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야 할까요 [문화전반]

알아도 쓸데없는 신비하지 않은 잡다한 이야기
글 입력 2019.02.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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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대략 4개월 동안의 에디터 활동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여백으로 가득 찬 흰 배경을 띄우면 머뭇거림만 늘어가네요.




#글이란 세계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그려온 그림과 이제 막 시작한 글쓰기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일단 둘 다 쉽지 않죠. 마감기한은 다가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고 뭐라도 적기 위해 킨 워드패드의 새 창은 머릿속도 하얗게 만들어요. 여러 겹 젯소칠을 한 50호짜리 캔버스를 마주한 듯이 이걸 어느 세월에 완성하나 싶어 막막하기도 하고, 초벌칠을 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무언가를 가득 쏟아내는 기분에 뭔가 될 것 같은 설렘에 빠지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그러다 한 포인트에 꽂혀서 그것만 주구장창 파다 보면, 뒤로 나와서 확인할 땐 여백과 세밀화가 공존하는 캔버스 상태에 한숨을 내쉬기도 하죠. 얼마 전엔 4년간 써온 작업실에서 철수했고 오늘은 에디터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마지막까지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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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을 함께 한 작업실


그런데 그림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완성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에디터란 역할은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야만 했죠. 새로운 생각으로 하나의 글을 완성한단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뭐랄까, 높이 쌓아 올린 순수예술이란 창작의 둑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법을 배워온 제게, 어느 날 둑이 사라지고 타임워치를 손에 든 양복을 입은 교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재촉하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아무도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느낌상 그랬단 거죠. 마감기한을 지키느라 끼니도 굶어가며 작업을 하던 어느 웹툰 작가의 일상이 생각나면서 존경심이 들더군요.

 

에디터로 글을 기고했던 목적은 문화예술을 쉽게 소개하고 싶단 것이 첫 번째 이유였어요. 아, 수식어가 빠졌네. ‘대중적이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화예술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공감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쓴 글이 일본 영화/드라마, 중국 드라마, 사진집 <윤미네 집>이에요. 그중에서도 중국 드라마 원고를 쓰면서 마이너한 취미를 각잡고 소개하는 것 같아 낯뜨겁기도 하고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중드에 입문한다면 더없이 뿌듯하겠다, 상상도 하며 히죽였어요. 그리고 역시 좋아하는 소재로 글을 쓰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없다고 느꼈고요.


두 번째는 문화 콘텐츠가 현실을 비추는 현상을 탐구하고 글로 녹여내고 싶었어요. 어쩌면 비장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사명감은 없었어요. 그저 일상을 살면서 이상하다 생각했던 현상을 사회 전반의 일들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고 글로 썼던 것이에요. 너무 초창기에 써서 읽기도 민망한 음악영화에 관한 글을 필두로 단발병에 관한 글, <’나’를 찾아줘>, 이하 연예 공화국 글, 전시 리뷰 글 등등.


최근,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을 읽은 뒤에 다시 제 글들을 쭉 읽어봤는데 혼자 쓸 땐 안보이던 아쉬운 점들이 마구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역시 글이란 건 끊임없는 퇴고처럼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껏 쓴 글을 차분히 되돌아보면 무언갈 소개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존재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무언갈 소개해야 하고 그 소재는 남들이 잘 모르는 것, 혹은 더 마이너한 것들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혼자 착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가끔 그런 압박감이 너무 심해질 때면 일기장에 쓸법한 이야기를 꺼내 쓰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끌어다 썼죠. 그럼 자칫 따분해질 뻔한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다시 서서히 달아오름을 느끼거든요. 나름의 처방전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도 무언갈 소개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길래 그냥 과감히 때려치웠어요. 적어도 마지막 에디터 활동 글은 느낌에 대한 글로 두서없이 채워가고 싶거든요. 그래서 문체도 좀 바꿨는데 역시나 어색하군요.




#운명론자: 운명론을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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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뒤늦게 알쓸신잡3를 보는 중인데 김영하라는 사람에게 푹 빠져있어요. 화법이나 제스쳐, 유머감각, 센스들, 아-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리스 여행을 하는 중에 김영하 작가가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리스 사람들이 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살면 편해요. 사랑에 상처 입어도 신이 내게서 사랑을 거둬갔구나!”하면 된다고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을 인용한 거긴 해도 깊이 생각할만한 말이지 않나요?


사실 저도 운명론자랍니다. 세상엔 주어진 팔자가 있고 뼈를 깎는 노력과 성공, 실패, 선택 모두 그 안에서 굴러간다고 생각해왔죠. 천성이 게으르고 할 일을 미루면서 나중에야 후회하는, 이 모든 것도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훗날 어떤 계기로 변화한다 해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게지요. 그 굳건한 믿음처럼 막연히 운명이란 것에 모든 걸 맡긴 채 살아온 것 같기도 하네요. 뭐, 어떻게든 될 것 같았고 정말 어떻게든 ‘되긴’ 했거든요.


