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의 글을 배껴쓰다보니 내 글이 문득 그리워졌다 [기타]

단편소설 필사
글 입력 2019.02.22 15: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필사"

필사를 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어렸을 적 오른팔에 쥐가 날 정도로 깜지 숙제를 하고나면 쓰잘데기 없는 짓을 했다며 툴툴거리던 나였다. 물론 학교에서 내주던 막노동 깜지(ex.한자쓰기,반성문쓰기 등등...)는 여전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뭔가를 그대로 배껴쓰는 일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인생 뜻대로 안 된다는 게 맞는 말인 걸까. 그새를 못 참고 사서 고생길에 뛰어 들었다.

예상치 못했지만 성인이 되서 제일 많이 한 일은 글쓰기 었다. 물론 형식 안 갖추고 막 휘갈겨 쓴 글들이 대부분이긴 하나 어찌됐든 내가 쓴 글들이 맞았다. 그 글엔 항상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고, 나는 나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내 곧 글쓰기에 한계를 느꼈고 그 한계는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것이었다(좋게 말하면 진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창의적이고 한번에 확 이해가 가는 표현들이 떠오르지 않았고 매번 짧은 문장로만 글을 완성해나갔다.


글쓰기.jpg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글쓰기에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라고 말하기엔 보잘 것 없는 실력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글을 쓰기 싫었던 때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똑같은 글들만 쓰다보니 점점 글의 매력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고 해야하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써 봐야겠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한 순간에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됬을 때에는 잠깐 멈칫했었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되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찾은 최선의 해결책은 글쓰기를 포기해야겠다가 아닌 '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이었다.

그래서 문장 배껴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내 의지로. 윤동주 시인이 닮고 싶은 작가인 백석의 시집을 여러번 배껴썼던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문체와 생각을 가진 작가의 글을 배껴쓰기로 했다. 잘 쓰는 사람의 문체를 그대로 닮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 다양한 표현과 생각의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표현의 풍선에 바람을 채워서 문장과 함께 묶어서 날려보낸다면 내 글이 좀 더 아름다워지진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필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아까 말했다시피 글쓰기가 그렇게 쉽게 느는 것도 아니고, 단편소설 3개 필사한 게 전부기 때문에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글을 쓰다가 종종 튀어나오는 몇몇 독특한 표현들이 꽤나 반갑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과 이 상상을 하게끔 만든 것이 내가 공들여 배껴쓴 그 글들 때문이란 것. 정말 미세하지만 필사를 통해 글쓰기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크기변환]ㅍ1.jpg
 


이번 필사에서는 부드럽고 담백한(개인적인 생각이다) 문체로 사랑받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을 필사했다. 이번 여름에 신간도서가 나와서 읽는 김에 손으로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책 주문을 하고 같이 필사를 할 사람들을 모았다. 놀랍게도 10명 이상이 같이 하겠다고 했다.



ㅍ3.jpg
 


나는 <풍경의 쓸모>라는 소설을 필사했다. 그냥 내 추측이지만 <풍경의 쓸모>는 김애란 작가가 쓴지 꽤 오래된 글 같아 보인다. 왠지 신춘문에 수상작 책에 등장하는 신인작가의 글을 보는 것 같달까. 좋았다. 정말 좋았는데, 김애란 문체가 이런식으로도 바뀔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글이었다. 또 문장을 끊는 타이밍-마침표의 사용이 눈에 띄었는데,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방식이었다. 소설 도입부의 알 수 없는 인물들의 대화와 요상한 비유들은 시간이 지나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갈 때 쯤 다시 생각나 곱씹게 되었다. 무슨 데자뷰 같은 상황을 만난 것 처럼 며칠전에 내 손으로 배껴썼던 글을 다시 읽고 밑줄 그었다. 그렇게 작가의 생각과 인물들의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다.


'나라면 여기서 어떤 표현을 썼을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 같은데...'

'소설 쓰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건 아니구나?'



내 나름대로 필사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자면, 필사는 작가의 글을 그대로 닮아가는 게 아닌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 인 것 같다.

자신의 글의 헛점과 좋은점을 찾는 데에는 독서보단 필사가 아주 조금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ㅍ2.jpg
 

다행이게도 필사는 잘 마무리 했다.

3주만에 다 쓸 수 있는 분량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재밌었다.

열심히 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필사는 글쓰기 훈련 이외에도 글의 이해, 맞춤법 공부, 정신수양 등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 필사에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얻는 게 많을테니.

 :-) 


[김다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