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밤 열한 시"에 찾아온 질문, 인생이란 무엇인가? [도서]

오래된 생각들과 함께 읽어 본 책 "밤 열한시"
글 입력 2019.02.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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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이 없다. 본래 그것을 읽으며 글로써 남긴 작가 본연의 감성을 체험하기 위한 마음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작가의 말이 없다.


첫 문장도 범상치 않다. "안녕" 이란다. 나에게 아침의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낡은 세계 안에서 하나도 새롭지 않은 아침,

변하지 않은 것들과 변할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진 하루.

망이라고는 오로지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커피,

뜨거운 심장까지 이르기도 전에 차가움을 잃어버릴 물,

아주 잠깐의 휴식만 허락되는 의자 하나."



다시 보니 들여쓰기 하나 되어있지 않다.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일기를 쓰고 있구나.

 
작가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마음을 놓으려는 시간, 또는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못 해 밤을 새워보려는 시간으로 『밤 열한시』를 말한다. 하루가 다 가고 또 다른 하루는 멀리 있는, 그리하여 생각, 시간, 사랑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시간.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나에게는 너무 이르다. 나는 오전 12시, 새벽 1시쯤이 그러하다. 나만의 시간을 시작하는 시간. 대체로 밀린 유튜브를 보거나 sns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본다. 일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너무나 꾸며진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아 스스로 대화한다. 가끔은 글도 끼적인다. 내일이 올 걸 알지만 그냥 잠들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다음 날 오전오후를 하품으로 버틴다.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고 일상이라는 시간이 쌓여 나이라는 세월이 자꾸만 흐른다.






사실 앞서 말한 문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희망이라고는 오로지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커피’ 부분이 그러하다.


누구나 꽤나 장대한 목표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지 않는가? 누군가 인생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리 흥미롭지도 않은 얘기를 마치 벌써 목표를 이뤘다는 듯이 한껏 배부른 목소리로 침 튀기며 연설하리라. 하지만 현실의 나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고작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모금이 전부일 뿐. 이 조차도 맘껏 부릴 여유는 없다. 출근 또는 등교시간이 압박한다.


나는 오늘도 뛰어야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는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일 꿈을 고이 간직하면서 미래만을 꿈꾸지만, 정작 현실은 빵 한 조각의 만족이 아닌가? 지금 내가 행복해하는 이유는 빵의 미각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고통 없이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닌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가장 ‘나’이다.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계속해서 답을 찾지만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글을 읽다보면 인생이란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배하는 문장이 꽤나 다분하다. 작가는 행복하고 완전했던 그때의 자신을 읽으며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도, 경험하지도 못할 사랑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사랑이 과연 믿을만한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쏘고 있다.


다만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눈물 흘릴만한 행복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잘 모르겠다.






“관계를 맺는 것도 맺는 것이고,

끝을 맺는 것도 맺는 것이다.

열매도 맺히고, 피도 맺힌다.”


 

허나 나 역시도 사랑의 관계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처음을 같이 했던 오랜 친구와 이별한 적이 있다. 연인관계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깔끔하게 이별의 말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지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가끔은 그립고 궁금할 테지만 그것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끝이 났다.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열매였다. 반짝반짝 빛났고 건강했으며, 바람이 불어올 때에는 항상 곁에 있었다. 바람이 멈추면 언제나처럼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바람을 견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그 바람을 서로에게 불었다. 이젠 바람의 뒷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다. 그것은 서로에게 상처일 뿐이다.


피가 맺혔다.


하지만 지금은 피딱지가 사라져 흉터 또한 옅어진지 오래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평정심이 무너졌지만, 이제는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무뎌졌다.


인생이란 그런 걸까. 무뎌지는 것. 과거의 상처를 담담히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무뎌지고 강해지는 것. 강해진다는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상처를 아파하며 엉엉 울 때는 마냥 약했던 걸까, 익숙하지 못했던 걸까. 나는 또 질문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관계에 있어서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이유는 불안전한 무언가를 곁에 붙잡아두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까. 하루를 위해 세차게 날갯짓을 하는 하루살이처럼, 우리도 몇 년의 시간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책을 덮으려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가 눈에 들어온다. 캄캄한 바탕에 그려진 동그란 시계가 열 한시를 가리킨다.





또 밤 열한시. 작가가 말하는 그 시간.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차마 놓아주지 못하는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끝냈지만 이제야 나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시간. 때로는 옛 생각에 홀로 눈물지으며 마음껏 그리워하는 시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감정을 낭비하는 시간. 그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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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의자에 앉아 잠시나마 느끼는 짧은 평화에는 빵 한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감춰진 창밖으로 들리는 따뜻한 새소리, 어제 쓰다만 글에 마무리로 떠오른 새로운 영감, 10분 일찍 일어나 피곤을 감출 순 없지만 기분은 상쾌하고, 새로 산 신발에 어울리는 코디를 떠올리느라 아까부터 머릿속은 분주하다. 마지막으로 물 한잔을 마시며 함께 먹는 어제 쌀쌀맞게 끊었던 친구의 전화에 먼저 사과하려는 다짐.

그래. 그 모든 감정.

인생은 감정의 연속이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 인생이란 비를 피하는 법이 아닌, 빗속에서 춤을 추는 법을 깨닫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말할 수 있겠다. 인생이란 비를 피하는 법을 마침내 깨닫게 되는 그 순간에도, 비를 맞았던 차가운 감촉, 떨어지는 빗소리, 뛰어가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물장구소리를 잊고, 잃지 않는 것이라고. 그들이 모여 이루는 것은 그저 하나의 장면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이 되므로.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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