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의 얼굴창조전 [전시]

15개의 영화, 500여점의 작품
글 입력 2019.02.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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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장 도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배우가 분장 아티스트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되기 전 나를 버리고, 영화 속 '나'로 다시 창조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분장 아티스트는 배우가 믿고 자신을 맡길 수 있도록 가장 최적화 된, 가장 좋은 분장도구를 선별하고 사용해야 한다.

 

- 조태희 분장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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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의 마지막날,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영화의 얼굴 창조 전'을 보고 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분장감독으로 꼽히는 조태희 감독의 분장예술이 담긴 15편의 영화, 총 500여점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분장'을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전시회


이번 전시는 아라아트센터의 지하1층~ 지하 4층으로 이어지는 총 7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1층 - 광해관

지하 2층 - 역린 & 남한산성관

지하 3층 - 사도 & 창궐관

지하 4층 - 안시성관 & 분장의 역사월



개인적으로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동안 재밌게 봤던 사극의 분장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분장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과거의 인물들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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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재밌게 봤던 영화의 분장에 더욱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광해>는 꽤나 비중있게 전시되고 있어서 장신구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해 보다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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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식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용 주물 비녀였다. 평소에 영화를 볼 때 배우의 분장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보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용장식은 그 화려함에 끌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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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위에 용을 얹어내는 작업은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광해>를 통해 처음으로 시도한 작업이라고 한다. 용주물 비녀가 너무 무거워서 국내 유명 피규어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해서 무게를 10분의 1로 줄이고서야 겨우 상투에 얹을 수 있었다고. 작품마다 적혀 있는 조태호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웠다. 이런 문구가 없었다면 그저 '세심하게 만들어낸 용 장식이구나'하고 말았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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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누가 독약을 탔는지에 대해 광분하며 광해가 수라상을 뒤엎는 장면에서 사용된 상투관이다. 광기 어린 광해의 날카로운 이미지와 일치시키기 위해 일부로 눈에 띌 정도로 뾰족하게 제작했다고. 이처럼 우리가 흔히 지나쳤던 모든 분장에는 각각의 인물의 성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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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물고 있는 상투관의 모습이다. 용의 발톱이 여의주를 감싸고 있는 형상을 한 이 상투관은 1분도 안 되는 장면을 위해서 한 달이 넘게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스크린에서는 실물보다 100배 가까이 커보이기 때문에, 작은 작품 하나라도 그 디테일에 최선을 다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 조태호 감독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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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곳곳에 이렇게 배우들의 메이크업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분장도구함과 이름이 새겨진 도구를 따로 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분장이란 것이 배우 개개인의 얼굴 톤, 얼굴형 등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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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의 여의주 비녀. 자세히 보면 비녀의 몸통은 용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서 비늘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캐릭터 연구, 배우 연구가 이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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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파트에서 가장 감탄을 자아냈던 장신구는 바로 이 마주 보는 쌍용 비녀였다. 광해와 하선은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결코 함께 만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놓여 있는 중전은 광해와 하선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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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녀를 자세히 보면 한 쪽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고, 한 쪽은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이 광해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포인트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수염이었다. 시간의 흐름, 인물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날짜에 따라 수염의 가닥 수를 계산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 분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정교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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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인조에게 일단 청에 항복을 하고, 백성들을 살려내자고 설득하는 최명길의 수염이다. 입술까지 덮을 정도로, 다소 과한 수염이 아닐까 싶지만 전쟁통에 고립되다 시피 한 인물이 매일 수염을 자르고, 정돈하는 것을 상상해면 그게 더욱 현실성이 떨어진다.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수염을 통해 전쟁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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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인조의 수염은 명길의 수염과는 대조적으로 정갈한 모습을 보인다. 전쟁통에도 정돈된 모습을 유지하는, 현실성 없는 모습이 인조에게는 더욱 어울렸을 것이다. 그의 수염은 유독 얇고, 길다. 이는 인조의 우유부단하고 약한 성격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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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과 시시때때로 대립하는 김상헌의 수염은 또 어떨까. 최명길보다도 더 길고 두꺼운 수염은 나이를 대변하는 동시에 자기주장 강한 그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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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대장장이의 남성스러움과, 장수의 강인함 또한 수염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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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최명길 역을 맡은 이병헌의 분장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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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김상헌 역을 맡은 김윤석의 분장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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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의 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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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작은 최명길의 관자


또 하나, <남한산성> 파트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이 관자 금속이었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대립이 심한 관계로, 최명길은 자존심이 밟히더라도 백성의 목숨을 살리고 봐야 한다는 온건파, 김상헌은 전쟁을 해서라도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강경파였다. 강한 고집과 자기 주장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 김상헌의 성격을 크나큰 관자가 대변해 주고, 유하고 차분하게 설득해나가는 최명길의 성격을 보다 작은 관자가 대변해주고 있는 셈이다.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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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어린 사도세자의 모습에 사용됐던 상투관이다. 피가 튀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 묻은 채로 보관하고 있다고. 세월이 지나 피가 조금 옅어진 부분은 리터칭 과정을 통해서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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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봤던 공간. 실제로 영화에 사용된 것인지, 영화 속 소품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영화 촬영 당시의 뒤주의 크기 그대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에 등장했던 음악과, 영화의 장면, 그리고 생생하게 놓여있는 작디작은 뒤주와 피묻은 상투는 영화를 봤던 그 당시로 나를 인도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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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의 역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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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인상 깊었던 스케치관. 배우의 이미지와 극중 인물의 성격을 버무려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초작업을 엿볼 수 있는 코너였다. 때로는 고증을 통해 보다 사실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수 많은 자료를 동원하기도 하고, 배우의 체질에 따라서 메이크업 유형을 달리 하기도 하는 등 읽는 내내 그 섬세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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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꾼, 완벽한 타인, 박열 등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영화들의 분장 과정이 담겨 있었다. 분장 하나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세세하게 담겨 있어서 신선하게 느껴졌던 전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싶은, 추천해주고 싶은 전시 <영화의 얼굴창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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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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