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분노가 익어간다, 산울림 고전극장 <분노의 포도>

극단 걸판 <분노의 포도> 리뷰
글 입력 2019.02.28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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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2019.02.20.(수)~03.03(일)

평일 8시 / 주말-공휴일 3시

소극장 산울림


원작 존 포드 영화 <분노의 포도>

Based on 「The Grapes of Wrath」

John Steinbeak, 1939


연출 최현미

출연 유도겸 김성관 최현미 도창선 신정은

정문길 조은진 이동기 홍나현 조흠 김수응



분노의 포도, 포도가 화라도 난 것일까, 이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었다. 우스꽝스러운 제목이라고도 생각했다. 내용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조드 일가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서야 제목 속의 깊고 또렷한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분명하게 눈 앞에 그릴 수 있었다. 분노가 모이고 모여, 그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 알알이 탄탄하게도 여문 분노의 포도. 그 분노로 영그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난 21일, 그 분노를 고스란히 무대에 올려낸, 산울림 고전극장 <분노의 포도>를 보고 왔다.


*


가뭄, 그리고 대자본의 진출로 조드 일가는 하루아침에 땅과 집을 잃는다. 심지어 땅을 떠나지 않으려던 할아버지까지 곁을 떠나고 만다. 절망도 잠시, 캘리포니아에서 800명의 일꾼을 구한다는 전단지에 희망을 걸고 조드 일가는 떠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경비와 트럭의 노후함으로 고된 여정만 계속된다. 결국 누군가는 자의로 떠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희생 속에서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저임금과 착취, 부자들의 탐욕만이 드글대는 소굴이다. 서로를 갉아먹으며 매일을 견디던 가족들은 결국, 분노를 마주하게 된다.




이 총구를 어디로 겨눠야 하는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았다’, 라는 말이 있다. 조금 과장된 감이 없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 일이 <분노의 포도>의 조드 일가에게 그대로 일어났다. 하지만 누구에게 복수나 분풀이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밀러는 자본가들로부터 집을 구하기 위해, 집을 부수러 온 일꾼에게 총을 겨눴단다. 그러나 총구 끝에 있는 일꾼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일 뿐이다. 집을 잃은 이들과 똑같은, 당장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고용된 사람. 실제로 집과 땅을 미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그들의 고용주다.


그러나 그들의 고용주 역시 윗사람의 하청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렇게 자꾸만 밀러가 총구를 겨눠야할 타깃은 모호해지고 멀어져갔다. 누구를 향해 겨눠야 하는지도 모르는 총구. 분명 집과 땅을 빼앗겼는데, 탓할 사람이 없단다. 자본이란 추상적인 무언가가 그렇게 만들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질 수 있게, 못 가진 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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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고작 150달러가 경비의 전부다. 캘리포니아까지의 여정이 험난할 수밖에. 식량이 부족한건 물론, 가족의 생명까지 위태롭다. 자존심을 구기거나 원치 않게 고개를 숙여야할 때가 자주 찾아온다. 더구나 모든 걸 걸어가며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이미 일꾼들로 포화 상태다. 저임금, 착취,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조모가 굶어간다는 자초지종에 빵을 싸게 팔고, 마찬가지로 굶은 아이에게 1페니에 사탕 2개를 판다. 캘리포니아까지 오는 길에 허기로 며칠을 보냈어도, 캠프에서 심부름을 자처하는 아이들에게 수프를 나눠준다. 열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본가 아래에서 부당 독점 판매를 하더라도 임산부를 위해 우유를 몰래 건넨다. 참 이상하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서로 더 나누지 못해 안달인 것이. 아마 서로의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겠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다



반면 가진 사람들은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다. 캘리포니아가 지옥이 된 것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영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같은 인간이 다 삼켜버렸단 의미다. 농장 밖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굶어죽는 사람이 천지인데, 수확한 오렌지를 그냥 다 버린다. 오렌지가 너무 많이 생산되면 값이 떨어지니, 값을 높이기 위해서다. 농장주들의 모임은 더 이상 비싼 임금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 임금을 하향평준화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이 넘쳐나니, 약속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 저항하면 해고하거나, 폭력으로 해결한다. 저항하는 이들은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부당하게 잡아간다. 총구 끝, 누구를 겨눌지는 몰라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것만 같다. 돈 때문이다. 돈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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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눈 앞의 5센트냐 보이지 않는 인간다운 삶이냐



결국 조드 일가는 노동투쟁을 하는 이들을 대신해 한 박스당 5센트를 받고 일을 한다. 노동투쟁이 실패하면, 조드 일가는 한 박스당 2센트를 받고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목사는 톰에게 노동투쟁을 함께 해달라고 간청한다. 바로 눈앞에 있는 돈을 버리고, 정당한 노동대가를 받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말한다.



