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을 동경하는 자들의 꿈과 사랑 - <라라랜드> [영화]

글 입력 2019.02.22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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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꿈꾸며 사랑 하는 사람들의 공간, <라라랜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과 음악의 환상적인 조화는 우리에게 마법과 같은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이 영화는 현대 뮤지컬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오마주 기법과, 미술적 효과를 중요시하는 현대의 연출 기법, 그리고 뛰어난 주제곡들이 결합하여 서로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중간중간 나오는 고전 영화의 향취는 마치 낭만적인 옛 거리의 느낌처럼 따뜻하고, 세련된 영상미는 현대 미술에서 볼 수 있는 함축의 아름다움처럼 눈부시다. 또한 영화가 추구하는 감정을 집약한 주제곡은 영화의 주제를 한 층 더 끌어올린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 남녀의 사랑을 종합 예술처럼 화려하게 표현하면서도 아련할 정도로 섬세한 감정으로 나타낸 점이다. 이 모든 영화적 요소들은 마치 화가 ‘마리 로랑생’의 ‘세 여인들’처럼 각각의 부분이 가진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전체적인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어낸다. 결정적으로, 영화 후반의 플래시백 기법은 영화적 요소들을 통해 세밀하게 축적해둔 모든 감정들을 폭발시키는 화룡점정으로 작용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극대화해낸다.


<라라랜드>는 ‘꿈’과 ‘예술’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데이미언 셔졜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와 공통점이 있지만,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그 형식에서 두 영화 간의 선명한 차이가 있다. <위플래쉬>가 좀 더 개인적인 관계의 측면에서 충돌하는 갈등을 통해 꿈에 대한 주제를 드러낸다면, ‘라라랜드’는 두 남녀의 꿈에서 사랑을 더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내용를 확장하여 주제론적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라라랜드’는 단순히 두 남녀의 꿈과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층적으로 쌓이는 내러티브를 통해 꿈과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주제 전달을 효과적으로 이루어낸다. 특히, 이 점은 영화 <라라랜드>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화의 제목, ‘라라랜드’는 로스앤잴러스(이후 LA)의 별명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꿈 같은 세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제목이 지닌 두 의미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때, 꿈과 사랑에 대한 데이미언 셔졜 감독만의 특별한 시각이 드러난다. 먼저, 라라랜드의 별명인 LA는 미국 영화산업의 메카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꿈의 도시’이다. 감독은 이런 상징적인 장소를 영화에 공간적으로 실현화하여 영화의 주제론적 토대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 장소가 가진 의미는 자연스럽게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라는 의미와 결합하여 감독만의 시각이 녹아든 영화적 의미로 재탄생한다. 두 개의 공간적 의미는 인물 간의 대화나 촬영 기법을 통해 계속 충돌하고 부딪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영화 제목 <라라랜드>는 ‘꿈의 도시’와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꿈을 꾸던 공간에서 마치 꿈같은 일이 일어나는 복합적인 공간적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결국, 영화 <라라랜드>는 모두가 동경하는 예술의 성지에 사는 사람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하거나 자신의 꿈을 이루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 영화인 것이다. 이 점은 영화의 시작인 오프닝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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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될 때, 화면은 오른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차 속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 ‘차’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정보를 제한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때, 여러 가지 소리의 틈을 뚫고 오프닝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마법이 시작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차에서 나와 다 함께 리듬에 몸을 맡기며 자신들의 꿈과 사랑을 노래와 춤으로 표출한다. 마치 꽉 막힌 도로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이, 노래와 춤이라는 예술을 만나 생동감을 가진 꿈의 무대로 급변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무대 위 아티스트가 되고 그들의 꿈과 사랑은 훌륭한 예술이 되어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다. 그들의 독보적인 활공을 이어주는 롱테이크는 장대한 2.35:1의 시네마스코프 비율과 결합하여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리듬의 흐름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이러한 예술적 장치를 통해 꿈을 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과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놀라운 기선제압에 성공한다.


데이미안 셔졜 감독은 이 오프닝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암시를 뮤지컬 형식으로 화려하게 담아내기도 했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말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당연 돋보이는 것은 스크린 속 모든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뜨겁게 표현하는 꿈과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여기에서 감독은 카메라 워킹과 화면비율의 탁월한 결합을 통해 주제의 시각화를 명실 상부하게 완성해낸다. 결국, 감독은 영화를 통해 겉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꿈과 사랑을 품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이러한 감독의 시선을 대변하는 오프닝 노래가 스크린에 닿는 순간, 모든 공간 속 인물들은 생동감을 얻고 에너지를 발산한다. 모든 사람들의 꿈과 사랑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예술로 실현되는 놀라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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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들의 어두운 현실



미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카페 사장에게 미리 오디션 일정을 말해두었지만, 사장이 철저하게 무시하는 단적인 장면이 그녀가 처한 상황을 요약한다. 이후, 미아는 자신의 꿈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찾기 위해 파티에도 가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파티 장소의 화려한 배경과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사람들의 정적인 모습은 미아를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한다. 이런 시각적 효과는 미아가 처한 외롭고 씁쓸한 상황을 심도 있게 나타낸다. 자신의 꿈을 인정받지 못할 때, 생기는 고달픈 현실이 스크린 밖까지 흘러나와 관객들의 마음속을 흔든다.


