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선물에 대하여 [문화전반]

글 입력 2019.02.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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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ng time ago


어린 시절, 나는 이벤트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사에는 그에 맞는 격이 있어야 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요는 생일에는 파티가 필요하고 당연히 선물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일 외 다른 중요 행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생일이 그나마 모든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은 겪는 일반적인 사건이다. 탄생의 의미를 품고 있는 나름 숭고한 날이기도 하다.

수많은 생일선물을 사고, 주고, 받아왔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한창 또래집단들과의 유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던 중학생 즈음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쨍한 오렌지색 틴트와 비닐 재질의 핫핑크, 추가로 곰돌이가 달린 가방이었다. 충격의 원인은 여럿이었다. 첫째 당시 나는 화장을 전혀 안했고 오렌지색은 전혀 내 피부와 맞지 않았다. 둘째 색과 디자인이 전혀 섬세한 중학생이 받을만한 가방이 아니었다.


실망짤.jpg
나 : 이건 아니잖니.. 친구야..ㅠㅠ


이후 나는 선물을 살 때 원칙을 세웠다. 의무가 아닌 마음을 담기 위해.


1 그 사람이 좋아할까
2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가


이전에는 사건의 격을 위해 의무적으로 선물을 준비했었다. 상대방이 받았을 때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 체면치례를 할 수 있는 것을 고려했었다. 선물에 대한 원칙이 생기고 나서 이에 맞게 준비하거나 아예 사지 않았다. 마땅한 선물이 없으면 차라리 약속을 잡아서 얼굴을 보고 직접 축하한 뒤, 밥이나 커피를 샀다. 만나는 게 어려우면 그 사람이 자주 쓰는 물건이나 필요할 것 같은 제품의 기프티콘을 보냈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어서 시시때때로 불안해진다.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아끼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래서 확인하고 싶어 하고 가끔은 멋대로 실망한다. 한 번의 사건으로 확신을 갖지는 않지만 여러 개의 사건이 모이면 뾰족한 생각을 품게 한다. 적어도 나는, 선물이 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실용적일 것 같아서가 아니라 ‘대충’ 실용적이니까, ‘나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남들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주는 것은 미묘한 덩어리를 남긴다. 작은 먼지처럼 마음 바닥에 쌓인다.

이런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적어도 나라도, 위의 원칙을 지켜 선물하려고 한다. 되도록 첫 번째 원칙을 지키되 피치 못할 때 두 번째를 적용한다.



I chose a gift, gave it to you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는 심오한 연산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투입재료는 다음과 같다. 취향, 선호도, 가치관, 최근 상황, 기분, 건강, 종사 분야, 관심사, 가족관계, 주위 다른 사람이 선물할 것 등. 내가 알고 있는 상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여기에 나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내린 것이 선물이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선물이냐, 싶을 수도 있다. 귀찮게 뭐하러 챙기냐 싶은 마음도 들 수 있고 어쩌면 그냥 서로 넘어가는 게 쿨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물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아끼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실질적인 표현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볼 수 없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가늠하게끔 도와주는 장치이다.

그래서 선물은 마음을 남긴다. 나에게는 당신을 위한 마음이, 당신에게는 나의 마음이 남으며 주는 행위로부터 주고받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1-1=0이 아닌, 1-1=2가 되는 마법. 머글로서 할 수 있는 마법은 이런 소소한 것뿐이지만 되도록 자주 부리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인 문화에서 당연히 주고받는 생일 같은 사건 외에 일상에서 그저 그 사람이 생각나거나 그 사람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주는 것들이 꽤 있다.



And again, I’ve been thinking about you


물론 다른 사람을 챙기다가 막상 내 상황을 망치면 이도저도 아니므로, 내가 정 바쁘고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태가 되면 선물을 줘야할 때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럴 때도 이제는 이해한다. 대략 22살 이전까지는 나만 원칙에 따르는 것 같아 서운했었다. 내가 표현하는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 같고 소중하게 대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굳이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나의 상황을 알지만 다른 사람이 나의 상황을 모르듯이, 그 사람도 나를 잊을만한 상태였을 거라고,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기억해서 챙겨주면 새삼 고마울 뿐. 더불어 가끔은 선물로서 기프티콘을 줄 수 없는 사람이나 상황도 있다.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치는 때도 있다. 나의 상황에 비추어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면 섭섭함이 줄어든다.


선물이미지.jpg
난센스 퀴즈 : 오고 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다만 내가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 시간, 돈, 고민하느라 쓰는 에너지 등 많은 자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충 준비한 선물을 받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서운함이 생긴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그러면 상관없지만 현실은 반대.

선물을 받을 때나 준비할 때 마음을 보는 만큼, 어떤 선물이든 기쁘게 받으려고는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의심의 동물인지라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어 봐도 혹시 나를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선물을 받아서 기쁜 이유는 모양새나 가격보다 당신의 상황에서 얼마큼 나를 생각해주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 기프티콘이든, 쓰던 것이든, 작은 것이든, 저렴한 것이든 그저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고 모르거나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면 아무리 비싸고 객관적으로 귀한 것이어도 마음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선물을 고를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고른다. 내가 그 시기에 들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최고의 것을 주고자 한다. 못골라서 못주는 경우는 있어도 대충 준적은 없다. 그것은 내가 가진 그사람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알게 모르게 내려놓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모처럼 졸업과 입학의 달이 왔으니 끝과 시작을 맞이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식의 응원을 해주어야 할까 궁리하며 글을 마친다.




아트인사이트_리뷰단 명함.jpg
 

[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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