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지막 수업에 감춰진 무서운 이야기 [도서]

내일부터 일본어 대신에 한국어를 쓴다는 말에 어린 덕규는 눈물을 흘린다.
글 입력 2019.02.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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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사고뭉치 프란츠는 오늘도 수업에 늦는다. 또 매를 맞겠구나 하고 긴장하는 프란츠를 본 선생님은 평소와는 다르게 그냥 자리에 들어가서 앉으라고 말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왠지는 모르겠지만 마을 어른들이 교실 안에 들어와있다.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던 선생님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뗀다. 이 마을을 독일이 점령하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않고 독일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 시작된다.



공감하게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


마지막 수업을 읽다 보면 머리속에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 말을 배우지 못하고 일본어를 배우고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썼다는 이유로 칼을 찬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역사의 비극.

일제의 식민지배를 겪어본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노예가 되더라도 국어만 잘 지키고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있는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선생님의 대사는 더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읽게 했다. 나라를 잃고 언어를 빼앗기는 아픔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프란츠, 그런데 네가 왜?


비극적인 역사와 민족의 아픔을 뒤로하고 다시한번 살펴보자. 이제까지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하던 프란츠는, 잠깐만, 무언가가 이상하다. 주인공의 이름이 프란츠다. 프랑스어를 배우지 못하고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울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프란츠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각각의 문화권마다 각각의 언어가 있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존 스미스는 영어권 사람일 것이고 페르난도 로드리게스는 스페인이나 남미권 사람일 것이다. 스즈키 타로는 일본인일 것이고 성은 모르겠지만 프란츠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어느나라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면 프란츠를 검색해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1차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거의 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국어로 쓰는 나라이다. 역사책을 더 뒤져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거의 한민족에 가깝다. 그러니까 프란츠는 독일어 이름이다. 독일어 이름을 가진 어린아이가 독일어를 배운다는 이유로 울고 있다. 이렇게 보니까 참 이상하다. 아이의 이름을 독일어로 짓는 집이라면 집에서 독일어를 쓸거고, 그럼 평소에 쓰던 말을 공부하는거니까 훨씬 쉬울텐데 왜 어린 프란츠는 울고 있을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사실 언어를 뺏으려고 한건 프랑스였다.


다시 한번 역사책을 펼쳐보자. 소설의 배경은 보불전쟁 시기이다. 보불 전쟁에 의해서 독일로 넘어가는 지역을 알자스 로렌 지방이고, 이곳은 원래 독일 땅이었지만 30년 전쟁등의 과정을 통해서 프랑스가 천천히 병합해나갔다. 
알자스 로렌 지방은 철광석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이 지역을 계속 소유하기를 원했고 프랑스어 교육도 그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원래 독일어 사용 지역이다. 보불전쟁이 끝나고 알자스 로렌을 독일이 요구한 명분도 독일어를 쓰는 지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알자스 로렌을 차지하고 싶은 프랑스의 욕심만 아니었다면 외국어인 프랑스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매일 지각하는 문제아 프란츠는 프랑스어를 술술 읽지 못해서 혼나고 매를 맞는다. 아무리 체벌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시기라고 해도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면서 매질을 하던 선생님은 이제 상황이 달라지니까 근엄한척 엄숙한척 의식있는 척을 하면서 뻔뻔스럽게 열변을 토한다.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임에 틀림없다고,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프랑스어를 꼭 지키고 있으라고.



글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힘


펜은 칼보다 강하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읽고 배우는 문장들 속에는 무서운 힘이 숨겨져있다. 마지막 수업을 쓴 알퐁스 도데는 유려한 글솜씨로 독자의 머리속에 아름다운 프랑스어, 피해자 프랑스, 침략자 독일이라는 프레임을 집어넣는다.

소설속의 프란츠가 배웠던 프랑스어 교육도 비슷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 결과 매일같이 자기를 때리던 선생님이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못해서 오열하자 프란츠도 따라 운다. 독일어를 쓰는 아이가 프랑스어를 배우지 못해서 운다. 학구열이 뛰어난 아이여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글을 읽을 때 너무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인다. 물론 우리가 접하는 글들은 어느정도의 검증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도착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허무맹랑한 내용을 받아들지는 않겠지만 모든 글은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 의도들중에는 우리들의 생각을 조작하고 마음대로 다루려고 하는 의도들도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글을 조금만 다듬고 잘라내도 읽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를 쉽게 속일 수 있다.



비판적으로 삐딱하게 읽기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하겠다. 이 글에서도 흐름을 하나로 이어가기 위해 숨긴 부분이 있다. 사실 알자스 로렌 지방이 독일어권 지역인건 맞지만 그때 알자스 로렌 지방 사람들에게 우리는 독일인이라는 민족의식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알자스 로렌 지방 사람들이 새 언어를 쓰는것에 대한 불편함은 있었을지 몰라도 모국어를 빼앗기고 억지로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비극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나서 사실 프랑스가 나쁜놈이었네!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제대로 걸려들었다. 만약 이게 프랑스가 나쁘고 독일은 억울하다라는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썼다면 당신은 알퐁스 도데에 한번 속고 필자에게 다시 속았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 확실하게 적어두면 프랑스나 독일이나 나쁜놈은 아니다. 그냥 자기 나라의 이득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

글을 읽을 때 생각없이 읽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조금 더 비판적이고 삐딱하게 읽어야 한다. 여긴 뭔가 이상한데? 내 생각과는 다른데? 하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져야한다. 그래야 글자들속에 숨겨진 트릭과 음모들에 빠져서 글쓴이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양준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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