조합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이상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단순히 피카소가 시도해왔던 여러 면을 한 번에 하나의 면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나 사물을 도형으로 단순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들로네는 그 단계에서 한 층 더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색채와 동시성을 주요한 화면 구성으로 활용하는 ‘오르피즘’을 발전시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색의 전형성을 타파하고 색의 스펙트럼 전체를 사용해서 사물을 표현함으로써 그는 더 많은 걸 화면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욕실에서 알몸으로’라는 그림에서 내가 그곳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은 빛을 느낀 것과 같이, 그는 ‘당연하지 않은’ 색의 사용을 통해 그림 속에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 느낌, 상황 등을 덧붙일 수 있던 것이다.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당연한 색깔들과 전형적인 이미지들. 거기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보다 다양한 아름다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장을 나왔을 때 나는 그제서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색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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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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