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라는 감옥, 글쓰기라는 구원

글 입력 2019.02.0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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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글쓰기라는 감옥, 글쓰기라는 구원
김해서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에서 히데코가 애인 타마코를 향해 뱉는 독백과 같은 대사가 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는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먹던 것만 먹고, 읽던 책 장르만 읽는 아주 지루한 사람이다. 왠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아주 부끄럽고 거창한 고백을 하자면 내 인생에도 아름다운 '타마코'가 있고 그게 다른 것도 아닌 글쓰기라는 거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부산에서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된 나는 (남도에서 다른 남도로 옮긴 것일 뿐이지만) 굉장히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낯선 사투리와 새로운 음식, 늘 그렇듯 먼 지역에서 온 전학생을 대하는 또래 청소년들의 텃세 등에서 너무 큰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낀 나머지, 나는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는 길을 택해버렸다. 그리고 글쓰기라는 평생의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물론 문학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단지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고 단지 변비 걸린 사람처럼 시를 싸는(?) 가여운 인간이다.

글쓰기는 참 묘한 행위다. 나에게 호소하는 이야기이자 남에게 거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지만 결코 '나'만을 말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쓰는 동안에는, 나에게 집중하듯 남을 의식하기도 해야 하고 내 욕심을 절제하듯 남들의 평가도 내팽개쳐야 한다. 좀스러움과 대범함을 고루(?) 갖춘 이중적인 인간이 되어야 글쓰기의 미덕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0대 때 광주라는 낯설고 어색한 도시와 교류하기보다 글쓰기가 안겨주는 심리적 고무에 취해 그저 쓰고 또 쓰며 살았는데, 당시에만 해도 곧장이라도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나 <대지>의 펄 벅, <수레바퀴 아래서>의 헤르만 헤세와 같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때 쓴 글들은 모조리 다 갖다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타마코'는 기어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시의 세계를 열어주었고, 유치 뽕짝이 도를 넘어 불온함이 갸륵하고 찬란하기까지 한 10대 작가였던 지난날과 나는 겸허하게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해서야, 넌 부끄럽고 몹쓸 상상을 지나치게 품던 아이였지만 덕분에 나는 이제 겸손하게 작품을 음미하고 동경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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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의 대표 작가, 위화의 강연록을 엮은 책<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그런 내게 대단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위화는 말한다. 자신이 유명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시대빨(?)을 받은 점도 크고 얼마나 호기롭고 대책 없이 소설을 시작했던 청년이었는지를 말이다. 놀랍도록 솔직한 구석이 많은 작가였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독서를 제대로 시작했다는 고백도 덤덤하게 내뱉는다. 유명 문학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언제 어떤 질문이 있을지 모를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대비해야 해서 현대 작가와 고전 작가를 아우르는 '다독'의 운명을 짊어진 것을 토로하는가 하면, 작가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출판사와 어떤 편집자를 만나게 되는지 실명까지 거론하는 등 그는 참 거침없다. 물론 와중에도 문학 하는 사람 특유의 말랑말랑한 사유와 표현들이 돋보인다.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건 과장 같은데?' 싶은 작위적인 화법도 끼어들지만 책을 전체적으로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다. 위화라는 자는 '이야기를 놓아버리지 않고 이어나가는 자세'에 총력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허삼관 매혈기> 외 작품들은 읽어본 적 없어 내가 그를 평하긴 어렵겠지만, 그가 사랑받는 작가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저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골의사>를 읽었지요. 그날 밤, 저는 완전히 잠을 잊었습니다. 소설 속에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셈이었습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 불면의 밤이 제게 앞으로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 p42


"모든 이야기는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는 영혼이 몇 개의 디테일에 불과하고 때로는 문장 하나에 담기기도 하지요. 때로는 한 단락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제각기 달라요."

- p133


위화의 명랑한 고백을 읽고 나서, 곰곰이 내 '타마코'의 눈코입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표정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비겁한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까? 미등단자라는 이유로 적당히 쓰고 폼만 잡는 글만 짓지 않았을까? 그 언젠가 제대로 작가 활동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찔끔찔끔 간만 보며 쓰지 않았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난 단 한 번도 글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한 인간이 아닐까? 이 물음들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나란 걸 알기에, 아주 살짝은 숙연해졌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시태기(시에 대한 권태기)가 온 것 같아.'라고 떠벌리고 다닌 터라 더 찔리기도 했다. 물론 난 시와 헤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위화가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설레는 가슴으로 앓았듯이, 조금 지쳐서 숨을 헥헥거리고 있긴 하지만 나 역시 이 수렁에서 나갈 방법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간신히 시를 써내는 사람으로 머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게 내 심정인 건 맞다.

소위, '위대하다'라고 칭해지는 작가들의 글과 대담들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대 시절에 열렬하게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책들도 다시 읽어 보고 말이다. 10대는 한참 전에 저물었으니 김해서는 이제 그 여운을 거두고 타마코와 스물다섯 살의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 위대한 작가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다 -


​지은이 : 위화

​옮긴이 : 김태성

출판사 : 푸른숲

​분야
작가에세이
중국 문학

규격
135*205

쪽 수 : 384쪽

발행일
2018년 11월 15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5675-769-6 (03820)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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