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졸업 - 불안한 청춘들의 자화상 [영화]

졸업을 앞둔 지금, 문득 생각난 영화 <졸업>
글 입력 2019.02.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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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지금, 문득 생각난 영화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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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공 과목 중 영화를 통해 공부하는 수업이 있었다. 영화의 스크립트를 보며 영어 공부를 하고,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을 통해 당대의 영어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였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 생활을 추억하던 도중 불현듯 수업 시간에 봤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너무 좋아서 10번 넘게 봤던, 앞으로도 10번 더 볼 것 같은 영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이다.


 
불안한 청춘들의 자화상, 벤자민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계층 청년으로, 그가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이 있는 LA로 돌아가며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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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청년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와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가 없다. 항상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왔던 그에겐 대학의 졸업이, 사회로의 진입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데, 부모님은 그저 명문대학을 졸업한 자식이 돌아왔음을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당연히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파티라도 해야 자신들의 훌륭한 아들이 훌륭한 대학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음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있을 것이다. 그렇게 '벤자민만 원하지 않는, 벤자민을 위한' 아이러니한 축하파티가 시작된다. 아무리 자신은 혼자 있고 싶다고, 사람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다고 이야기해도 부모님은 결코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 <졸업>은 19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는 기성세대의 지배적 가치와 문화를 거부하는 히피문화가 성행했으며, 이런 사회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영화산업에도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뉴아메리칸시네마'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벤자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졸업 파티에 참석한 수 많은 사람 중에는 부모님과 친분이 깊은 로빈슨 부부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나 초반에, 굉장히 파격적인 씬이 등장한다. 바로 미세스 로빈슨 부인이 벤자민을 꼬시는 것. 자신의 엄마뻘 되는, 그저 육체적인 향락만을 좋아라하는 한 아줌마의 유혹. 더 황당한 것은 벤자민이 그러한 유혹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벤자민이 로빈슨 부인과 가까워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얼마 후 있던 자신의 생일 파티 때문이었다. 벤자민의 부모님은 아들의 생일 선물로 잠수복을 선물해 준다. 아마도 자신들의 집에 있는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잠수하는 아들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을 것이다. 벤자민은 창피하다며, 싫다며 거절하지만 부모님은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그를 타이르기 바쁘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어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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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이 잠수하는 장면은 롱쇼트로 촬영해서 깊고 넓은 수영장 속 그를 더욱 작아보이게 만든다. 벤자민이 잠수를 하며 잠원경으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어른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잠수복 때문에 어떠한 소리도 듣지 못 한채, 자신의 불규칙한 숨소리만을 들을 뿐이다. 벤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한 물 속 풍경은 공허했다. 아무도 허전한 벤자민의 목소리를, 아니 숨소리라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다.

이 직후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을 찾아간다.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마치 자신의 마음 속 허전함을 육체적인 쾌락으로 지워보겠다는 듯이.



이런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봤나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과의 관계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때때로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줄 사람이었고, 벤자민은 그런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아주 완벽한 사람이었다. 어른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고, 겁이 많아서 함부로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 할 사람. 벤자민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벤자민 역시 로빈슨 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육체적인 쾌락은 순간의 만족을 줄 뿐, 결국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도구가 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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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표면적으로 볼 때는 별 무리 없이 흘러가던 둘의 관계는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던 로빈슨 부인의 딸 엘레인이 돌아오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눈치 없는 (?) 로빈슨씨는 벤자민에게 자신의 딸과 사귀어 보라고 말하고, 어른들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던 벤자민은 실제로 자신이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의 딸과 연애를 시작한다.

문제는 엘레인이 벤자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것. 더 큰 문제는 벤자민 또한 엘레인에게 깊은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실을 눈치 챈 로빈슨 부인은 자신의 딸에게 자신과 벤자민의 관계를 폭로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벤자민이 강압적으로 자신을 협박해서 맺어진 관계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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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자민에게 엘레인은 처음으로 자신이 '원해서' 사랑하게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로빈슨 부인의 말도 안 되는 폭로로 둘은 멀어지게 되고, 결국 엘레인은 부모님의 권유로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기에 이른다. 엘레인 역시도 벤자민과 별 다를바 없이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엘레인의 결혼 소식을 접한 벤자민은 엘레인의 결혼식장으로 무작정 뛰어간다. 처음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는 엘레인의 결혼식장을 찾아 가서 엘레인에게 구애를 하고, 자신 또한 원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었던 엘레인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둘은 결혼식장을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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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결혼식장을 빠져나와 행선지도 모르는 버스에 탄다. 버스에 탄 둘은 처음에는 행복에 벅차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점점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마치 처음 비행기 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 있던 승객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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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줄거리의 끝은 이처럼 말도 안 되게 현실적이었다. 마냥 행복해하며, 서로의 미래를 계획하는 그런 이상적인 결말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아 무작정 행동했지만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눈 앞에 닥친 불투명한 미래에 다시 방황하게 되는 그런 엔딩. 지금 봐도 파격적인 삼각관계의 끝은 이처럼 현실적이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졸업은 끝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영화 속 벤자민은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청춘의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다. 자신의 이상을 좇다가도 갑자기 몰려드는 현실을 자각하며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하나의 작은 목표를 이룬 후에도 더 큰 목표로의 도약이 겁나서 갈피를 못 잡는다. 이 영화의 엔딩장면이 지금까지도 많이 화자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청춘의 모습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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