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설지만 기분좋은 새로움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리뷰
글 입력 2019.02.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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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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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비즘의 입문서


전시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과연 이 전시를 통해 큐비즘과 가까워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던 아주 일부 입체주의 작품들을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나에게 '큐비즘'은 곧 '난해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큐비즘이 어떤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탄생했는지, 어떻게 발전해서 어떤 화풍으로 변화되어갔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내게 이 전시는 큐비즘을 찬찬히 설명해주는 입문서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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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남자의 두상
1912, 61x38cm, 캔버스에 유화

Pablo Picasso, Tête d’homme, 1912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


분명 처음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본 작품들에는 형태가 있었는데, 전시장을 마지막으로 나오며 본 작품은 온통 형형색색의 원뿐이었다. 벽을 따라 걸을 때마다 정물은 원형을 잃어버리고, 제목을 보아야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극사실주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물에서 구, 원기둥, 사각뿔처럼 아주 원초적인 형태를 찾으려고 했다는 시도 자체가 흥미로웠다.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 작품부터 시작해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을 보다 보니 어떤 맥락과 생각에서 큐비즘이 나왔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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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들로네, 에펠탑
1926, 170 x 104cm, 캔버스에 유화

Robert Delaunay, Tour Eiffel, 1926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기존의 미적 기준을 뒤집어버렸다는 점에서 입체주의, 혹은 큐비즘은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위치를 갖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형태의 분절, 시점의 분산, 색의 축소처럼 그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었을 시도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그 발상과 발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 예술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작품들을 제목과 하나하나 연결 지으면서 '이건 어떤 부분일까?'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다.

피카소 외의 입체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사실 오귀스트 에르벵의 그림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캔버스라는 하나의 평면을 여러 개의 선과 면으로 분할하고, 섬세하고 복잡한 실물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고, 각 면을 다채롭고 진한 색들로 채우는 방법들이 새로웠다. 그 당시에는 '이상한 것'으로 비판받았을 그림들이 힘을 갖게 되고, 화풍을 바꾸고, 나아가 '추상주의'를 등장시키고, 그 의미를 재평가 받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예쁜 그림', '실제처럼 보이는 그림'에 비중을 많이 두다 보니 있는 그대로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실제 내가 그리고 싶었던 생각이나 장면은 정작 그려두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 전시를 통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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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들로네, 리듬 n°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
1938, 529x592cm, 캔버스에 유화

Robert Delaunay, Rythme n°1

décoration pour le Salon des Tuileries, 1938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낯설지만 기분좋은 새로움


마지막에 만난 작품들은 거대한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들이었다. '리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식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수많은 부채꼴과 원과 곡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한참 그림을 쳐다보니 그 속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처음에 낯설었던 그림들은 어느새 익숙해져 다른 곳에서 또 만난다면 반가울 그림들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했던 관계자들이 전시 구성을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전시는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는 개념을 시간 순서대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친절한 선생님처럼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도슨트 시간에 맞추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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