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바하>: 또 하나의 신선한 한국 영화 [영화]

글 입력 2019.02.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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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영화 <사바하>를 보기 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사바하> 많이 무서운가요?”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답게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영화이다. 그러나 귀신이나 연쇄살인범 따위가 갑자기 튀어나와 공포를 조성하는 호러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추리 영화에 가깝다. <사바하>는 추리 영화의 긴장감에 오컬트를 가미하면서 스릴러 부분이 한층 강해진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무섭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기이한 존재들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스산한 분위기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감과 긴장감이 함께한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 지레 겁을 먹고 귀부터 막긴 했어도, 공포영화를 질색하는 나도 무난하게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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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르의 영화로 떠오르는 한국 영화는 많지 않다. 생각나는 몇몇 중 하나가 <검은 사제들>인데, 이 역시 장재현 감독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과 굉장히 유사해 보인다. 종교적인 소재,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영화의 분위기가 그렇다. 그러나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은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색을 띤다.

 

<검은 사제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영신(박소담)에게 씐 악령을 구마하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이다. <검은 사제들>은 스토리를 단순하게 설정한 대신에 악령의 모습(정확히는 악령에 씐 영신의 모습)과 구마과정에 중점을 둔다. 한 마디로 오컬트가 두드러지는 영화이다.

 

반면에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보다 스토리가 복잡하다. <사바하>의 주요 스토리는 주인공 박 목사(이정재)가 ‘사슴 동산’이라는 종교 단체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다. <사바하>는 오컬트보다는 비밀에 싸인 종교 단체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 때문에 <사바하>에게 제2의 <검은 사제들>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종교: 불교&기독교



불교에서 주문(呪文)의 끝에 붙어, 성취, 길상(吉祥) 등의 뜻을 나타내는 ‘사바하’.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사바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종교’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대부분 종교인인 것은 물론이고, 영화 스토리의 많은 부분이 종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에서 소재가 되는 종교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핵심 종교는 불교와 기독교, 두 가지이다. 이 두 종교는 둘 다 종교라는 공통점 외에는 교리, 세계관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영화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두 종교에서 인물 설정의 모티브를 얻는다. 이 인물들이 영화 스토리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두 종교는 영화에서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이를 통해 영화는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넘나든다.



1) 불교의 사천왕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에 이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 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때 발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래 악귀였으나 불교에 귀의한 뒤 불법의 수호신이 된 사천왕. 영화에서 사천왕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은 바로 ‘정나한’을 비롯한 김제석의 4명의 아이들이다. 이 4명의 아이들은 모두 소년원 출신이다. 악귀였던 사천왕과 유사한 출발 선상이다. 이들은 소년원에서 미륵불이라 불리는 ‘김제석’을 만나 그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그 후 이들은 각각 사천왕 중 하나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김제석의 불사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 사천왕이 부처를 수호한 것처럼.



2) 성경의 헤롯왕 이야기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예수)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태복음 2장 1절-18절>




불교의 사천왕에 이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성경의 헤롯왕 이야기이다. 헤롯왕은 자신의 정적(政績)이 될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예수로 추정되는 어린아이들을 살해한다. 헤롯왕의 상징적 인물은 앞서 미륵불로 소개된 ‘김제석’이다. 김제석은 열반의 경지에 올라 미륵불이 된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는 죽지도 늙지도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를 죽일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네충탄파의 예언에 김제석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헤롯왕과 같은 끔찍한 일을 벌인다. 김제석 외에도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는 동방박사로 ‘네충텐파’, 예수로 ‘김제석을 죽일 아이’가 연상되며 영화의 스토리는 성경 속 헤롯왕 이야기와 아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영화에는 두 종교가 공존한다. 그리고 이 두 종교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김제석’이다. 앞서 본대로 김제석은 두 종교 이야기에서 모두 모티브 한 인물이다. 사천왕 이야기에서는 부처로, 헤롯왕 이야기에서는 헤롯왕로 대응된다. 그 때문에 영화는 김제석이라는 인물을 연결지점으로 삼아 자연스럽게 두 종교를 오간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였다. 근래에 개봉한 좋은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 끌리는 영화는 없었던 탓이다. 특히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 같은 것 말고 좀 더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사바하>는 이것을 충족하는 영화였다. 신선한 소재의 영화였다.

 

게다가 단순히 새롭기만 한 영화가 아니었다. 사바하를 검색하면 영화에 관한 다양한 해석본이 쏟아진다. 그만큼 이 영화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본 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신(神), 선과 악 같은,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것에 관한 생각이었다. 약간 머리 아프기는 해도 영화를 오랫동안 머금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에 극의 긴장감이 떨어진 것과 일부 캐릭터 활용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사바하>가 가지는 한국 영화 장르의 희소성에 더 의의를 두고 싶다. 장재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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