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통의 매개체 문학, 그것이 지닌 참된 가치 [도서]

이청준 작가의 <병신과 머저리>
글 입력 2019.02.2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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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시간에 우리나라 문학작품의 역사를 배우면서 처음 알게 된 작품이 바로 ‘병신과 머저리’라는 한 단편소설이었다. 문학 연대표에 있는 수많은 시와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로는 그것의 제목이 한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 ‘병신과 머저리’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친구들의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때는 단지 어느 년도에 누가 어떤 작품을 썼는가에 대해서 반사적으로 답할 수 있을만큼 달달 외우는 공부에만 치중했었던 중학생의 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읽게 된 나는 이 작품의 제목에서 우스꽝스러움이 아닌 상처와 아픔의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라는 핑계로 작품자체에 대해선 소홀히 하고 작가와 작품외우기에 급급했던 내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이 작품에는 의사인 형과 화가인 동생이 등장한다. 어느 날 자신의 수술 후 한 소녀가 죽게 되자 형은 그때부터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동생은 예전부터 형에게 궁금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에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형의 소설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처음에 도입부를 읽고 난 후에 형이 소녀가 죽은 후에 갑자기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됐다고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죄책감 때문이겠지 하고 짧게나마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형이 소설을 쓴 이유는 현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통해 본 과거의 상처 때문이었다. 과거 6.25 사변 때 패잔병으로 낙오되었던 형은 오관모가 동료인 김일병을 죽이는 것을 방관했던 적이 있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죽고 수술 성공률도 낮았던 소녀가 자신의 수술 후에 죽은 것은 어쩌면 형의 탓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형은 간접적으로나마 그 소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에서도 동료를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방관함으로써 동료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개입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은 현실의 상처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회상하게 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형은 자신의 상처에 주된 원인이 된 오관모를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만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오관모와 마주치게 된다. 소설에서의 결말이 현실과 다르자 소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형은 소설을 불태운다. 비록 소설은 불에 타버렸지만 자신의 상처의 근본이 무엇인지 모르는 동생과 달리 자신의 상처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치유하고자 소설을 쓰는 형의 용기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남아 여운과 감동을 선사해준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 이 아픈 상처를 또다시 회상하며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던 아픔을 끌어내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보다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형과 같은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청준 작가는 각자 다른 상처들을 품고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상처가 주는 아픔에 겁먹지 말고,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용기로 내면의 자아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작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작품 속에서 형과 동생은 형이 쓴 소설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매개체가 바로 소설, 즉 문학이라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위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소통,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가 내적효용을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문학 작품이 지닌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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