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첵

11개의 의자, 11개의 몸짓
글 입력 2019.02.0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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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CKL 스테이지에서 진행 중인 연극, <보이첵>을 보고 왔다.

24세에 요절한 독일 출신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미완성 유작인 보이첵은, 실존 인물이었던 ‘보이첵’이 자신의 연인 ‘마리’를 살해하고, 살인죄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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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2 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는, 시키는 대로 밖에 할 수 없는,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의사들과 중대장은 나약하기만 한 보이첵을 향해 인간으로서 가치 없음을 놀리기만 한다. 돈 때문에 악대장과 놀아날 수밖에 없는 '마리' 결국 보이첵은 어떤 선택을 할까.




왜, 저들은, 웃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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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 포스터를 접했을 때는 섬뜩함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게,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팔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동작은 한 마리의 지네를 연상케 했다. 보이첵의 줄거리와 상반되게 활짝 웃고 있는 얼굴 표정은 다소 해괴하기까지 했다. 머리를 짜매도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들은 왜 웃고 있는가. 저 의자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체 11개의 의자만으로 무엇을 표현하겠다는 것인가.



11개의 의자, 11개의 몸짓



텅 빈 무대, 11명의 배우, 11개의 의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의자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였다.

내가 지금도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의자, 어느 장소를 가도 가장 기본이 되는 가구로 존재하고 있는 의자. <보이첵>은 이 의자들이 모이고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위치를, 그들의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다.




숨을 곳은 의자 하나 뿐.



"보이첵! 보이첵!" 시도 때도 없이 보이첵을 찾는 목소리들은 보이첵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은 의자를 들어 올리고, 의자 옆에 서서 시도 때도 없이 보이첵을 불러댄다. 그 중 가장 우위에 있는 인물인 중대장은 때로는 한 발을 의자 위에 두기도 하고, 심지어는 의자를 비스듬히 한 채 누워서 배를 긁적거리면서 보이첵에게 명령한다. 그렇다면 보이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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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을 자리가 없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찾기 위해 시종일관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힘겹게 의자 하나를 찾은 후에는, 의자 속에 자신의 얼굴을 끼워 맞추기 바쁘다. 그는 그렇게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의자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주인공이 사물과 마주하는 순간, 사물은 주인공의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고, 동시에 감정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의자로 스스로를 가두는 보이첵의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주인공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명령하는 윗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유일한 방패가 바로 그 의자였을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


연극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을 흉내내는 원숭이!'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개!' 동물원 서커스에 나오는 진기한 동물들에 대한 표현이었다. 갑자기 이런 씬이 왜 나오나 싶었다. 하지만 바로 등장한 생체 실험 씬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의사를 기다리는 보이첵은 의자 두개 사이에 위태롭게 누워있었다. 보는 내내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너무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한참을 그렇게 딱딱한 의자 사이에 목과 다리를 걸친 채 누워있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인간이라는 말보다 '최하층'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보이첵에겐 이처럼 의자에 앉을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맴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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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허공에 떠 있는 보이첵에게 묻는다. '완두콩만을 먹었나?' '지금, 여기서, 소변을 눠 보겠나?' 뒤따라온 수많은 의사들을 앞에 두고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참으로 비참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함께 따라온 의사들은 동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며 메아리친다. "완두콩..완두콩..완두콩..", "소변! 소변! 소변!" 앞서 동물원에 나왔던 동물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사람을 흉내내는 원숭이.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개... 환청에 시달리며 망가져가는 보이첵을 향해 미소 짓는 그들은, 필시 자신들의 실험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그들은..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동물이었다. 아니, 악마였다.



악마의 속삭임


보이첵의 연인 마리는 길거리 여성 출신으로, 가난하지만 매우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중대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원초적인 본능에 따르며, 중대장과 놀아나는 그녀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홀로 집에 있는 마리는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자신을 '화냥년'이라고 칭하며 저주를 서슴치 않는 그녀는 몸도, 마음도 온전치 못했다.


보이첵보다 확연히 높은 자리에 있는 중대장, 그의 몸짓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분명 악마의 속삭임과 같았을 터. 그녀는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보이첵이 자신들의 불륜을 알게 된다 할지라도, 그는 중대장보다 훨씬 무능력하기에 어쩌지 못 할것이라고 말이다. 알면서도 덮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중대장이 아닌, 마리.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무능력해서 아무것도 못 할것만 같던 보이첵은 끝내 마리를 살인하고 만다. 보이첵의 비참한 캐릭터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결국 그가 죽인 것은, 그보다 높은 위치에서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던 사람들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위치를 함께 하고 있던 마리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마리를 죽이고, 하늘을 바라본다. 원작과는 달리 보이첵이 처형을 당하거나 하는 씬도 없다. 단지 홀로 남은 보이첵이 공허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렇게 연극이 끝이 난다.


왜 중대장이 아닌 마리였을까. 그렇게 홀로 남은 보이첵은 어떻게 됐을까. 정말 공개처형을 당할까, 아니면... 자신의 연인을 죽인 미친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 평생을 외롭게 살아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연극 속 보이첵이 죽음을 면한다고 해도 죽음에 버금가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 결국 이 복수는 자신을 더욱 파멸로 이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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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굴레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사회를. 금수저가 금수저를 낳고, 흙수저가 흙수저를 낳는 현 사회는 보이첵이 살았던 그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난이 잘못을 되돌리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인생에 있어서 더 많은 선택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가 좀 더 나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체실험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더라면, 윗사람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그가 환청에 시달리며 점점 미쳐갈 일도, 무능력함을 탓하며 자신의 여인을 뺏길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칫 난해할 수도 있는 극이었지만 대사, 의자의 사용, 배우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연극이었다. 극을 보는 내내 악마의 존재를 의심하고, 비참함의 무게를 견디려 애써야 했던 것은 이 연극이 그만큼 완벽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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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하는스누피
    • 잘 읽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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