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혐오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2.2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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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범죄. 가해자가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 특정 집단에 증오심을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다. 우리는 혐오범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혐오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혐오 범죄가 일어난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는 동성애 혐오 범죄가 일어난 도시, 와이오밍 주 레라미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대학교의 연극부원들이 이 범죄사건을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직접 레라미 마을을 찾아와 마을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과 무슨 인터뷰를 했는지 설명해주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런 연출 덕분에 제 3의 입장에서 극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소수’에 대한 경계와 혐오

<레라미 프로젝트>에서 ‘대중’에게 내재된 ‘소수’에 대한 경계와 혐오를 느낄 수 있었다. 레라미 마을에서는 건장한 두 청년이 155cm에 왜소한 남자인 매튜 쉐퍼드가 게이라는 이유로 납치해 말뚝에 묶어놓고 구타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일어난다. 와이오밍 대학교 학생인 제다디아는 연극부원들과의 인터뷰에서 레라미 마을은 그 범죄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결속감을 느끼는 착한 도시와 혐오범죄로 규정된, 차별을 상징하는 도시로 말이다. 과연 범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두에게 열린 도시였을까? 이 동네에 살았던 많은 성소수자들은 레라미란 정체성을 밝혀서는 안 되는 곳이라 말했고 그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새로 이사를 오는 동시에 커밍아웃을 한 대학교수에게도 커밍아웃을 한 사람에게는 이 마을이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니 조심하라는 익명 전화가 올 정도다. 연극을 보면서 제다디아의 말과는 달리 범죄사건 전에도 소수자에겐 위험하고 차별뿐인 도시였음을 느꼈다.

이 생각에 확신이 든 장면은 어떤 아저씨가 범죄사건에 대해서 잘못을 따지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 동네의 성소수자들이 일반인에 접근하고, 건드리는 행위가 이 사건의 가해자들이 한 폭력과도 같다고, 둘 다 잘못했다고 말한다. 성소수자가 호감을 표시하는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폭력을 합당하다고 본 것이기에 나는 더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소수에 대한 혐오를 키워갔고 매일매일 마을의 주 종교집단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해 극심한 비난과 반대를 주장했기에 레라미가 결국 혐오범죄 도시로 남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혐오와 경계가 단지 성정체성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평범을 상징하는 대중과 반대되는 소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이슬람교를 가진 여학생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그런 복장을 하고 다니는지 이유를 묻고, 대답하면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 여학생은 남들과는 다른 종교관을 갖고 있었기에 소수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억압의 대상이 누구든 될 수 있다. 사회적 경계와 가이드에서 벗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말이다.



자신의 혐오를 외면하다.

하지만 내가 깨달을 수 있었던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소수에 대한 경계와 혐오를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라미 마을사람들이 사건의 피해자인 매튜 쉐퍼드를 위한 애도 행진을 이어갔을 때, 갑자기 한 여자가 우리 마을은 원래 이런 마을이 아니고 혐오는 우리 마을의 가치가 아니라며 소리를 지른다. 옆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레라미는 그런 혐오범죄가 일어나는 도시가 아니라고 동조한다. 이 모습을 본 한 여학생은 사람들이 사건의 피해자를 애도하는 행진의 목적을 무시했다면서 분노한다. 나는 그 분노에 동감했다. 이렇게 더러운 일이 일어나는 국가에 사는 것을 슬퍼하고 이 혐오범죄를 끌어안고 아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충분히 혐오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차별적인 분위기였고 그런 혐오범죄가 일어난 흉흉한 도시가 맞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도시임을 부정하며 우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착하기 때문에 착한 도시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소수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지만 이를 부인하며 우리 다수는 모두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내세우고 있음을 느꼈다.

사건의 가해자인 러셀 핸더슨을 어릴 때부터 봤다는 할머니도 그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면서 착하고 최고의 스카우트였다고 안타까워했고 또 다른 가해자인 아론 매키니의 친구들도 아론은 재밌는 친구이고 교우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이렇게 마을사람들은 가해자들이 그러한 혐오범죄를 일으킬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수의 입장에서 다수에 속하는 사람을 옹호하며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말이다. 그들이 진정한 공동체라면, 행진의 본 목적에 맞게 매튜 쉐퍼드를 애도하고 이 일을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며 슬퍼해야한다. 마을 사람들도 이 혐오범죄를 끌어안고 아파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나은 마을이 되기 위해 반성과 다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이 사건을 맡은 형사는 소수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이해했고 어느 누구도 그런 두려움과 함께 삶을 살아가면 안 된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고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매튜 쉐퍼드가 죽은지 1년이 넘었는데도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반차별법이나 혐오범죄처벌법과 같은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이 매튜 쉐퍼드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98년 이후 11년만인, 2009년에야 ‘매튜 셰퍼드-제임스 버드 주니어 증오범죄 금지법안’이 세워졌다. 이 법이 세워지고 사형 집행으로 사건은 해결되어 정의가 승리했고 레라미 마을은 평화로워졌지만 사건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아직도 소수는 혐오범죄와 그들을 무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야하고 다수는 자신들의 못난 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종교와 인종의 문제로 증오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도 다수가 소수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연극을 통해 혹시 나도 일반적인 대중에 속해서 소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지 않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을 수 있었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뜻깊었다. 연극은 시대와 호흡한다. 연극의 수명은, 그 시대와 현실에 가장 날카롭게 던질 수 있는 그 메시지가 효력을 다할 때까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라미프로젝트는 혐오범죄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화살을 던진다. 우리의 혐오는 어디로 향해 있으며, 나에게 혐오의 시선이 쏟아질까 두려워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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