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영화. 그 안의 사랑에 대하여 [도서]

영화 속 사랑과 인생 이야기, <영화의 심장소리>
글 입력 2019.02.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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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트인사이트에 작은 칸을 빌려 <추억팔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했었다. 콘텐츠에 얽힌 나의 경험담을 풀어놓겠다는 것이 기획의도였는데, 이런저런 생각의 정리로 인해 약 한달 간 휴재중이다. 책 <영화의 심장소리>를 읽으며 난 깨달았다. 내가 <추억팔이>를 통해 쓰고 싶었던 글이 바로 이런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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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심장소리>는 영화를 통해 작가 자신과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따듯한 에세이이다. 책에는 <500일의 썸머>, <라라랜드>, <리틀 포레스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영화들부터 <이탈리아 횡단밴드>, <길버트 그레이프>, <앙리, 앙리> 등과 같이 비교적 낯선 영화들까지 다양하게 소개된다. 이미 본 영화에서는 내가 품었던 의미와 작가의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보지 못한 영화가 등장하면 나중에 볼 요량으로 리스트에 추가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영화 이야기를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작가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담을 풀어놓기에 생전 처음 보는 영화 이야기라도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국의 독립/예술영화가 위기라는 기사를 읽었다. 아마도 독립/예술영화는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다수의 인식 때문일 것이다. 작품성, 그리고 나름의 재미마저 있으나 인지도는 없었던 영화를 바로 이 책이 대중과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쉽고 편안하며 따듯한 책이기 때문이다.



러브 인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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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영화다. ‘파리지앵 삼남매가 아름다운 프로방스에서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여름을 지내며, 서로가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소개되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내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영화 중 하나인 <레옹>의 장 르노가 나온다는 점에서 영화 리스트에 추가해놓았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 갇혀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 말 이전의 침묵의 언어에도 귀 기울일 줄 안다면, 관계에 있어 많은 문제가 해결됨을 시사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요즘 한창 족보 제작에 열을 올리고 계시다. 유서 깊은 밀양 박씨 가문의 족보를 남겨야 한다나 뭐라나. 사실 나의 할아버지는 조금 유난스러우시다. (?)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가 장남이신 탓에 명절마다 차례도 성대하게 지내며, 연 2회 정도의 제사까지 꼭꼭 챙긴다. 차례 음식이 조금이라도 맛이 없거나 재료가 이상하면 어김없이 잔소리가 시작된다.

덕분에 예전부터 엄마가 고생이 굉장히 많으셨다. 요즘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연세가 드심에 따라 몸 이곳저곳이 많이 아프시고, 그와 동시에 성격도 더욱 까칠(!)해지셨기에 엄마와 아빠가 굉장히 고생 중이시다. 때문에 당장 ‘내’ 엄마, 아빠가 더 걱정인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다지 살갑게 대할 수 없었고, 할아버지의 족보 프로젝트가 발표되었을 때는 엄마아빠와 함께 뒷목을 잡았더랬다.

헌데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껍질 뒤에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진심이, 그리고 당신이 살았다는 증거로서 족보라는 결과물을 남기고 싶은 그저 유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썸을 탈 때는 저 사람의 말과 표정에 숨겨진 진짜 의미가 무엇일지 그토록 밤새워 고민하면서, 왜 할아버지에게는 그토록 마음을 열어보지 못했을까. 어쩌면 할아버지의 족보 프로젝트에 조금 더 관심있는 척을 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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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영화이기에 스토리까지 대충 알고 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영화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 우리에겐 그저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니라, 본받을만한 ‘진짜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 <인턴>에서 앤 하서웨이가 로버트 드니로에게 말한다.

“진짜 어른과 어른 같은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책에 소개된 글을 읽어보니 인턴 할아버지인 ‘벤’은 요즘 세상에 결핍된 ‘진짜 어른’인 것 같았다. 진짜 어른. 진짜 어른을 만난 적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몇 사람 떠오른다. 그 중 내가 만난 어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분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학교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초청으로 한 음악평론가분께서 강연을 오셨다. 50대의 나이에 머리가 벗겨지신,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대중음악평론가답게 방탄 소년단, 아이유, 트와이스 등등 인기 음악인들의 ‘썰’을 곁들여 평론가의 삶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다 문득, 오늘날의 높은 취업장벽과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갑자기 그 분께서 우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히셨다. ‘윗 세대로서, 여러분께 이런 환경을 물려줘 정말 죄송하다’고 그 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고개 숙인 아버지뻘 어른을 향해 20대들의 당황스러운 박수가 터져나왔고, 그 속에 있었던 나는 그 순간이 꽤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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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청춘들의 힘듦마저 대상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높은 취업장벽과 경제적 어려움, 무한경쟁으로 인한 피로도. 모두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들 역시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인격체들이기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내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난 느낀다). 헌데 요즘의 오피니언이라던가 대중매체는 청춘들을 그저 ‘불쌍히 여기기만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청춘을 연민의 대상으로서 향유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무것도 제시해주지 못한 채 그걸로 끝이랄까.

헌데 이 분께서는 윗 세대로서 다음 세대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려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딱하다는 눈길이 아닌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어른은 거의 처음이었다. 이런 분을 눈앞에서 목격했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진짜 어른은, 다음 세대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인턴> 중 딸 뻘의 CEO ‘줄스’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벤’은 분명 이런 어른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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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봤지만, 개인적으로 지루했기에 약간 졸면서 본 영화이다. 그저 몇 장면만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이 영화를 책에서 만났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정이 있는 두 남녀 주인공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임을 알고 괴로워하다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저들과 달라야 한다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결국 서로를 오래도록 그리워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뤄지지 못한 절절한 사랑은 이 영화를 홍콩영화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중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 인생에 깊은 만족이란 끝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 할까보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 공감한 말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회사를 알아보고 있는 요즘, 그 어떤 회사와 직무에도 100% 만족할 수는 없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누군가 ‘80% 만족하면 그건 천직’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동의가 간다. 나머지 20%는 결국 취미가 아닌 일이기에 왠만해서 채워지긴 힘들 것 같다.

비단 일뿐일까. 어떤 상황이건, 어떤 사람이건 그로부터 완벽한 만족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결함마저 소중히 안아들었을 때, 어쩌면 그것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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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가 너무나 많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싱 스트리트>부터 <아노말리사>, <카페 소사이어티>까지. 책 <영화의 심장소리>에는 반가운 작품도 많았으며, 새로운 작품 역시 많았다.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으며, 그보다 더욱 다양한 인생 선배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한동안 괜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던 나의 중심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나름의 자리를 되찾고 있었다.

영화에는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 위에 작가만의 깊고 공감가는 사유를 덧붙인 이 책, <영화의 심장소리>는 오래도록 머리맡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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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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