운명론자로 사는 건 편해요. 어떤 일이 있든 그건 운명이라 생각하면 거릴낄 게 없죠. 지원한 일에 불합격 통보를 받아도 더 좋은 곳으로 가려나 보다-하고 넘길 여유를 주기도 해요. 아직 취준생 초기라 그러한 걸까요.


그리스인들이 신을 모시며 운명론자로 산 것처럼 한국에도 고유한 운명론이 있어요. 그걸 우리는 사주팔자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한 운명론 하는 저도 사주를 보는 걸 좋아해요. 사실 아주 환장하죠. 한 번은 친구와 잘 맞춘다는 사주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저보곤 가을을 기다리는 씨앗이래요. 노력은 안하는데 생각만 많다고 하셔서 뜨끔했네요. 네, 정말 용했어요. 이때가 2017년 9월이었는데 많이 생각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라고 하면서 2018년은 꽤 좋은 해일 거다, 2019년은 아마 조금 힘들 것이고 2020년은 정말 좋을 거라고 했어요. 2019년인 지금 와서 그 말을 돌이켜보면 그해 10월에 애인이 생긴다며 장담한 예언이 정확히 빗나가 신뢰도가 팍 깎였지만, 2018년이 좋은 변화들로 가득한 해였단 걸 부정할 순 없어요. 그럼 그 사주대로라면 내년을 기약해야겠군요. 사실 2019년이 좋지 않다는 사주 선생님의 말에 혼자 마음을 비워서 올해는 토정비결을 보러 가지 않았답니다.


아, 운명론자로 살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절대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사주를 보러 같이 간 친구의 사주가 굉장히 좋았어요. 아주 쨍쨍히 뜬 태양이라서 가만있어도 모든 일이 술술 풀린대요. 그 말을 듣곤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저 내 사주와 비교해서 넌 참 부럽다며 몇 마디 건넸다가 사주 선생님께 된통 혼이 났어요. 절대 남의 사주를 부러워하지 말라고요. 혼났을 당시엔 돈 주고 혼난 것에 대해 억울함이 컸는데 이제 와 생각하면 당시 사주 선생님은 위험한 생각을 미리 차단해주었어요. 남의 인생과 내 인생을 비교하는 순간 우열이 어찌 됐든 불행은 시작되니까요.

 

운명론자라고 해서 무조건 정해진 대로 살게 된다는 생각에 모든 일로부터 낙관적인 태도를 지니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운명에 저당 잡히며 끌려다닐 테니까요. 같은 운명론을 믿더라도 각기 생각하는 방향이나 삶의 태도는 제각각이에요. 운명론이란 게 자칫 위험한 사상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역설적이게도 삶을 대하는 방식이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아직 뚜렷이 운명론자로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긴 이르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와요. 인생을 트랙이라 가정할 때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지만 각자 다른 트랙을 가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사념에너지 즉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까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다. 아마 리얼리티 트랜서핑 1편 같네요.

 

그리고 얼마 전 졸업 기념으로 친했던 동기언니에게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책의 지은이도 자신을 운명론자라고 밝히더군요. 주어진 운명에 감사하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이분은 특이하게도 불행도 사유재산이라 생각해서 간직하고 있다면 비로소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토양이 될 거라고 해요. 이 구절을 읽으며 누군가가 떠올랐어요. 모두가 안될 거라 했을 때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온 사람. 그게 누군진 비밀이에요. 여러분의 마음속엔 누가 떠오르시나요?




#우리가 운명이라면

  

운명론은 노력하지 않았을 때 더 쓰라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첫눈에 반하는 것이야말로 운명적인 일이라 생각하는데 만일 그 다가옴이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아쉬움은 말로 할 것도 없죠. 다만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아서 놓친 거라면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거예요.


벌써 3년 전이었나, 휴학시절 친구들의 재촉에 학교축제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호객을 하던 분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어왔는데 순간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이게 바로 첫눈에 반한단 걸까, 눈을 뗄 수 없었죠. 마치 운명이 바로 지금이야! 하며 날아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차에 옆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끼어들었어요. 자기들과 합석하지 않겠느냐길래 됐다며 함께 온 친구가 제 팔을 끌어당겼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얼떨결에 자리를 벗어났어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함께 온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첫눈에 반한 분은 여학생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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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꿈결 같아요. 전혀 모르던 사람을 한 번의 눈 마주침과 잠깐의 대화로 사랑할 수 있구나. 평생을 이성애자로 살았는데, 나와 같은 동성을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가끔 그날 밤을 떠올리다가 조금 아득해져서 눈가가 빨개지기도 해요. 그러다 첫눈에 반한 이의 이름도 모르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몽타주에 언제나 그렇듯 느낌만 남아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짙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 후로 일 년, 영화 캐롤이 개봉했고 모두가 캐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보지 않다가, 그로부터 일 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VOD로 캐롤을 봤어요. 영화 초반에 테레즈가 캐롤에게 반하는 장면 있잖아요? 내 얘기 같아서 눈물이 나던걸요. 이상과 현실은 참 달라요. 그때, 3년 전, 단 3분도 안 되는 순간이 줬던 감정은 말도 안 되게 깊어요. 그리고 저는 미련하게 아직도 후회하고 있네요. 시작할 기회도 주지 않았는데, 다가갈 용기도 내지 못했던 게 서글퍼서 그래요. 그래도 만약 사랑의 신이 절 버리지 않았다면, 이 작은 나라에서 한번을 못 마주치겠어요. 과연 또다시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된다 생각할진 몰라도 전 알아볼 것 같아요. 그게 운명이라면, 우리가 운명이라면.
 

