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늙어가야할 방향 - 영화 「인턴」 [영화]

사랑하는 '늙은' 로버트 드 니로
글 입력 2019.02.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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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인을 좋아한다. 중년의 중후한 미를 매우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더 나이 들어 '여유'를 가진 노인은 제일 좋다. 기차 옆자리에서 쓸데없이 행선지와 나이를 캐물어가며 오늘 있었던 억울한 일을 유쾌하게 털어놓는 할아버지도 좋고, 도저히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는 수업을 하는 나이 든 우리 교수님도 좋다.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목적이나 사심이 없다. 유쾌하고, 악의 없고, 능숙한 배려를 해준다. 그런 능력은 연륜에서만 나올 수 있다. 영화 <인턴>의 주인공 벤은 진정한 여유와 깊이 있는 연륜을 갖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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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스틸컷



40년 동안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던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정년퇴직 후, 아내와 사별하고 여행을 다니다가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그는 30세 여성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이 운영하는 인터넷 의류 기업에 취직하여, 그녀의 개인 인턴이 된다. 줄스는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차츰 벤에게 신뢰를 얻게 되고,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벤은 회사에 열정을 쏟는 줄스를 진심으로 신경 쓰고 걱정해준다. 하지만 간섭하거나 섣불리 충고하는 게 아니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일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위로가 필요할 때 손수건을 꺼내주며, 그녀가 바빠서 돌보지 못하는 회사 동료의 일을 도와줄 뿐이다.

벤은 젠틀한 멋이 있다. 줄스 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은 모두 벤을 좋아하게 된다. 그는 센스 있게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편하게 해준다. 묵묵히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벤에게 회사 사람들은 자석처럼 끌린다.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노인은 대체로 편하다. 몸에 여유가 베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있는 사람도 편해진다. 그런 노인은 마치 아이처럼 조건 없이 사랑을 줄 수 있다. 벤이 만난 지 얼마 안 된 까다로운 상사 줄스를 마음 깊이 신경 써주고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함만 가진 아이와 달리 노인은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히 배려해줄 수 있다. '인간관계의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선한 본성을 수십 년 동안 갈고닦아 만들어낸 완성품같이 느껴진다. 이것 또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떠한 경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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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3R3N1C3, 출처 Pixabay



크고 작은 삶의 고초를 겪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낸 노인의 얼굴은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주름진 얼굴을 가득 담은 사진 작품에서는 그 얼굴 하나만으로 감동이 밀려온다. 모든 노인은 그만이 겪은 아름답고 치열한 삶의 흔적을 얼굴에 고스란히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하나의 작품인 그들의 삶은 존중받을만하고, 배울 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젊은 이가 자연스레 알게 될 때 다가설 수 있는 감정이다. 나이가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젊은이들을 이해할 시도를 하지 않는 노인에게는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 리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세대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부모님과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식들은 서로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자식들은 태극기를 든 노인들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걱정하지만, 도저히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 꽉 막힌 어른은 젊은 세대에겐 상대하기 싫고 답답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에 반해 벤이 그토록 인기 있는 선배일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벤은 나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나이를 품격있게 만드는 어른이다. 나이에 걸맞은 거창한 업적이나 지위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는 온화하고 깊이 있는 인성이 우러나온다. 벤에게서 그런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를 회사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거리감은 예의를 차리게 만들고, 연장자와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 사이더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태도로 소통하는 연장자는 언제나 환영이다.

물론 벤은 회사 밖에서도 젠틀맨인 듯하다. 그는 회사에서 새로 만난 마사지사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역시나 로맨틱하고 매너 있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의를 차리는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까지 함부로 대하는 일 없이 존중해줄 수 있는 것은 벤이라는 사람이 습득한 더욱 높은 차원의 능력이다. 높은 명성이나 위대한 업적을 쌓은 건 아니지만, 벤이 가진 여유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멋진 것이 아닐까. 새로 태어나는 세대들을 품어줄 수 있는 능력. 내 가족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하나만 해도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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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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