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THE HERMIT 9: 고통스러운 육신, 밝게 빛나는 등불

글 입력 2019.02.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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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THE HERMIT 9
고통스러운 육신, 밝게 빛나는 등불


한치 앞도 모르는 얼간이이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자, 한때는 위대한 왕이었던 늙은이는 흰옷의 여인 앞에서 그가 이뤄온 권력과 명성에서 연약함을 발견한다. 다시 얼간이로 돌아온 왕은 이제 모든걸 훌훌 털어버렸다. 왕관도 마차도 없는 그에게,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그의 등불 뿐이다. 아무런 장비도 없는 늙은이는 지팡이와 등불에 의지해 홀로 설산을 걷는다. <은둔자> 카드는 다른 카드의 화려한 색채와 비교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회색로브를 걸친 늙은이의 수염은 볼품없이 삐져나오고 있고, 그를 둘러싼 밖은 어둡기 짝이 없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다. 눈이 소복히 쌓인 산은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햇빛이 내리쬐고 사랑스러운 동료가 있던 <바보> 카드를 떠올려보면 이 카드가 얼마나 정적인지 알 수 있다. 카드는 노년기를 상징하며, 여행의 마무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가 입은 로브의 색이자 카드 전체를 주도하는 회색은 상반되는 것들의 균형과 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다른 것을 추구하며, 더 큰 세계에 나아가기 위한 길목에 서 있다. 그는 유한함과 무한함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어디에고 속하지 않은 그에게 고독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속세를 벗어난 그는 세속의 교육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지팡이와 등불을 들고 설산에 선 그는 직접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고 홀로 탐구하길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고집스러운 사람이기도 한다. 그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제자를 거니르고 적극적으로 설교하는 <교황>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힌트를 던진다.

그의 흰 수염은 그가 겪어온 시간을 짐작케한다. 은둔자가 짚고 있는 지팡이는 자신의 몸을 의지하는 용도가 아닌, 지혜의 힘과 믿음의 상징이며, 성경의 모세와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가 그렇듯이 다른 이들을 인도할 수 있는 표식이기도 하다. 사실 모세와 '회색의 간달프'의 이야기를 떠올려봐도, '회색의 현자'는 신성(혹은 진리)과 인간의 경계에 선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떤 절정에 이르렀지만 나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번데기를 상상하게도 한다. 경계에 선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출발선에 서있다. 그래서 현자들은 아무런 설교도 주장도 하지 않는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등불에는 다윗의 별이라고도 불리는 육각형의 별이 들어있다. 다윗의 별은 4원소의 결합, 음과 양의 조화로 마법의 힘이 있다고 여겨졌고, 그 별을 품은 등불은 더 큰 세상을 넘나들 수 있는 통제권과 지혜를 가진 영적인 빛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선구자인 은둔자는 언젠가 세상과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서있는 흰 산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통로, 신들의 교류, 신들이 사는 곳으로 여겨지며, 정상은 최고 상태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그는 그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높은 산 꼭대기는 위태롭게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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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아브라함


<은둔자>카드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카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필자는 오컬트나 기이한 신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 이뤄지는 점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필자도 으레 불안한 사람들이 그러듯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타로카드를 보러갔다. 당시에 나온 카드가 은둔자 카드였다. 사실 타로카드 마스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은둔자> 카드는 드러난 순간부터 충격이었다. 한순간에 이미지가 필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길 잃은 노인의 불분명한 미래, 고립된 얼음산에 위태롭게 선 자세, 하지만 육체와 정신의 고행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등불, 그토록 아름다운 등불이기에 고통스러운 설산에서도 지팡이에 의존해 그만의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은 필자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한 존재의 한계가 모인 세계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렇기에 처절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꿋꿋하지만 고집스럽기도 한 모습은 삶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우리의 어느 부분을 닮았다.

