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에 대한 단상 -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글 입력 2019.02.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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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단상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_표1.jpg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다. 한동안 영화에 빠져서 책을 잘 읽지 않다가 (1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아직도 읽고있다) 오랜만에 빠른 시간 안에 완독했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이 책은 다분히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서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쉽게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중국의 소설가 '위화'가 곳곳에서 강연을 하면서 언급한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시간 별로 분류해 엮어낸 기록이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이 있기도, 비슷하지만 은근히 달라서 이어지는 내용도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에 바탕을 둔 일화들이 많아서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을 조금 더 가지고 있었다면 더 알차게 읽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국문학과 영미문학을 자주 읽어서, 중문학에 대해서는 딱히 손에 꼽을 작품이 없을 만큼 중국문학과는 인연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중학교 때 중국 드라마로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EBS TV 동화같은 선량하고 교과서 같은 내용에 질려버린 이후론 중국 콘텐츠에 대해 거의 관심을 거뒀다. 덕분에 중문학에 대한 비루한 지식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이 작가의 유명한 작품부터 하나 둘 읽어봐야겠다.


물론 작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전체적으로 글과 문학, 독서에 대해 논하는 내용들이 많기에 읽어내려가는 재미는 있었다. 중간에 피식 피식 거릴 만한 부분도 많았는데 하나의 통일된 주제가 아니다보니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짚어보는게 감상을 남기기에 더 적절한 방법인 듯 하다.




제목은 아직도 미정입니다




이 부분의 디테일은 아주 훌륭합니다. 절대로 나서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이 결국에는 자원해서 나서게 되는데요. 생각을 바꾸게 된 건 모든 사람들이 권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사소한 미신에 근거한 도박 때문이었습니다.


p. 59 / -오르한 파묵의 《눈》을 언급하며



소설은 사람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포착하고 하나의 세계를 섬세하게 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번 독립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를 새삼 실감했는데, 소설은 하나의 세계관 자체를 창조해내는 일이어서 더 많은 노력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심리적 변화의 순간을 포착해 서사의 장치로 삼는 소설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소설가의 장애물




저는 제 첫 번째 소설이 엉망진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뭘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몇 문장은 유달리 좋았던 것 같습니다. 뜻밖에도 제가 그토록 멋진 글귀를 써낼 수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의기양양해졌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지요. 이것이 글쓰기가 주는 보답입니다. 그 소설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63



모든 글을 쓰는 이들은 예민하고 연약하다. 영어의 fragile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작가'란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의 흐름을, 일상의 순간들을 예민하고 포착하고 사유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섬세한 언어로 여러 겹의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지만, 작가들은 끊임없이 사유하고 기록한다. 예민함과 연약함, 섬세함을 유지하면서 이 작업을 지속하기에 이들은 동시에 강하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글이 주는 보상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결과 등이 말이다.




한 사람과 한 잡지




따라서 작가가 소박한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은 화려하고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전자에는 숨을 곳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p.104



이 구절은 글이라는 장르에 대한 엑기스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글은 짧고 단순할 수록 더 잘 쓴 글이다. 화려하고 어려운 단어는 위의 말처럼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에 급급할 뿐 진짜 글의 목적인 '대화'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현학적인 글을 쓰지말자고 늘 다짐하는데 단순하게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다.



마침내 저는 제가 얼마나 멍청한 지 의식했습니다. 침대를 바꾸지 않고 한 침대에서 잤다면 한 침대의 벼룩들만 배불리 먹였을 것이고, 다른 침대의 벼룩은 먹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저는 그때 벼룩에 대처하던 방식으로 완성하지 못한 저의 장편소설들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구상에 유혹되지 않을 것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현상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p.120-121



이 구절은 비단 소설이나 글쓰기 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에 가하는 일침 같아서 읽으면서도 움찔했다.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빠른 결과만을 바라며 침대를 옮겨다니는 그 일을 나도 계속 해왔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큰 것을 쥐고 있는 사람들만 보며 나는 왜 큰 것을 가지지 못할까 화를 내기도 했다. 글을 대하는 자세를 넘어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라 무척 마음에 들었다.




넓은 문학을 말하다




“우리가 소설에서 세 사람이 걸어오고 한 사람이 저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읽을 때, 우리는 이미 3 더하기 1은 4라는 수학적 사실에 도달해 있고, 설탕이 뜨거운 물에 녹는 장면을 읽을 때는 이미 화학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수학, 화학, 물리학도 피해갈 수 없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와 정치는 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124



문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는데, 1학년 때 한 문학 선생님이 "문학이란 무엇입니까?"란 문장과 함께 엄청난 카리스마로 첫 등장하셔서 반 아이들을 초토화 시키신 적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까진 자리에 앉을 수 없는 랜덤 발표가 이어졌는데 그 날 이후 꽤 오랜만에 문학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순간이었다. 소설의 묘사 하나하나가 수학, 화학, 물리학, 정치, 사회, 경제와 연결되어있다... 비약인 것 같지만 충분히 맞는 말이기에 독특한 해석이다 싶었다. 문학이란 참 거대한 존재다.



수많은 작가들이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에드거 엘런 포는 거의 매일 자신이 곧 죽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잘 살았지요. 게다가 음산한 이야기를 여러 편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오히려 건강이 매일 안 좋아진다고 느꼈지요.


p.128



이 구절은 내가 우울증에 관해 쓴 에세이를 읽은 엄마의 반응과 정확히 일치했다. 글을 읽다가 되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읽기 중단 선언을 했었는데, 나는 활자가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엄마에겐 그럴지 몰라도 우울이라는 감정을 겪어본 이들에겐 (제한적인 숫자지만) 공감을 끌어내던 글이기에 반응이 달라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내가 그런 글을 써냈다는 것에 뿌듯하기도 했다.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은 뉴스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


p.136



과거의 문학과 현대의 문학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갸웃한 구절이다. 요즘의 문학들을 보면 꼭 미래를 위해서 쓰이는 작품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반영하고 그를 통해 공감을 끌어내고 독자들을 위로해주는 작품들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에 저 문학이란 '소설'만을 의미하는 건가, 싶었다.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말 것




하지만 작가는 다릅니다.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이상이 있지요. 작가는 어떤 작품에서 이 이상을 완성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상은 작가가 스물 남짓일 때, 심지어 십 대일 때 고전작품을 읽으면서 갖게 되기 마련이지요.


p.178



“산해경”에 나오는 '만만'이라는 새


몸뚱어리가 반밖에 없고 날개도 한 쪽만 있는 새이지요. 이 새는 반드시 다른 한 마리와 짝을 이뤄야만 날 수 있습니다. …(중략)… 작가는 비평가와 함께 날기를 원치 않고 비평가도 작가와 함께 날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날지 않으면 둘 다 날 수가 없지요. …(중략)… 이것이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입니다.


p.179




*

그 밖의 좋았던 문장들


결국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152)

작가가 가치라면

평론가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79)

문학 전통은 개방적인 것이라

영원히 완성될 길이 없지만

영원히 완성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267)



이 책은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비평가와 작가의 관계에 대해, 글을 읽는다는 독서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던진다. 사실 책 내용도 책 내용이지만, 책을 읽으며 나의 글쓰기 습관에 대해, 독서 습관에 대해 계속 반문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은근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지만, 분명히 글쓰기가 주는 쾌감이 있기에 어떤 형태든 글을 써내려가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활자를 읽고 활자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해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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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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