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플로리다 프로젝트> "화창한 디즈니랜드의 비참함"

훌륭한 영화가 빈곤을 다루는 방법
글 입력 2019.02.2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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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 듣기만 해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단어이다. 필자는 디즈니랜드에 가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와 아주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디즈니랜드는 놀이기구를 타는 걸 넘어서 그 공간에 있기만 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운이 있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거리들, 가족, 친구, 연인들이 모두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쓰고 웃고 있는 그 풍경 속에 들어가 있으면 디즈니랜드가 의도한대로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곳에 있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보이고 나도 행복하다. 불행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친구와 즐겁게 디즈니랜드를 다녀오고 열흘 뒤 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런 나의 환상을 완전히 박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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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진행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일대의 부동산 매입계획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즈니랜드 주변에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들을 잔뜩 지었으나 미국 경제침체 이후 빈곤층들이 그 모텔에 살게 된다. 영화는 그 모텔에 살고 있는 무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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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치는 장난이 마냥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 놀 거리가 그렇게 넘쳐나는 디즈니랜드에서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놀 거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남의 자동차에 침을 뱉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심지어는 불을 지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은 저렇게 노는 게 정말 즐거운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그 의구심은 어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면 아이들이 즐거워서 노는 게 아니라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악을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바뀌게 된다.


영화는 무니가 살고 있는 디즈니랜드 주변 모텔의 세계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무니의 엄마인 핼리가 처한 상황은 정부의 지원이 끊긴 뒤로 급격하게 더 비참해져서 중반부 이후부터는 화면에 핼리가 나올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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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영화는 그저 디즈니랜드 모텔에 살고 있는 빈곤층의 삶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뿐인가? 영화는 그 대답을 모텔의 매니저 바비와 무니네 가족의 모습으로 대신한다. 바비는 모텔의 매니저로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만큼 무니의 가족을 돕는다. 그 ‘도울 수 있는 만큼’이 넘어서면 바비는 너무나도 무력해진다. 순간순간의 위기는 넘겨줄 수 있지만 그들을 그 모텔에서, 그 빈곤의 수렁에서 꺼내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바비의 한계는 곧 관객의 한계를 뜻한다. 관객은 바비에게 이입하면서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려는 무니네 가족을 감히 동정심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영화 속 무니는 그 어린 나이에 온갖 비참한 일을 겪으면서도 결코 울지 않는다. 헬리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이 생존과의 싸움인 그들에게는 눈물 흘리는 것도 사치인 것이다. 그러한 무니네 가족들의 태도는 관객들이 그들의 사연이 아니라 빈곤층을 양산한 미국의 복지시스템을 바라보게 만든다. 감정은 관객들을 동요하기 쉬운 도구이지만 간혹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빈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는 연출력과 각본만으로 완벽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완성도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바비 역을 연기한 윌리엄 드포, 핼리를 연기한 브니아 비나이트의 연기는 모텔에서의 ‘어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처절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지만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시 주인공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이다. 그 연기력은 2018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아역상을 받으며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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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다루면서도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영화,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빈곤을 마냥 전시하지 않는 영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내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런 영화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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