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는 나에게 한 번도 감옥이 아니었다

글 입력 2019.02.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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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5

감옥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저는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천천히 거닐고 싶으면 거닐었습니다.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지요.

 


글쓰기는 나에게 한 번도 감옥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껴본 적 없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게 늘 쉬웠다는 말은 아니지만, 글쓰기라는 큰 벽을 만나 힘들었다거나 좌절한 적은 없다.

 

어쩌면 지금껏 장애물이 없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내가 글쓰기에 그렇게까지 매달리진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어려움이 아예 없진 않았을 것이지만, 단지 어려움에 머무르는 것보다 다른 물길을 트기 위해 탐색하는 쪽이 더 편했다. 그래서도 평소에 글을 쓰는 행위는 잘 모르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나가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위화와 비견할 만큼의 진지함으로 글쓰기를 대하진 못했을지라도(그래서 아직까지 장애물이라 느낄만한 무엇을 만나지 못한 것일지라도) 그 여정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p.63

저는 제 첫 번째 소설이 엉망진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뭘 썼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몇 문장은 유달리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지요. 이것이 글쓰기가 주는 보답입니다. 그 소설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보답을 받은 적 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책을 읽은 뒤 감상문을 제출해야 했다. 바로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 과제가 중요하다는 교수님의 별다른 언질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감상문은 일주일 동안 공들여 열심히 써졌다. 그런데 제출 당일 새벽 6시에 일찍 일어난 나는, 그 글을 자꾸만 읽고 또 읽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그대로, 무언가에 홀린 듯 A4 두 페이지 분량의 글 구조 전체를 바꾸며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명확히 모르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여정에 나선 것이다. 아직도 그 새벽이 생각난다. 제출 당일 그런 ‘짓’을 한다는 건 모험이었다. 하지만 뭔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는 낼 수 없다는. 


처음엔 구조만 바꾸려고 했는데 세세한 부분까지 다 손대야만 했다. 문단 순서를 바꾸니, 글 전체 분위기가 바뀌고 어떤 문장 다음에 바로 나오는 문장의 내용도 바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 나니, 원래 생각하지도 않았던 내용이 들어오고, 말하고 싶던 주제가 더 잘 보이게 되었다. 이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마무리하기까지 꼬박 네 시간이 걸렸다. 한순간 집중하느라 진을 다 뺐는데도 만족스런 기분이 이상했다. 오직 나만이 구별할 수 있는 차이였다.


그렇게 쓴 글은 위화의 어디로 가버린지도 모르는 원고처럼, 역시 성적에 참조되는 것 이상의 기능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바로 내가 쓴 글을 퇴고하는 일은, 스스로 만족에 이를 때까지 누구의 조언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 발견되어 잘 해결되지 않으면, 한글 새 창을 열어 다시 처음부터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효과를 못 본 적이 없다.

 


p.61-62

항상 학생들과 젊은이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 단어로 대답하곤 했지요. “쓰세요.”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인생이 채워지지 않아요. 글을 쓰지 않고는 작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써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영화 리뷰를 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전문 평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편 써 보면서 나름의 영화 리뷰를 쓰는 방식이 생겼다. 먼저는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주제를 잡는 것이다. 그것은 문장이기도 하고 감정이기도 하다. 제대로 주제를 잡은 것 같으면 그 주제와 관련 있는 대사나 장면을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편집한다. 그 순서대로 글을 쓴다.

 

영화를 보고 특정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 까지는 모두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제대로 서술하는 일은 문자 그대로, 오직 써야만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그렇게 서술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렇게 영화 감상을 남겼을 때 영화의 자체 이미지가 아닌 영화를 재해석해 만들어진 나만의 이미지가 내게 더욱 강렬한 의미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건 앞으로 어떤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읽든 감상자에서 해석자로, 해석을 넘어 자기만의 의미를 만드는 한 명의 작가가 될 길을 열어놓는다는 비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가가 되고픈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언'으로 위화의 “쓰세요”는 아주 지당한 것이다.

 


p.240

젊은 작가가 막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미래의 글쓰기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본능처럼 여러 글쓰기를 해 봤다. 어려운 마음 없는 오직 즐거움과 자발적인 참여로. 인터넷소설이 유행이었을 때, 친구와 함께 릴레이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 혼자 모 인터넷소설 카페에 장편을 연재하기도 했다. 우습게도 초등학생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연애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처음과 끝을 맺었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제목도 정확히 기억나지만, 여기에 쓰지는 않겠다.

 

사랑에 관해 썼(다고 믿었)으니 그 다음엔 우정에 관해 쓰겠다며 중편 연재를 했었다. 이땐 중학생이었다. 처음 연재물보다 대화문을 줄이고, 이모티콘은 없앴던 기억이 난다(나름대로 발전한 것이다). 소설 속 ‘나’는 은연중에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사건을 겪고, 전학생과 친구가 되지만 그 친구를 저버리고 다시 원래의 무리로 돌아갔다 뼈저리게 후회한다는 줄거리였다. 마지막으로 썼던 인터넷 소설은 단편이었다. 이때는 모 카페에서 소설 공모전을 했었는데 당선작에 선정되었다. 줄거리는 대략 어린 왕자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어린왕자가 실연당한 여자를 위로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카페에서는 지정 본문이 있었는데 보통 그 본문을 맨 앞에 삽입하는 것과 달리 나는 맨 뒤에 배치해서 인상을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위화와 같은 작가와 비교해 말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우스울 뿐이지만, 아무튼 위화의 순서와는 아주 거꾸로, 나는 장편-중편-단편 소설쓰기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안정감 있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야기와 관련된 문장이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그 문장을 내 메일로 전송해놓곤 했다. 메일 제목은 ‘ㅇㅇ’이었고, 2000년대 내 메일함은 ‘ㅇㅇ’이란 제목으로 쌓여있다. 그 메일을 열면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와 문단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그것을 짜 맞추거나 이어붙이며 소설을 썼던 것이다. 도대체 아무도 시키지도 권유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가 초·중등생때 그런 소설을 쓰며 놀았다는 건 가족 중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p.280

작가가 하나의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쓰는 일은 가능합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지요. 그 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작가 자신입니다.

 


왜 그런 놀이를 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는 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남 의식 안하고 글을 써온 것만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목표도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것.'

 

*

 

책 내용보다 나의 글쓰기 경험이 어떠했는지 죽 늘어놔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주 솔직한 책읽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당시 중국의 문화혁명이 위화의 글쓰기에 끼친 영향이나, 인용되는 여러 작가의 사례도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때때로 어느 문장에 멈추어 고개를 들어 ‘그래서 내 글쓰기는…(어땠고 어디로 가고 있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화의 글쓰기에서 결국은 나로 돌아오곤 했고, 그래야만 했다. 아마 독자 여럿도 그러리라 예상한다.


이 책에는 위화가 들려주는 개인적인 경험이 그의 특유의 서술 방식으로 잘 드러나 있어, 배워서 미래에 반영하여 쓸 만한 지침이 충분하다. 더불어 고전 문학의 사례를 통해 문장의 비유나 표현법을 깊이 있게 알아보며 참고할 수 있다. 글쓰기, 혹은 소설 쓰기에 관해 새롭게 배우고 싶거나 중국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보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_표1.jpg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我只知道人是什麽 

위화 지음 / 김태성 옮김 

135*205 / 384쪽 / 14,500원

ISBN 979-11-5675-769-6 (0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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