세바스찬 역시 딱한 처지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지키려다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지만, 주변의 재즈 클럽들은 현실에 맞춰 변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동료는 전통적인 재즈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게 단순히 용기라는 단어로 설명이 가능할까. 세바스찬은 재즈를 싫어하는 사장의 레스토랑에서 억지로 징글벨을 연주하다가 회의감에 빠진다. 우울해진 그의 위를 핀 조명이 비추는 순간, 머리속에서 일렁이던 회의감이 분노로 변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앵글 속에서, 그는 격렬하게 재즈를 연주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잔혹한 현실과 레스토랑 사장은 그의 재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레스토랑에서 해고된 세바스찬은 또다시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졌다. 본인의 전부였던 꿈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고 목을 조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 꿈을 꾼 게 잘못된 것일까.


사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잔인한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이 부분을 초반에 집중 조명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꿈이 항상 화려하고 낭만적인 것이 아닐수도 있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희망이라는 환상 속에 가려진 꿈의 사각지대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비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비극적 상황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꿈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할 뿐이다.


여기서, 감독이 제시한 두 인물의 꿈에 대한 단편적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물론, 모든 문제가 사랑으로 해결된다는 낙관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선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어떤 식으로 두 인물들에게 영향을 줄지는 영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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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처럼 아름다운 두 인물의 사랑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아름다운 예술로 치환되어 스크린에 짙게 물들었다. 지루한 파티가 끝나고, 벤치에 덩그러니 남겨진 두 사람은 말없이 춤만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조화로운 춤사위가 서로의 호흡과 동일시되는 순간, 그들은 무대 위 뮤지컬 주인공이 되었다.  미아가 화려한 독무를 한 뒤 재빠른 손짓으로 세바스찬을 가리키면, 그는 말 대신 열정적인 몸짓으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다. 그 순간 그들의 춤사위는 사랑스러운 애정행위로 바뀌게 된다. 두 남녀의 사랑스러운 탭댄스 장면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어 그 어떤 키스 장면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한편, 미아와 세바스찬이 영화 같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아는 <이유 없는 반항> 스크린 앞에 선 채 영사기로 흘러나오는 빛에 몸을 맡긴다. 그때, 그녀는 <이유 없는 반항> 영화 그 자체가 되어 세바스찬에게 형상화된다. 이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두 사람은 영화의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서 몸소 영화에 스며든다. 미아가 스위치를 켜자 천장은 광활한 우주로 변하고 두 사람을 짓누르던 중력은 사라진다. 손수건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본인들이 영화 그 자체가 되었다는 걸 인지한 세바스찬은 미아를 우주 위로 올리고 자신도 따라 날아간다. 이번에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부드럽게 왈츠를 출 뿐이다. 그들의 사랑에 감동한 듯, 우주의 수많은 별들은 오로지 두 사람만을 향해 빛을 비춘다. 춤이 끝나고 지상으로 사뿐히 착지한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순간, 모든 사물의 시간은 멈추고 그 자리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편, 화려한 촬영기법과 활기찬 음악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예술로 표현한 장면도 있다. 재즈 카페에서 미아가 춤을 출 때, 세바스찬은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 스위치팬 기법으로 화려하게 교차된다.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두 사람의 교차는 더 현란해지고 역동적으로 나타난다. 놀라울 정도로 리드미컬한 카메라 기법은 밝은 음악과 결합하여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이 예술로 영화에 형상화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움을 넘어 감정이 리드미컬하게 폭발하는 하나의 행위 예술로 승화하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극적인 예술로 승화하여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사랑 보다 더 빛나는 예술이 있을까. 본래부터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이 예술을 만나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도의 미적 가치로 급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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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로 드러낸 낭만에 대한 동경심



탁월한 선택으로 연출된 오마주 기법은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게 된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 기법으로 의도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오마주 기법을 사용하여 낭만에 대한 동경심을 아낌없이 표출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미아와 세바스찬이 카페에 나와 ‘카사블랑카’를 촬영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진심 어린 대화 속 고전이 가진 분위기는 가중되어 낭만이라는 감정을 통해 스크린에 나타난다.


