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FILO [도서]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FILO> No.6
글 입력 2019.02.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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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FILO>와 함께 영화를 다시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요?


이번 <FILO>를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명곡 ‘다시 만난 세계’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얼마나 신났으면 그랬을까. 리뷰를 쓰며 처음 필로를 펼치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니 참 부끄럽고 어이없다. 하지만 그 노래를 떠올린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필로는 단순히 ‘매거진’보다는 시간을 멈추는 ‘설렘’에 가깝다. 도서 규격부터 시작해서 커버 디자인도 너무 쿨하고 멋지다. 말끔하게 씻고 잠들 준비를 하고, 도톰한 이불에 폭 파묻혀 필로를 바라보자면 그 감각적인 책 안에, 이번엔 또 어떤 영화와 어떤 문장이 담겨있을지 궁금해서 마음이 콩당콩당 뛴다.

이번 호를 읽으며 복작복작한 연말 파티에 다녀온 느낌을 받았다. 고정 필진 5명과 초대 필진 12명이 선택한 2018년 베스트 영화를 다루는 특집호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2018년에 본 영화 중 10편을 뽑아 모두 총 123명의 감독, 134편의 영화가 선정되었는데, 참가 필진은 남다은, 댄 설리번, 데니스 림, 로버트 콜러, 스와 노부히로, 에이드리언 마틴, 이후경, 장미셸 프로동, 정성일, 정한석, 정홍수, 카세 료, 클레어 드니, 태그 갤러거, 페드루 코스타, 하스미 시게히코, 허문영 등 17명이다. 집중적으로 다룬 영화는 <다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 <라 플로르> <베스턴> <사령혼> <작은빛> <천당의 밤과 안개> <풀잎들> 등이다.

따로 실시된 독자 투표를 통해 선정된 10편의 영화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나. 평론가들부터 일반 독자들까지 모두 모여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 발언권을 통해 (예를 들면 평론을 위한 지면, 독자들의 한 줄 평 등) 자유롭게 무대에서 의견을 내는 모습이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단 한 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필로를 ‘그냥 잡지’ 이 정도로 가볍게 넘겨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

복작복작한 연말 파티에서 더 나아가 나는 이번 필로 6호에서 ‘살아있음’을 자꾸 떠올렸다. 살아 움직이는 영화, 이를 전달하려는 시도들이 우렁차게 혹은 조용조용 밀려오는 느낌이 생생했다. 정적인 활동이든 동적인 활동이든, 영화의 요소이든 그것이 아니든 하여튼 간에 평론가가 집중하는 대상 자체의 ‘살아있음’ 즉 ‘생명력’을 찾아낸 글, 혹은 내가 그 생명력을 찾아낼 수 있게 이끌어 준 글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나의 경우 감정을 누르고 삼키는 것이 너무 벅차서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이 퐁퐁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글을 좋아한다. 그런 느낌을 받으면 나는 글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번 필로 6호에서 그런 글들과 문장들을 볼 수 있었다. 글을 구상하고 쓸 때 혹은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어떤 마음 상태에 있었을지 왠지 느껴지는 그런 글들. 자주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경험하지 않는 만큼 나는 그런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겠다고 예상을 하게 된다.

평론이니만큼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거나 (그런 잘못된 방법이나 실수들이 실제로 있다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감정을 쏟아내는 글은 어떤 글이든 당연히 부담스럽다. 전문적으로 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감정은 독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읽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적당히 나쁜(?) 점들이 타인의 글을 더 정겹게 느껴지도록 해준다. 사람이 직접 정성을 담아 쓴 글이라는 게 그런 틈에서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다시 말하건대, 어디까지나 ‘참지 못하고 감정이 퐁퐁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이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써도 조금씩 튀어나오는 그 감정들을 캐치할 때면 나는 그 글의 장르, 글이 다루는 대상의 장르를 불문하고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도대체 얼마나 좋으면 글에서 그게 드러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당장에라도 그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 단순히 정보를 얻어 가고 배워가는 것을 떠나, 그런 글들을 보면 마음을 나누고 섞여드는 것만 같은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설령 그런 감동의 시간이 아주 짧은 찰나라 할지라도, 내가 아주 단단히 착각한 것이라고 해도, 그 순간 나는 혼자 글을 읽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표현하고 싶었지만, 딱 들어맞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이미지, 느낌, 감정, 여러 가지 생각들 등을 대충 뭉뚱그려 한데 묶어 구석에 몰아놓곤 했다. 그러다 어느 한 큐에 확 불이 붙듯이 ‘맞아, 바로 이거야!’하는 유레카 모멘트가 있다. 세심하게 고르고 고른, 마치 수 놓아둔 것 같은 소중한 문장 덕분에 그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필로에 적힌 수많은 문장들에서 나는 ‘복작복작함’, ‘인간미’, ‘살아있음’을 찾았다. 많은 평론가들의 베스트 영화 목록에서, 그리고 글에서, 나는 내 안의 어딘가에 대충 던져두고 묵혀뒀던 덩어리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은 다시 잘 만져지고 조각되어서 새롭게 소중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필로>에 나도 진심과 사랑을 담아 언어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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