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버나움>의 "그 아이들 지금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영화]

두 시간 동안 딱 네 번만 웃는 아이가 있다.
글 입력 2019.02.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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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딱 네 번만 웃는 아이가 있다. 한 귀퉁이가 파 먹힌 초콜릿 케이크를 눈앞에 뒀을 때, 한살배기 요나스를 세차장에서 목욕시킬 때, 돈을 모아 덴마크로 갈 꿈을 꿨을 때, 그리고 12살 생애 처음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다. 아이의 이름은 자인 알 라피아고, 작중 이름도 자인이며, 다른 출연진들처럼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면요



가버나움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마을로,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가버나움이 멸망할 거라고 예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화 <가버나움>은 그런 곳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는데, 작중 배경은 레바논의 빈민가다. 11살 남짓한 여자 아이가 성인 남성에게 팔려가는 매매혼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고, 아이부터 어른 할 것 없이 담배와 마약을 찾으며, 출생조차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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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가버나움> 스틸샷



자인은 시리아 난민이었고, 거리에서 배달일을 하던 소년이었다. 연기 경험이 없던 자인을 위해, 제작진은 대사를 외우라고 하기보단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칸 영화제의 기자회견에서 자인은 “연기를 하는 게 쉬웠다. 어떨 때는 슬퍼하면 된다고 하고, 어떨 때는 행복하면 된다고 했다. 그게 다였다. 정말 간단했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자인의 연기가 극히 사실적이었던 이유는 아마 그가 살아온 인생이 작품과 아주 많이 닮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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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가버나움> 스틸샷



자인뿐만 아니라 자인의 여동생이자 매매혼을 당하는 사하르(시드라) 역시 실제로 빈민가에서 자라던 소녀였다. 사하르를 붙잡고 싶었지만그러지 못한 자인은 집을 빠져나오고, 놀이공원에서 일하던 라힐을 만나 다시금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라힐은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체류자로, 그 역을 맡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가버나움> 촬영 중간에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 라힐의 아들로 나오는 한살배기 요나스는 촬영 중 친부모가 체포되어 <가버나움> 제작진과 약 한 달 간 함께 살아야 했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가버나움>은 법정에 선 자인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다는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자인의 표정에는 한치의 두려움이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자신을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부모님을 고소해야 한다는 어떠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객을 사로잡은 자인의 첫 마디는 영화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이어진다. 후반에 이르러 “나처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우리가 어떤 고통을 갖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외치는 부모님 앞에서도 자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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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가버나움> 스틸샷



나는 그런 자인을 보면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감정 때문에 자인과 요나스가 아무리 귀엽고 아이다운 짓을 벌여도 웃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자인이 딱 네 번 웃는데, 내가 그것보다 많이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관객들이 웃는데도 못 웃었다. 자인을 보면서, 요나스를 보면서, 라힐을 보면서, 사하르를 보면서,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모든 컷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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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가버나움> 스틸샷



나딘 라바키 감독은 “(<가버나움>을 촬영하면서) 나는 인간으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죄의식이 떠나질 않았다. 영화를 본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지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이 변화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 나는 감독의 말보다 적확하게 감상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약자를 타자화하지 않을 수 있는 힘,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는 힘은 이해와 공감과 연대로부터 나온다. 너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는 힘에서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한창 이슈였던 제주도 난민 문제를 당시에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서울촌놈이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6070 세대의 디지털 소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절대로 늙지 않을 20대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버나움>에서 배운 것은 진부하게도 남을 나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이해와 공감과 연대의 효과였다.



 

절박하고 척박한 <플로리다 프로젝트> = <가버나움>



<가버나움>과 더불어 영화 하나를 더 추천하고 싶다.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또한 아이와 여성을 다룬 영화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관객이 등장인물을 동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건조한 카메라워크는 항상 아이의 시선 혹은 그보다 더 아래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관객은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이를 재생산하고 구조화하는 사회에 분노를 느낀다.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가버나움>이 관객의 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감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그리고 프레임 밖의 세상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여 촬영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가버나움>이 여러분의 2019년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씨네21의 한줄평에 언급된 것처럼, “이 아이들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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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씨네21'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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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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