포기할 수 없겠지.

하지만, 포기했으면 좋겠네. 톰.
이건 가뭄이나 모래 폭풍과는 달라.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야.

우린 이걸 막아낼 수 있어.
우리가 막아낼 수 있단 말일세.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5센트냐, 다 같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투쟁이냐. 톰은 갈등의 기로에 선다. 노동투쟁을 선택하는 것이 무조건 올바른 길일까? 글쎄.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생계를 버리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미래가 당장의 허기를 달래주는 것도 아니다. 딜레마란 이런 것이다. 참 우습다. 이러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는 쌓이고 쌓여, 결국 터질 것이다. 하루 일해 한 끼 먹는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서로 돕는 사람들끼리 견고히 뭉쳐, 부르짖어보겠다고. 어깨를 들썩이고 미간을 찌푸릴 것이다. 씩씩거릴 것이다. 참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니까, 인간이 막아내기 위해, 당장의 허기를 참고 달려들 것이다. 극의 마지막은 <분노의 포도>, 그 분노로 영글어진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영화 <분노의 포도>는 로드무비인데다가, 등장인물이 상당수이고, 워낙 대서사의 원작을 기반으로 두고 있어 연극으로 각색하기에 썩 쉬운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필요한 작품이다. 계속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 걸판은 극 소개에 앞서, 재미있는 카피를 내세웠다.


본 작품은 80년 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서,

대한민국 현실과 ‘전혀’ 상관없음?


상관있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무려 80년이 지났지만, 심지어 다른 나라지만, 충분히 현재의 대한민국과 교차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가진 사람들은 계속 가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가지지 못한다. 오늘의 허기와 내일의 삶을 고민해가며 맞서 싸우려는 자들을 쉽게 지우고, 선택지를 만들어낸 장본인들만이 살아남는다. 연극 <분노의 포도>는 여전히 비극은 계속되고, 분노는 차오르고, 포도는 익어가고 있음을 전달하는, 여전히 필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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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걸판의 <분노의 포도>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극단 걸판의 <분노의 포도>가 다소 번잡하다고 느낄 수 있다. 연극치고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또 너무 많은 경로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판의 <분노의 포도>는 원작 영화와 비교해보았을 때, 오히려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인데다가 흐름도 잘 간추렸다. 영화 <분노의 포도>는 원작 소설의 대서사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특징을 많이 삭제했다.


그러나 걸판은 과감히 캐릭터를 잘라내고, 남은 캐릭터를 조리 있게 살려냈다. 흐름 역시 영화에 비해 더 설득력이 있도록 다듬어졌다. (물론 부족하거나 과한 장면도 있지만!) 또, 넘버의 삽입으로 효과적으로 전개를 압축한 것은 물론, <고향집이 떠오르네>, <겨울이..>와 같은 넘버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극단’이 가지는 그들만의 합으로 지루하지 않은 호흡을 만들었다.


아직 ‘분노의 포도’를 접하지 않았다면, 극단 걸판의 <분노의 포도>를 만나보길 바란다. ‘분노의 포도’를 보다 쉽고 감성적으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19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 중, 극단 걸판의 <분노의 포도>는 3월 3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계속 되며, 그 뒤를 이어 6일부터 17일까지는 창작집단 LAS의 <헤카베>가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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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


참여 단체 : 극단 걸판, 창작집단 LAS


공연 기간 및 기간
<분노의 포도> 극단 걸판 / 연출 최현미
2월 20일(수)-3월 3일(일)
<헤카베> 창작집단 LAS - 각색/연출 이기쁨
3월 6일(수) - 3월 17일(일)
평일 8시 / 주말-공휴일 3시 화요일 공연 없음


주최/주관 : 극단/소극장 산울림
관람료 및 할인 정보 : 전석 3만원
50% 할인 - 경로, 장애, 국가유공자
20% 할인 - 조기예매, 마포구 거주자, 산울림 티켓소지자
30% 할인 - 학생, 공연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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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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