20대 내내 필자는 이 카드를 내심 내 앞주머니에 넣어두고 '나만의 카드'로 생각해왔다. 사실 필자는 이 카드를 어느정도 필자와 동일시하고 있는 편이다. 필자가 그러하듯이, 은둔자는 등불의 미약한 빛에서 위대한 세상과 가능성을 바라보고 감탄하지만 근본적으로 속세와 동떨어져 자신의 세계에 꽉 갇혀있다. 그가 환상 세계에 빠져있는 것은 현실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환상으로 철수하는 것은 정신의 원시적인 방어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카드는 정신분석학적 성격진단에 따른 분열적 성격 진단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강한 빛이나 소음이 있는 곳에서 쉽게 움츠러들었다. 중학생때까지 욕조에 이불을 깔고 불을 끄는 것을 즐기는 것이 필자에게는 꽤 큰 행복이었따. 그래서 필자는 불안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한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이 필자를 심리학의 몰입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분열적인 사람은 근본적으로 구강기의 문제들과 씨름한다. 프로이트의 구강기는 출생 후 약 1세까지 리비도(삶의 추동이라고 이해하편 편하다.)가 입, 혀, 입술로 옮겨붙어 있는 시기다. 이 시기 아기는 어머니의 젖을 빨고 음식을 씹는 것으로 욕망을 해소한다. 이 경험이 적절하게 충족되지 못하면 이 시기에 고착된다. 가장 수동적이었던 이 시기에 고착된 이들은 휘말리고, 흡수되고, 왜곡되고, 점령당하고, 삼켜지는 위험을 피하는데 집착하게 된다. 이들은 바깥 세상이 안전과 개별성을 소모시키고 왜곡시키는 위협들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낀다. '사랑의 굶주림' 을 겪는 이들은 음식을 찾아야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철수하고, 환상 속에서 만족을 구하고, 현실을 거부하려 든다. 이들은 공포영화, 범죄실화, 세상의 멸망과 같은 종말론적 전망에 대한 기호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괴짜'의 그것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이들의 허기와 공격성은 모두 두터운 방어 밑에 묻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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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시간은 둑 없는 강이다>, 1930~1939


분열성 역동을 지니면서 기능 수준이 높은 경우,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흔한 방어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많은 정서반응들을 진솔하게 감지한다. 분열적인 사람들은 삶의 가혹한 현실이 그렇게 명백하게 보이는데도 그 자신을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지를 의아하게 여긴다. 이 사람들의 소외감은 부분적으로 이들이 자기 자신의 정서적 직감적, 감각적, 정서적 능력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되곤 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들을 별 힘들이지 않고 지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과도하게 씨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안전과 관련해서는 굉장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압도되면 숨어버리고 세상을 등진 은둔자가 되거나 상상으로 퇴각한다. 이들은 더불어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를 등한시하고 사회적 어울림을 등한시하고 심지어 빈정거리기도 한다. 이들이 기행을 일삼고 인습에 저항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규정되는 조건에 휩쓸리고 점령당해 말살되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휘말리기보다 버림받는 것을 덜 해롭게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무엇보다도 세상사의 국외자, 방관자, 관찰자다.

'은둔자'인 분열적 성격 구조의 특징적인 방어는 내적인 상상 세계로의 철수다. 거리를 유지하는 이들은 보다 성숙한 방어 중에는 대부분 주지화를 선호한다. 주지화란 압도적인 감정적 갈등이나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그것들을 억누르고 장황한 논리를 주장하는 방어기제다. 자아의 감정이나 충동적 욕구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오직 지적인 작용으로 관념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창조성을 발휘하여 예술작업, 과학적 발견, 이론적 혁신, 영적인 탐험에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혼란이 심해지면 공포와 소외감으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재능을 미처 펼쳐 보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지옥에서 살아간다. 자폐적인 철수를 창조적인 승화로 잇는 것이 분열성 환자를 치료하는 주된 치료 목표가 된다.

이들의 주관적 세계는 애착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지배되고 있다. 이들은 가까워지길 갈망하지만, 그려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휘말리고 삼켜진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래서 안전하고 분리되어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지만, 소외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들의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다. "나는 외로우니까 가까이 오세요. 하지만 침범할까 두려우니 멀리 떨어져 있으세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높은 기능 수준을 보일지라도, 자신을 비정상적이며 이해받기 어렵다고 걱정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충분히 알리길 원하지만, 내적 삶을 완전히 공개할 경우 자신이 별종임을 드러날까봐를 두려워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이해다. 타인의 요구를 따르라는 압박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이 이들의 불안을 완화시킬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현대 사회에서 인치로 계산된 옷을 입고 각진 아파트에서 산다. 비교와 대조가 자연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분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굶주림을 억누르고 자본의 환상 속에서 답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 <은둔자>카드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정신분석적 성격진단에 따르면, 이들의 자존감이 충분히 강화되고 축적되면, 이해받지 못해도 자신의 기이함 때문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당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별종으로 취급된다 느껴져 땅에 머리를 박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자신보다 덜 민감한 논평가들에게 정서적 반응을 경시당해 속상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섬세한 감성 아래에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성이 숨쉰다. 그 가능성을 병리가 아닌 재능으로 구성할 때 불안을 안도감이 대신 채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등불을 기억해야 한다. 늘 북쪽을 가르키는 나침반처럼, 다윗의 별이 담긴 등불의 찬란한 빛이 우리를 다음 장으로 이끌 것이다. 그 빛은 우리 삶이 가진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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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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