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같이 FILO 하실래요?

계속해서 사랑 속을 헤맬 수 있게
글 입력 2019.02.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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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FILO 하실래요?

계속해서 사랑 속을 헤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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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비정전 (1990)]


영화와 사랑에 빠진 최초의 순간을 기억한다. 스물세 살의 봄이었다. [아비정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또 [아비정전]을 틀었다. 한가로운 오후, 소파에 길게 누운 내 옆얼굴로 쏟아지던 햇빛을 기억한다.


[아비정전]은 내게 너무 어려운 영화였다. 장국영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몸짓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방인처럼 그 속을 걸었다. 영화라는 세계에서 나는 까막눈이었다. 바디랭귀지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어느 날 들리지 않던 게 들리기 시작했고, 지루했던 것들이 지루하지 않아졌다. 생생한 언어로 떠올랐다. 복잡한 문장이 질서정연해지고, 노력이 교감으로 바뀔 때. 그때의 쾌감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열기도 금방 식는다. 덕질은 혼자보다 여럿이 해야 제맛. 나보다 더 극성맞은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상대의 호흡에 맞춰 타오르고 불꽃이 튀는 게 덕질의 묘미다.


영화를 사랑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거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영화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영화 얘기를 공유하는 친구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 클럽], 그리고 [FILO]와 같은 영화 전문 매거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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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O 6호 (2019 1,2월) 표지




5개의 별로는 부족한



사랑에 빠지는 건 신중하고 장황해지는 일이다. 가장 정확한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더 많고 깊은 이야기로 사랑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FILO]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바야흐로 미니멀리즘의 시대다. 뼈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덜어내는 것, 최소한의 선만 남겨두는 것의 미학은 영화계도 피해 갈 수 없다. 긴 호흡의 사색보다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별점/ 한줄평이 인기다. 별점을 통해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까 말까'에 대한 대답이다.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 높은 별점을 준 영화일수록 재미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인데, 마치 음원 사이트의 TOP 100 같다.


별점은 무엇을 기준으로 매겨질까? 시험지를 채점하듯 예술도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나 역시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고 있지만, 별점을 매길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취향은 아니지만 훌륭했던 영화, 두 번은 안 보겠지만 킬링타임으론 최고의 영화, 엉망이지만 이상하게 너무 좋은 영화 등등... 난관에 자주 부딪친다. 그럴싸한 한 줄 평을 만들어내는 건 더 고역이다.


다섯 개의 별과 한 줄의 문장만으로 내 사랑을 담기엔 역부족이다. 사랑에 빠지면 결코 담백해질 수 없다. 단순해질 수 없다. 할 말이 쏟아져 나오고, 수백 개의 질문이 솟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더 많이 듣고 싶다.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런 갈증을 해소하기에 [FILO]보다 적합한 매거진이 있을까?




베스트 영업왕



영화 비평 잡지를 읽는 건 항상 즐겁다. 함께 덕질하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다만 그 친구는 좀 너무 잘나서, 아는 게 많고 말도 잘한다.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더해주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해서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구구절절 말해준다. 홀린 듯 빠져든다. 그걸 듣고 나면 거의 백이면 백, 사랑에 빠진다.


FILO 6호(2019.1,2월)는 "2018 베스트 영화"를 다루는 특집호다. 고정 필진 5명과 초대 필진 12명이 2018년에 본 영화 중 자신만의 베스트 10편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영업당하기 딱 좋은 주제다. 작년 한 해를 탈탈 털어 선정한 영화들일 테니, 절대 놓쳐선 안 될 것 같은 기분.


그런 의미에서 이번 FILO 6호의 영업왕은 정한석 평론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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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집스럽고 열정적인 한 투우사의 생의 이야기에 담긴 위태로움과 아늑함과 성스러움과 미련함과 심지어는 아둔함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남을 설득해내기는 어려워도 내가 받은 감동이 의심되진 않는 영화들이 있는데, <피와 모래>가 그러하다.


- FILO 6호, 정한석 평론가의 글 中



1번부터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데, 이 글을 읽고도 <피와 모래>를 검색해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후 그가 언급한 <베스턴>, <가끔 구름> 역시 보고 싶어 미칠 지경.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음에도 어떤 영화일지 머릿속으로 슬며시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었다.


그가 '소마이 신지' 감독에 대해 적은 글에선 격한 흥분이 느껴져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이 시대의 영업왕이다. 나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당장에라도 그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훑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소마이 신지의 열세 편의 장편 전작 중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까지 <아, 봄>을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열두 편 중 내게 흥분과 충격을 주지 않은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심지어 <여름 정원>은 재고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완전한 실패작이지만, 그 갑작스러운 실패의 이유가 너무 궁금해지는 나머지 이 영화조차 흥분과 충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 FILO 6호, 정한석 평론가의 글 中


사실 나를 가장 흥분케한 작품은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 (2017)>이었는데, 정한석 평론가는 '이 영화를 수입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았다며 '이런 영화는 일반 극장에서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글 끝에 영화감독 스와 노부히로가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2017)>에 대해 적은 글 한 편을 첨부하였는데, 이 편지가 나를 극도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취향에 부합할 것만 같은, 너무나도 영화적인 체험을 우리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글은 너무 길어서 옮겨 적을 수가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FILO 6호를 구매하시라! 페이지 94, 95를 펼치면 그 글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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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2017)]

*

어떤 대상을 열렬히 좋아하는 누군가를 보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움직인다. [FILO]를 읽을 때의 내 마음이 그러했다.[FILO]는 '영화'를 뜻하는 'film'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란 뜻의 'philo-'를 결합한 말로 영화에 대한 사랑을 글의 행로로 옮겨보고자 하는 취지의 매거진이다.

우리 시대의 좋은 영화, 중요한 영화, 특별한 영화에 글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잡지가 되고자 한다던 그들의 신념은 [FILO]에 실린 글 하나하나에서 가득 느껴졌다.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게 보내는 아낌없는 찬사와 해석.

책을 덮으며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텀블벅에 들어가 FILO 7호 후원을 신청했다. 7호 (3,4월)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그들이 계속해서 사랑을 찾아 헤맬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걸 가능케 하는 힘은 그들이 발견해낸 애정의 산물을 읽고 소비해주는 것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잡지를 통해 영화와 사랑에 빠지길 바란다.

같이 FILO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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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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