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살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공연예술]

연극, 티바슈 가문의 자살가게
글 입력 2019.02.1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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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티바슈 가문의 자살가게'는 동명의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으로 2월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문화광장 스테이지66에서 막을 올렸다. 필자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15일 8시 연극을 관람했는데, 천성적인 게으름 덕분에 결국 연극 관람 전 원작 소설을 읽고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추천해준 동명의 애니메이션 역시 10년이 넘도록 Watch List에만 올라있다. 연극, 소설, 애니메이션의 줄거리와 결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연극을 보면서 원작과 비교분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결말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점도 있었다. 평소 연극을 즐기지는 않아서 연극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기/ 연출/ 극본,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 자살가게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연기



아무리 소극장이라 할지라도 연극에는 클로즈업 기능이 없기 때문에 영화배우와는 달리 연극배우들은 행동과 목소리로만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자살가게의 배우들 또한 성량과 딕션이 남달랐는데,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 동안 알아듣기 힘든 대사는 단 한 줄도 없었다. 한국영화를 볼 때도 종종 알아듣기 힘든 대사가 있어 자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출연배우 모두 목소리로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도 뛰어나 한 두줄의 대사만으로도 어떤 성격을 연기하는지 대충 감이 왔다.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티바슈 가문의 차녀인 마릴인이었다. 마릴린은 항상 자신이 못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 인물로 후에 묘지관리인 베르테르와 사랑에 빠져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은 마릴린은 둔탁하고 느린 목소리지만 베르테르와 사랑에 빠진 이후로는 보다 명랑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되어 목소리만 들었다면 서로 다른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그 변화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가 훌륭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순히 이러한 변화를 포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서서히 호흡하며 목소리 변신을 꾀했다는 데 있다. 어머니 뤼크레스 역시 항상 꼿꼿하게 치켜들던 고개와 올곧은 허리 대신 후반부에선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분해 훨씬 더 부드러운 몸짓으로 연기한다.


티바슈 가문의 장남인 뱅상은 밥을 잘 먹지 않아 깡마르고 신경질적이며,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미시마 또한 쉽게 화를 내는 다혈질로 그려지는데 두 인물의 경우에는 대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통과 짜증이 관객들에게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선에서 극을 이끌어 갔고 특히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에 걸맞게 이를 유머로 승화시켜 표현했다. 마릴린의 남편 베르테르는 특유의 소심함을 말투로 표현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2.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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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바슈 가문의 자살가게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누가 뭐래도 연출일 것이다. 비록 세 번째기는 하지만 여태 본 연극 중 무대 디자인이 가장 디테일하고 수준이 높았다. 이는 연극의 시각적인 요소를 풍성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극의 몰입감을 강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무대 정중앙에 크게 자리한 스크린이 아닐까 싶다. 상당히 아날로그 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극에 스크린을 활용한다는 점이 의문이었는데 연극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의문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아니 오히려, 스크린을 활용하는 연출에 완전히 빠져버렸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직접 사진을 통한 설명이 불가능 한 점이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빈약하나마 저 스크린의 역할을 설명해 보자면, 스크린 오른쪽 계단으로 인물이 올라가면 스크린이 조명에 의해 반투명해지고 스크린 뒤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게 된다. 비좁은 극장에서 2층 집을 표현하기 위한 탁월한 공간 배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1층에서 연기를 할 때는 스크린이 다시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훤히 드러난 2층 구조에 비해 시선이 분산될 위험도 적다. 반투명 스크린이 주는 장점이 이 뿐만은 아니다. 2층에서 인물들은 대부분 혼자 방 안에 앉아 자신들의 삶에 대해 고뇌한다. 그 사이로 비치는 반투명 스크린이 주는 뿌연 안개빛과도 같은 불투명성은 그들의 고립과 단절, 외로움을 한층 부각한다.


마릴린이 자신의 북받치는 감정을 춤으로 표현한 장면도 좋았다. 베르테르를 만나고 생애 처음으로 느낀 사랑이라는 기묘하고 낯선 감정은 결국 알랑이 선물한 하얀 스카프와 만나 폭발한다. 그녀는 2층 방에 홀로 올라 자신의 감정을 전위예술과도 같은 춤으로 분출하는데 이 역시 스크린의 불투명성이 그녀의 고뇌를 더욱 부각한다. 선율처럼 부서져 내리는 그녀의 춤사위가 무대에 내려앉을 때마다 조명은 스크린 위에 그림자를 새기고 극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든 연극이든 대사 이외의 요소들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릴린이 단순히 대사로 '이 감정은 뭘까?' 따위의 대사를 읊었다면 그저 밋밋하고 진부했을 장면은 춤이라는 탁월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3. 극본



연기도, 연출도 중요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연극의 꽃은 극본이다.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원작 소설 자체가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고 연출하시는 분이 각색까지 맡아서 하다 보니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먼저 초반부의 상세한 묘사에 비해 결말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빠진다. 물론 초반부에서 인물의 특성을 더 강조하고 싶을 수도 있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게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 갑자기 총소리가 나고 가게가 초토화되는 장면은 원작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직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설명이 불친절했다. 극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난해하고 어려운 것과 설명이 불친절한 것은 전혀 다르다. 이 장면은 편의상,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얼렁뚱땅 넘어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만 잡아먹는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람마다 웃는 포인트가 다르고 웃음의 역치가 다르다는 것도 알지만 인공지능이 말을 안 들어서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갑자기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대사가 끊기는 농담은 나뿐만 아니라 극장의 누구도 웃기지 못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 어울리는, 풍자적 성격이 강한 농담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의성과 국지성을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유머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나 싶다. 원래 비극보다 희극이 훨씬 쓰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극본 역시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각종 후기를 통해 간략히 비교해 보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배우만을 활용하여 극을 진행하기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가게의 손님들은 문을 여닫는 것으로 존재를 표현한다거나 마릴린이 묘지에서 베르테르를 만나는 장면은 생략하는 식이다. 연극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훌륭히 보완한, 각색의 좋은 예가 아니었나 싶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훨씬 개연성 있게 가족들의 변화 과정을 그려낸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막내 동생 알랑은 자존감이 낮은 마릴린에겐 무조건 적인 사랑을 항상 짜증 투성이인 뱅상에겐 즐거운 음악을, 매사에 부정적인 어머니 뤼크레스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결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혹시라도 원작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미스트 급의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연극 자살가게는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업의 후원 없이 창작한 독립 공연으로 비록 지난주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알아주었으면 바람에서 리뷰를 썼습니다. 언제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위의 내용에 오류가 있을 시에는 댓글로 친절히 지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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