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있음’의 아름다움 [여행]

글 입력 2019.02.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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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고 왔다. 친구와 카톡 중 정말 뜬금없이 잡았던 여행 계획. 딱히 멀리 간 건 아니지만 나름의 소소한 일탈이었다(너무 소소해서 일탈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요즘 따라 뜬금없는, 혹은 즉흥적인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항상 철저한 계획 아래 생활했는데, 그래서 엄마는 따로 살아도 내가 몇 시쯤 무엇을 하고 있을 거라는 것조차 아는데 이젠 좀 질린 건지 자꾸만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

 

글조차 자꾸 다른 데로 빠지려고 한다. 그래도 글은 붙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바다 얘기로 돌아오자면, 한 마디로 추웠다. 하필이면 마침 한파가 찾아온 탓에 해변가 벤치에 앉아 고요히 바다를 바라보는 낭만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감기 걸린 것 같다며 콧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서울에 돌아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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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았다. 수많은 문학작품에 바다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까. 이과 감성 가득한 친구조차 파도를 바라보며 “똑같은 풍경인데 이게 뭐라고 자꾸 보게 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그게 뭐라고 자꾸 보게 될까. 그때의 난 “그게 바로 바다의 매력이지!”라며 농담처럼 대꾸했지만 해안가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바다의 매력을 잘 알 리가 없다. 가끔씩 요즘처럼 마음이 갑갑할 때 문득 생각이 날 뿐이다.

 

굳이 바다의 매력 포인트를 꼽아보자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20대인 나조차도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하물며 사람도 변하는데(아마 가장 슬픈 변화가 아닐까)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태양과 달처럼 뜨고 지는 것도, 구름처럼 유유자적 움직이는 것도 아닌 그냥 있다. 그저 있을 뿐이다. 말라버리지 않는 이상 나무처럼 베이고 쓰러질 위험도 없이 언제나 있다. 끝없는 수평선을 자랑하면서.

 

그렇기에 바다는 믿음의 대상이 된다. 너만큼은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어쩌면 또 하나의 대나무숲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고 비밀을 지켜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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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남자친구>에 등장했던 책의 제목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직하게 바다의 일인 파도는 다른 무엇이 대신 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A를 하면 B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C를 해야 하는 사회와는 정반대다. 이제 곧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입장으로서 참 부럽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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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또 길어진다. 늘 그렇듯 가장 어려운 건 시작이 아닌 마무리다. 마치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드넓은 바다처럼.

 

아마 날이 조금만 덜 추웠으면 밤의 해변을 걸으며 감성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운동화 아래 밟히는 모래를 느끼며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노래를 들었을 거다. 추운 날씨 탓에 그때는 못했지만 사진을 정리하며 감상을 곱씹을 때 바다와 함께 듣고 싶었던 노래를 꺼내 들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에코 세대, N포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에게 건네는 말인 것만 같다. 인생은 길다는데 한없이 넓은 망망대해처럼 너무 길어서 오히려 더 막막해지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나를 위한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웃고 싶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또 웃을 수 있도록.

 

*

 

바다를 보고 왔다. 그런데 또 보고 싶다. 아무래도 바다를 짝사랑하고 있나 보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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