또한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춤을 출 때 <사랑은 비를 타고>가 오마주 기법으로 스크린에 재현된다. 세바스찬이 가로등을 잡고 한 바퀴를 도는 순간, 두 사람은 고전 영화가 있던 1954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세바스찬은, 사랑을 노래하며 탭댄스를 추던 돈 락우드가 되어 격정적인 춤사위로 짜릿한 사랑을 표현하고, 고전 여배우가 된 미아는 그와 춤을 추며 모든 감정이 결합된 몸놀림을 보여준다. 이때 감독은 현대적인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모든 감정과 호흡들을 연결하면서 고전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해냈다. 결국 고전의 향수와 현대 촬영 기법의 놀라운 결합으로 성취한 낭만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것이다.


영화에 표현된 오마주 기법들은 단순히 고전 영화에 대한 감독의 존경 어린 헌사 시로 그치지 않는다. 낭만에 대한 존경심은 영화의 두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의 가치관에서도 드러나면서 두 인물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두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해주는 중요한 요소인 ‘꿈’도 낭만에 대한 동경심이 깊게 녹아들어있다. 특히 그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의 공통점은 예술가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예술과 낭만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가치들이다. 낭만을 통해 예술이 빛나고, 그 가치를 기반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더욱 키워나간다. 이를 통해 그들의 성공을 위한 이야기가 더욱 무게감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오마주 기법을 통해서 형성한 낭만이라는 가치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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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인물들의 대응 방식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에 대해 대응했다. 먼저, 세바스찬은 주변의 압박으로 인해 전통적인 재즈로는 성공하기 어려움을 느끼고 현실에 맞춰 자신의 신념을 한발 뒤로 물렀다. 결국, 그는 ‘타협’이라는 대응 방식을 통해 꿈에 점차 다가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우선 그가 대응 방식을 변화시킨 것이지, 자신의 꿈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거기서 그는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결코 목적지는 변하지 않았다.


여기서, 영화는 같은 장소에서 대비되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두 인물 간의 충돌을 보여준다. 세바스찬은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성공하기 시작할 때, 미아를 콘서트에 초대했다. 누구나 자신의 성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기 마련이다. 미아도 그런 세바스찬의 마음을 알기에 콘서트로 향했다. 하지만 미아의 예상과 달리, 세바스찬은 자신의 평소 신념과 완전히 다른 음악을 선보였다. 미아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전과 완전히 다른 그의 모습은 그녀가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때, 버즈아이 뷰를 통해 미아가 관객들에게 부딪혀 뒤로 밀려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녀와 세바스찬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멀어지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화려한 무대 위에 있는 세바스찬과 어두운 객석에 가려진 미아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그녀의 무력감이 한층 더 깊게 드러났다. 미아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결국, 그녀는 변해버린 그에게 실망과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며 서서히 그의 곁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 세바스찬과 달리, 미아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준비했다. 그녀는 혼자서 연출과 연기를 모두 완성한 뒤, 본인만의 일인극을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할 뿐이었고, 그들이 툭툭 던지는 험담은 미아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없었고, 꿈을 접고 ‘라라랜드’에서 도망치듯 떠났다. 계속된 실패에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 미아 역시 모든 걸 잃었고 또한 비참한 심정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그저 남은 방법은 그곳에서 도피하는 것뿐이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각각의 대응 방식에 대해 정답은 없다. 그저 한 남자는 변화를 선택했고, 한 여자는 직진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얼마 후, 우연한 사건으로 마지막 기회를 얻은 미아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현재의 자신을 꾸임 없이 노래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실패자가 있고 그들은 그럼에도 다시 도전한다. 그녀의 노래는 좁은 방을 가득 채웠으며, 비로소 그녀는 늘 꿈꾸던 배우로 성장했다. 미아는 오디션이 끝난 뒤 세바스찬에게 “우린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다. 그건 그들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를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위치를 물어본 것이다. 세바스찬은 모른다고 답한 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사랑과 꿈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놓였다. 그들은 대응 방식으로 그저 ‘흘러가는 것’을 택했고 각자의 꿈을 향해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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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연출로 탄생한 마법 같은 플래시백



