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KY캐슬>이 남긴 것 [기타]

글 입력 2019.02.1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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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SKY캐슬>이 종영했다. 원래 드라마를 챙겨 보는 편이 아닌 필자도 19화는 재방송으로, 20화는 본방송으로 챙겨 봤다. 누가 어느 집 딸이고, 누구네 집 가정사가 어떤지 정도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활동하고 있는 모든 SNS와 커뮤니티들이 <SKY캐슬>로 하나되어 있었고, 친구들이 만나기만 하면 이 드라마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드라마의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상위 1%의 과도한 사교육 스토리가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그들을 이입하게 만드는지 궁금해 <SKY캐슬> 애청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처음엔 ‘영재’에게서, 그 다음엔 ‘예서’에게서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영재’와 ‘예서’. 이 두 캐릭터는 지나친 사교육 경쟁의 희생양이다. 이들에게 단순히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드라마가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학원 파트타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들은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스카이캐슬 덕분에 우리가 더 잘 되게 생겼어요. 이쪽 학원들은 대부분 3, 4월까지 수강 인원이 꽉 찼어요. 아마 그 드라마 종영하고 나면 더 몰릴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SKY캐슬>은 한국의 지나친 사교육 경쟁을 꼬집으며 그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한 회라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의 주제를 모를 수가 없다. 상식대로라면 드라마 종영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지나친 사교육을 비판하는 흐름이 아주 작게나마 생겨야 정상이다. 사교육 경쟁이 사그라들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SKY캐슬> 덕분에 우리가 더 잘 되게 생겼다’는 말이 학원가에서 나오지는 말았어야 한다.

학원 파트타임 일, 그리고 과외를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언젠가는 학원에서 영어 시험지와 씨름하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어려우면 넘어가도 돼. 틀려도 보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라고 넌지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물론 아이들은 듣지 않았고, 그 놈의 ‘백 점’을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아이들은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혼이 나고 나머지 공부까지 마치고 나서 귀가했다. 그 시험지는 중학교 2학년에게 적절한 난이도였고, 아이들은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친구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모의고사 이후 수업에서 성적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미 국어, 수학, 영어 학원 스케줄로 일주일이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에 다른 학원을, 과외를, 인강을 알아보기도 한다. 이미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자책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학원, 과외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만난 아이들은 그 나이의 색채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야기하고, 뛰어놀고, 장난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체험해보아야 할 나이대의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색깔들 위에 누군가 까만 물감을 부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오래도록 실패해 왔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혹시 불가능한 일이 아닌지 자꾸만 의심할 만큼 오랫동안 실패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점수인지 모르는 채 받아오는 만 점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른다. 부모들은 알지만 모른 척 한다. 사교육계는 그런 부모들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 심리를 이용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는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을 망치고, 끝끝내 없애 버린다.

이건 단순히 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수시, 정시, 학종 같은 제도를 아무리 바꿔봤자 부모, 어른이 바뀌지 않으면 상황은 제자리걸음이다. 입시 제도가 수십 번도 더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제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영재’와 ‘예서’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입시 제도의 변경이 아니라 부모다운 부모, 어른다운 어른이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틀려도 괜찮다’ 는 말이 비문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줄 사람이 절실하다. 우리는 과연 그런 어른인가. <SKY캐슬>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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