*


며칠 전엔 한 작가의 작업을 보는데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어요. 아주 특이한 이름까진 아닌데 자꾸만 익숙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죠. 작가의 작업 속 별사진을 찍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확신했어요. 아, 과학 선생님이구나. 연이어 그 분이 본인 블로그를 수업시간에 자주 보여주셨던 걸 기억해냈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찾아냈죠. 저의 중학교 2, 3학년을 함께한 과학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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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ei



제가 다녔던 중학교는 아주 작은 학교였어요. 하도 시골이라 버스 배차 간격이 30분이었던 동네였는데 반도 1반씩 밖에 없고 초등학교부터 함께 올라온 친구들이 모두 전교생이었죠. 2학년 초에 새로 부임한 과학 선생님은 마르고 예민한 인상의 30대 초중반 남선생님이었어요. 별을 상당히 좋아하셔서 매번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우리 동네가 가로등도 별로 없고 공기도 맑아서 별이 무척 잘 보였는데 선생님은 그게 엄청 마음에 드셨나봐요. 하교하려는 우리를 붙잡고 수백만 원이라 자랑하던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여주셨어요. 그때 본 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밤공기가 아직도 코에서 맴도네요. 선생님의 말버릇이 있었는데 ‘별 볼 일 있는 사람이 되어라.’ 였어요.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가끔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바라보곤 하는데 서울의 밤하늘은 별이 보이질 않더라고요.

  

추억여행은 이쯤하고, 9년 만에 들어가 본 과학 선생님의 블로그는 아직도 진행 중이였어요. 블로그 프로필사진도, 특유의 목소리도 똑같아서, '일어나라!' 하며 쉬는 시간 꿀 같은 단잠에 든 우리를 깨울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10년 가까이 흘렀다니... 물론 저란 학생을 기억 못하실 테지만 참 감사했다고 이글을 통해 안부를 전해봅니다. 사제 간의 운명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수 있을까요.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야 할까요


대학교 3학년, 한창 전공인 순수미술과 현실 사이를 방황할 때 이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신발이 맞지 않으면 당연히 치수를 바꾸거나 다른 신발을 바꿔 신어야 하는데 정작 현실은 발을 바꾸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서요. 그림이 좋아서 화가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었는데 현실의 벽은 너무도 견고하더군요. 게다가 23세의 저는 생각보다 초라한 사람이어서 스스로 부끄러웠어요. 그럴 수 없는 걸 아는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죠.


운명론자의 삶에는 언제나 직진만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코 아니었어요. 언제나 '무언가 될 것 같은 느낌', 어떤 형태로든 정해진 길을 가고 있단 느낌으로 가득 찼던 짧은 생에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지요. 더는 치수가 다른 신발을 갈아신을 시간이 없어요. 이미 현관문은 닫혔고 그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지체했죠. 타야 하는 버스가 떠나려 출입문을 닫으려 하는데, 이미 맞지 않는 신발에 뒤꿈치가 피범벅이에요. 그러면 발이라도 바꿔주세요. 더는 달릴 수 없이 까지고 물집 잡혀 오래 서 있기도 힘든 것 말고, 튼튼하고 단단한 것으로요.


오늘도 맞지 않는 신발을 구겨 신고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뛰어봅니다. 조금 늦었지만, 완전히 늦어버린 건 아니니 잠깐만 서 달라며. 버스가 서느냐, 지나치느냐는 운명의 신께 맡기고요.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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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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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은
    •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번 읽었어요 특히 운명에 대한 얘기가 확 와닿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용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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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재이
    • 2019.03.01 12: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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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은저도 영은씨 글들 항상 잘 챙겨보고 있었습니다! 댓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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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즌
    •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 "맞지 않는 신발을 구겨 신고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뛰어본다"는 표현이 참 좋네요. 에디터 활동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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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이
    • 2019.03.01 12: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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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즌감사합니다 :)  조금 쑥스럽네요 ㅎㅎ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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