5년이 지나고, 미아는 최고의 배우가 되었으며 세바스찬은 자신의 늘 꿈꾸던 재즈 펍을 오픈했다. 둘 다 각자의 꿈을 이뤘지만 단 한 가지,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랑 대신 꿈을 선택한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이후 미아는 자신의 남편과 우연히 세바스찬의 펍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함께 온 미아를 본 세바스찬은 우수에 젖은 채 천천히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들을 둘러싼 주위는 어두워지고 핀조명이 오로지 세바스찬과 미아만을 비추며, 마침내 두 사람은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과거로 돌아갔다. 5년 전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세바스찬은 무심코 지나갔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미아에게 입맞춤을 했다. 그는 그동안 계속 후회했던 기억을 정정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카메라 앵글은 키스를 하는 두 사람 곁을 반복적으로 회전하였고, 둘 사이에서 축적되었던 모든 감정들은 한순간에 폭발했다. 복잡 미묘했던 모든 감정이 한 번의 울림으로 쏟아져 나오는 간절하면서도 애틋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경쾌한 음악이 깔림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을 축복하면서 마법과 같은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그다음 두 사람은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이 그들의 관계에서 후회되던 순간의 기억을 순차적으로 조율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먼저 서로의 꿈에 대한 후회를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자신들의 꿈을 방해했던 훼방꾼을 돌려보냈고, 실패했던 미아의 연극은 찬사와 환호로 가득 찼다. 꿈에 대한 기억을 바꾼 두 사람은 이윽고 무대 출입구에 다다랐다. 마침내, 그저 꿈을 꾸던 공간에서 비현실적 꿈의 세계인 ‘라라랜드’로 입장하는 마법과 같은 순간이 온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도착한 공간의 모든 사물들은 환상적인 무대의 소품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조연 배우가 되어 주인공인 두 사람이 빛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결국, 세바스찬의 노래가 끝나자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급하게 펍을 나가던 미아는 마지막으로 세바스찬을 쳐다봤고 세바스찬은 멋쩍은 웃음으로 그녀에게 화답했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그녀를 향한 수많은 감사와 사과의 말이 녹아들어있었다. 결국, 그들이 꿈꾸던 ‘라라랜드’는 끝이 났지만, 두 사람은 또다시 각자의 인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슬픈 두 개의 모순된 감정을 주축으로 연출된 9분간의 플래시백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늘 꿈꾸던 ‘라라랜드’를 실현해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꿈과 사랑을 모두 이루었다. 플래시백에서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두 인물의 과거 이야기는 세련되면서도 폭발적인 음악과 카메라 무빙을 통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환상적인 영화의 연출이 거듭될수록, 황홀함과 애절함이 동시에 감정의 파도를 타고 밀려온다. 이윽고 파도가 ‘후회’라고 써진 모래 위 글씨를 덮치고 사라지는 순간, 모래 위에는 어떠한 후회도 남지 않았다. 사랑과 꿈, 그리고 낭만이 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마법 같은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끊임없이 폭발하고 분출되었다. 낭만이 자리 잡은 감정의 분수에 젖는 순간, 기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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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에서 나타난 꿈과 사랑



먼저, 낭만이 존재 할때, 꿈과 사랑은 더 빛이 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과 사랑이 화약이라면 낭만은 마치 불같은 존재이다. 낭만을 통해 꿈과 사랑은 비로소 폭죽이 되어 순간의 빛을 발산하는 불꽃이 된다. 짧지만, 강렬했던 두 사람의 폭죽은 아련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떻게 보면 낭만은 꿈과 사랑의 본질적인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만약, 미아와 세바스찬에게 낭만적인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두 사람은 주저 없이 “꿈과 사랑”이라도 대답할 것이다. 꿈과 사랑이 없는 인생이 낭만적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항상 염원하던 꿈도 낭만에 기반했으며, 사랑 역시 낭만이랑 이름의 토양에서 자란 한 송이의 장미였다. 결국, 낭만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꿈과 사랑을 더 아름답게 만든 가치이자, 두가지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인 것이다. 낭만이 바탕이 된 도화지에서 그들의 꿈과 사랑은 화려한 색감의 물감이 되어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꿈과 사랑, 두 개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운명의 장난과 같은 갈림길에 놓였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꿈을 향해 나아갔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남겨진 채 끝이 났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두 가치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꿈과 사랑 모두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비록 꿈을 선택하였지만, 몇 년이 지나도 자신들의 뜨거웠던 사랑을 잊지 못한다. 특히, 마지막에 그들의 꿈과 사랑이 화려하게 집약된 플래시백에서 두 사람은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후회를 표출한다. 결국, 이 영화는 꿈과 사랑 중에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두 가치 모두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한 연인의 애절한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라라랜드는 각각 꿈과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모순된 이중적 플롯의 엔딩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한가득 들어간 것만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라라랜드’라는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에서 두 사람은 꿈과 사랑, 두 가치를 모두 원한 연인이었다.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영화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꿈과 사랑이 낭만을 만나 더욱 아름다워지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현실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결국 끝이 났지만, ‘라라랜드’ 속 두 사람의 사랑은 낭만이라는 약속 안에서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홍성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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