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촛농이 흐른 곳 [도서]

<창작과 비평 182호>를 읽고
글 입력 2019.02.2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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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이라는 대전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촛불혁명에 대한 논의는 좁은 의미의 정치,

혹은 정책 담론에 갇혀서는 안 된다.


- 창작과비평 182호 中 -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집회라고 불렀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촛불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그것을 폭력시위라고 힐난했다. 많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어 자신의 신념을 표출했다.

다른 이는 그것을 오히려 혁명이라고 자랑했다. 진정한 의미로 평화롭게 정의를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촛불은 작은 불빛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불빛들은 모여 장엄한 경광을 일구어냈다. 모든 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꿨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새롭게 바뀔 모습을 꿈꾸며 사상 초유의 인파가 광화문으로 나섰다. 그 촛농이 하나둘 떨어진지 그새 이 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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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2019년 봄 호가 나올 걸 알고는 있었다. 알면서도 조금 시간이 지난 2018년 겨울 호를 집었다. 표절 시비에 관한 대응으로 한동안 보지 않은 만큼, 글결이 담고 있는 호흡도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세월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혁명을 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문단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짚었다. 촛불을 켠 자리는 어느새 촛농으로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촛농들이 어떠한 방향과 장소를 향해 굳어갈지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호는 그에 대한 물음을 다루었다. 특집의 이름은 "한국문학과 새로운 주체"로 되어 있다. 그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여러 담론들을 바라보는 문학의 시선에 대해 책은 담았다. 그리고 문학이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평적으로 해내야 할 역할을 물었다. 그리고 곧 다가올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민족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조심스레 진단했다.


촛불 이후로 우리 사회가 맞이한 움직임은 크게 '고정 관념의 파편화'와 '변화의 가능성'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사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했다. 책의 표현 일부를 빌리자면, "'어차피' 안 될 것이라던 정서가 팽배했던 한국 사회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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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으로 실린 글 중 한기욱이 쓴 「주체의 변화와 촛불혁명」은 그러한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그에 걸맞은 한국문학으로 살펴본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 정미경의 『못』, 그리고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이 이를 위한 동행길을 함께 했다. 한기욱은 촛불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우선 '체질과 의식의 변화'에 주목했다. 새로운 술은 새 부대가 담가야 한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사실 그러한 변화가 쉽지는 않다. 변화는 이전보다 나은 방향을 목표로 나아가지만, 결과가 항상 비례해서 뒤따라오지는 않는다. 『웃는 남자』가 건네는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끊을 놓치지 말라는 데에 있다. 책에서 주인공 도도는 추돌 사고 때 '의식적으로' 연인 디디를 붙잡지 못한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가방을 잡아 연인을 죽게 만든다. 도도는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못』은 여기에다가 좋은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를 더한다. 주인공 공은 금희와 불륜을 한다. 이 관계는 공이 직장 상사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받으며 끝이 난다. 이때, 공은 다시금 금희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을 떠올린다. 좋다고 느끼는 시간이 언제나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금희의 숨은 속뜻도 그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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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언제나까지 지속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변화 이후에 찾아오는 것들을 생각해보는 작업은 적지 않게 중요하다. 두 소설은 그러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졌다고 한기욱은 본다. 여기에 더해 그는 『경애의 마음』이 '마음 중심의 흐름'이라는 방식을 통해 촛농의 방향을 어슴츠레 바라본다. 다시 한 번 글을 인용하면, "마음은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방식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마음은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여러 표현들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여러 시련과 아픔을 여과 없이 진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음 중심의 흐름'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흐름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욱 크게 작용한다. 이해를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과정은 천천히 타인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경쟁으로 사회의 첫 발을 디디는 요즈음 현실에서 그러한 점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게 '나'라는 개인을 넘어 '우리'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집어넣는 데에 있다. 설사 변화가 어느 한 시점에서 툭 끊겨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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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풀」처럼,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유가 문학을 넘어 사회 담론으로 어떻게 뻗어나가는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등장하는 「비평이 왜 중요한가」에서 양경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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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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