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드나잇 카우보이(Midnight Cowboy, 1969) : 이상향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우리들 [영화]

글 입력 2019.02.1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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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라는 제목을 보면 떠오르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서부극, 마초, 로데오, 텍사스 등등. 이 영화는 개중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일단 이 영화는 서부극이 아니고, 말을 타고 총을 쏘는 카우보이도 등장하지 않으며, 영화 극초반부를 제외하고는 텍사스가 배경이 아니다. 일종의 버디 무비(Buddy Movie: 주로 동성인 사람 두 명이 패를 이루어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 이자 해석에 따라서 퀴어물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영화 제목만 보고 당당히 표를 끊고 들어왔을 당대의 보수적인 관객들에게 대단한 분노를 야기했으리라 즐겁게 짐작해본다.

영화의 제목인 'Midnight cowboy'는 속어로 '매춘하는 남성'을 뜻한다고 한다. 카우보이 복장을 고수하는 주인공 조 벅의 (희망) 직업이기도 하다. 텍사스 촌뜨기인 조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큰 환상을 품고 뉴욕으로 간다. 또 다른 주인공 리코는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평생 플로리다라는 이상향을 안고 산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상향으로 향하지만 계속해서 더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상향, 그리고 좌절. 이 두 키워드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이상향#1, 뉴욕


접시닦이 일을 관두고 부잣집 마나님들에게 몸을 팔며 생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뉴욕에 입성한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욕 여성들의 길거리 인터뷰만 듣고서도 희망에 잔뜩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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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의 남자요? 큰 키, 텍사스에서 온 사람, 바로 당신이요!"


조는 자신감 하나만 믿고 뉴욕 광장을 돌아다니며 부인들에게 대시한다.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그는 역으로 돈을 뜯기기만 하고, 설상가상 조그만 절름발이 사기꾼 '리초'에게 거짓 중개를 당해 분개한다. 호텔 방세도 내지 못해 도시를 전전하던 그는 어느 날 리초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를 두들겨 패지 않는 대신, 조는 리초의 '집'에 초대받는다.

'집'은 누가 봐도 다 쓰러져가는 철거 직전의 아파트였고 조와 리초는 얼떨결에 그 곳에서 함께 살게 된다. 리초는 조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일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그들의 어설픈 수법은 여전히 도시에서 먹히지 않는다. 동네 식료품점에서 먹을 걸 쓱싹하거나, 행인들의 주머니를 털면서 겨우겨우 살아나가다가 종국에는 조가 아끼던 라디오까지 헐값에 팔아넘기게 된다.

이처럼 철저히 무너지는 조의 이상향 뉴욕은 당대의 미국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제작년도인 1969년은 60년대의 이상주의, 공동체주의가 무너지고 70년대의 '미 디케이드'로 넘어가는 시기다. '미 디케이드'란 개인의 시대라는 뜻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대신 보수적인 개인주의가 확산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꼈을 허망함과 공허함, 좌절감이 영화 전반에 깃들어 있다. 함께 뉴욕의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명확히 그어져 있는 듯한 부자와 빈자들,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러한 간극이 뚜렷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 돈은 많지만 남편이 만족스럽지 않은 과부들이나, 뒤틀린 믿음으로 가득 차 일탈하는 종교인들, 책을 팔아서라도 섹스 파트너를 구하려는 남학생까지. 그처럼 전세계적으로 혼란에 휩싸인 전례가 없었기에 더욱 극심했을 그 시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이런 인물 설정을 통해 더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상향 #2 플로리다



"여기에 계속 있어선 안 돼.
플로리다로 가야겠어."

"의사는 필요 없어.
의사랑 경찰은 질색이야.
날 플로리다에 데려다 줘!"


구두닦이 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뉴욕에서 자라온 리코는 변변한 집 없이도 얼어죽지 않을 수 있는 따뜻한 플로리다로 가는 것이 꿈이다. 그렇지만 몸도 불편한 데다 사기꾼 짓으로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에서 먼 길을 떠날 노잣돈이 생길 리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은 그가 속여먹었던 조 벅이 되고, 리코는 평생을 꿈꿔왔던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끊어진다.

앞서 70년대는 60년대의 이상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사라지게 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상', 그리고 '연대'. 주인공들을 끝없이 좌절시키면서도 감독은 두 사람에게 이상을 심어주었고 연대를 통해 이상의 문턱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든다. 암울한 시대상이 그렇듯이 둘은 결국에는 이 연대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지만, 정말이지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전혀 없을까?

히피들의 파티 이후 조 벅의 매춘일은 예상 외로 잘 풀리게 되지만 리코는 다리 통증이 점점 심해져 걷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고통과 두려움에 떨면서 그는 조에게 의사 대신 플로리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급한 마음에 조는 살인을 저질러 가며 버스값을 구하고, 친구와 함께 서른 시간의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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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와중에 리코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지만, 조는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남부의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조는 리코에게 "이제 매춘 일은 그만 둘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야." 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리코는 숨이 끊어져 대답이 없고, 모든 승객들이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버스기사는 그의 눈을 감겨달라 부탁한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리코의 눈을 감기고, 그의 어깨를 꼭 감싸안는 조의 모습을 창 밖에서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처음으로 감상했을 때 나는 이런 결말이 굉장한 충격이었다. 넋이 나간 조의 표정과 남 일처럼 바라보는 승객들, 잔인하리만큼 밝은 플로리다의 햇살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관객들을 암울함에 빠뜨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감상 이후 느낀 점은 사뭇 달랐다. 남겨진 사람, 조가 어떤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 이 지점이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보니 허망해 보였던 표정이 오히려 다소 결연해 보였다. 연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쩌면 70년대를 전망하는 감독의 시각은 이처럼 열린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품고 살아간다. 때로 그것은 간절히 이루고 싶지만 외면하는 것이 되고,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이 되고, 혹은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것이 된다. 미국 서부를 오픈카를 타고 횡단하는 꿈이든, 외국으로 이주해 사는 것이든, 사진으로만 봐왔던 소금호수에 발을 담가보는 것이든 모든 꿈은 이루기 전에는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상향은 그대로 놔두었을 때에만 이상향으로서 가치가 있는 건 아닌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혹은 단지 그것을 떠올리며 일상의 돌파구로 삼는 데에서 이 지독한 삶을 견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이룩한 꿈은 그대로 또 다른 현실이 될 뿐이다. 두 주인공은 결국 이상향의 장소에 도달했고 언제나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혔으나 단 한번도 되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상향을 찾아 언제나 방랑하는 사람들, 우리들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결국 다시 현실이 되더라도 꿈을 이루어나가는 것과, 그저 그대로 놔두는 삶. 선택은 언제나 우리 몫이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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