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운명일까? [도서]

사랑에 대한 철학적 고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글 입력 2019.02.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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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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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연인' 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얼마나 적은 확률들이 작용했는지를 계산하며, 자신들의 관계에 운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우리가 사랑하게 된 것은 운명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형성하며, 이별에 이르는 과정은 흔히 '감정'의 영역으로 여겨지곤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이 특별한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다.  이 책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매우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연인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깔끔하고 명쾌하게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정 반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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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책의 화자와 '클로이'라는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 끝을 맺는지를 스토리로 풀어내고, 동시에 이에 대한 화자의 통찰이 뒤따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사랑에 대한 논의는 대략적으로 '만남 - 관계의 형성 - 관계 내의 안정과 갈등 - 연인관계와 자아 - 이별'의 얼개를 가진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화자와 클로이는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다. 화자는 빠른 속도로 클로이에게 빠지고, 둘은 연인이 된다. '연인' 이라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관계 내에서 두 사람은 사랑의 표현, 서로에 대한 '관심'에 뿌리를 둔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감정들을 마주하다 이별에 이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각자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삶의 경험들, 선천적인 요소, 가정적인 환경을 비롯해 그 자신이 살면서 지나 온 길들이 모여 하나의 존재를 만들기 때문에, 때로는 각각의 존재들을 하나의 세상, 더 나아가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어렵다. '나'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 나와는 비슷한 듯 다른 또 다른 세계가 밀려들어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의 세상에 성큼 들어오는 만큼 그 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말과 글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나에게 익숙한 주제에 관해 논하고 있지만서도, 머리를 한 대 때리는 듯한 충격을 준 책이기도 하다.

정말 기본적이고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말이나 글로 다시금 접했을 때, 마음에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바로 딱 그런 책이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정확히 꼬집을 수 없는, 그리고 내 스스로도 정리가 안되어서 밖으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사랑으로부터 발생한 굵직한 감정과 상황들을 정직하게 정리해 보여준. 그런 느낌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 상대방이 가진 매력이 떨어져 보이는 현상을 '마르크스 주의'라는 이름을 붙여 설명한 대목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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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상대방을 사랑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멋진' 사람이 우리의 사랑에 보답을 할 경우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향하던 감정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최근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경쟁사회, 성과사회는 지속적으로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고, 실업률은 날이 갈 수록 최고치를 경신하는 사회에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높은 평가를 유지하기란 참 어렵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먹거나, 방에서 소셜 미디어만 보더라도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일 경우, 그 마음이 사라진다는-알랭 드 보통의 언어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자의 - 고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원래 존재하던, 가시적인 현상에 명칭을 붙여 간결하게 설명하는 알랭 드 보통의 화법은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 요소들 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사랑과 연애에 대해 논의함에 있어, 일반적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내 인생에서 상대방이 차지하는 자리가 커지고 그 영향력과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나' 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우주는 매우 크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 변화에 따라 서로를 맞춰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바뀌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기존에 많이 이야기되어 왔다. 여기서 방향을 조금 틀어서 알랭 드 보통은 연인의 존재가 내 자아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관해 고찰한 내용을 소개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연인'과 '사랑'이라고 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이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어떻게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가에 집중해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분석과 통찰이 더 깊게 다가왔다. 연인의 존재가 가장 근본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는 자아 형성에 있어서, 내가 아는 나를 더 잘 알게 그리고 내가 몰랐던 나의 사소한 모습들에 대해 인지하도록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을 규정할 수 있도록 해 준다니. '사랑'은 생각보다 더 사소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더 신비롭고 강한 힘을 가진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평소 '사랑'과 '연애'가 진부하고, 너무 흔한 주제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감정적인 사랑도 이렇게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어"라고 말을 건넨 책이다. 일상에서 자주 들어볼 수 있는 '사랑의 힘'이라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단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힘을 발휘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크고 작은 변화들과 부딪힘, 개인적인 성숙과 아픔들이 공존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촘촘한 전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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