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스타그램을 그만뒀다. [기타]

글 입력 2019.02.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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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명절 때,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일 년 넘게 문자와 전화로만 연락하던 친구와 드디어 만나 밥을 먹는 날. 음식이 나오자 친구가 사진을 찍더니, 대뜸 물었다.

“넌 인스타 안 해?”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어 대외활동 지원서 작성용 빈 계정을 알려주니, 이번엔 혹시 인스타그램을 할 줄 모르냐 묻는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두 팔 걷어붙이고 글 작성하는 법부터 타인을 태그하는 법까지 설명해주는 친구 덕분에 밥 먹다 말고 인스타그램 속성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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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내가 인스타그램을 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사실, 빈 계정을 만들기 전에 팔로워 수에 비해 팔로잉 수가 압도적인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를 갖고 있었던 적이 있다. 한창 인스타그램 바람이 불 때,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 만든 계정이었다. 팔로우 목록에는 유명 셀럽들도 있었지만, 주로 친구들이 많았다. 흔히들 말하는 ‘인스타그램 감성’ 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누군가가 달려와 하트를 찍는 것이 신기해서 그 계정에 자주 글을 올리곤 했었다.

인스타그램은 피드를 쭉 내리면서 읽어나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피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글보다는 사진인데, 대부분이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다. 주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간 것, 전시나 공연을 본 것, 여행을 떠난 것, 물건을 산 것 등 취미 생활 및 소비 생활에 관련된 게시물이 많다. 내 피드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글을 올리던 그 계정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피드를 읽어 보면, 스스로가 좀 초라하게 느껴졌다. 피드 안에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고, 고민과 걱정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마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과제에 또다시 밤을 새고, 이런 저런 여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마치 그들에게는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졌다.

분명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드 속의 그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런 우스운 생각을 했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다른 사람의 일상을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이 참 당황스러웠다. 그 지나친 피로감에 못 이겨 나는 결국 넉 달도 안 되어 계정을 삭제했다. 다른 사람은 잘만 하는 인스타그램, 혼자만 너무 유난인가 싶어 삭제한 후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삭제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지금도 꼭 인스타그램을 사용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접속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업로드하기 위해 타이밍을 보고, 똑같이 가치 있는 일상을 어떤 것은 초라한 것, 어떤 것은 빛나는 것이라고 쉽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일상의 소중함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인스타그램을 그만두고 난 후에 오히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셈이다.

인스타그램에 무엇인가를 업로드할 때, 우리는 평범하다고, 또는 약간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일상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특별한 순간’을 선별한다. 나 역시 그랬다. 다른 친구들보다 내 일상이 ‘별 볼 일 없이’ 느껴지면, 그날은 게시물 업로드를 하지 않거나, 일상을 포장해서 업로드했다. 이렇게 되면, 글보다는 사진 위주인 인스타그램의 특성과 과시 욕구가 합쳐져 피드는 또다시 저마다의 '특별한 순간'들로 가득 찬다. 평범한 일상은 그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될 틈 없이 ‘초라하다’는 평가 아래 잘려 나간다. 누군가의 피드를 보면서 박탈감과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순간들을 또 업로드하는 것이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인스타그램의 피드와 같은 모양의 ‘네모난 바닷속에서 가라앉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외치는 ‘소확행’과 ‘YOLO’는 그냥 아름다운 껍데기일 뿐이다. 거짓과 과장, 경쟁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인스타그램은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한다. 행복은 ‘초라하다’는 평가 아래 잘려 나간 바로 그 일상의 조각에 있을지도 모른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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