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갈망

글 입력 2019.03.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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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익숙한가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카페 맞은편 식당 사장님께, 가볍게 이별 인사를 건넸다. 사장님은 막 프라이팬에 불을 켜고 있었다. 기름을 두르고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아.”

 

저도요,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른 거짓말은 해도 감정을 속이는 말은 싫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웃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사장님보다는 헤어짐이 아쉬운 사람 같지 않았다.

 

“여길 떠나가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말해, 종종 들르겠다고.

그런데 그런 사람 못 봤어.

나는 그 사람들을 기다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할게요.

아예 안 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껴안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이 커 보여 몰랐는데, 사장님은 나보다 키가 작았다.

 


 

#072. 떠오른 문장


 

다시 카페로 돌아와 창문을 닦았다. 일은 손에 맡기고 시선은 허공에 두었다.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다던, 사장님의 얼굴이 진한 색채로 떠올랐다.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린다는 마음이 완전한 진심이라는 걸 알려주는. 잘 잊히지 않는 얼굴이 질문했다. 너는 왜 헤어짐이 아쉽지 않지. 왜 사람과 연결되려는 의지가 없지. 너는 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너를 기다릴 사람도 없다고 느끼지.

 

계속 창문을 닦았다. 아주 천천히. 창문이 연결된 길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손은 둥글게, 둥글게 움직이며 닦고 또 닦았다. 점점 투명해지는 창문처럼 맑아진 마음에 숨어 있던 명제 하나가 선명히 보였다. 그대로 읽었다.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073. 죽고 싶다는 갈망



언젠가부터 무언가 제대로 성취하며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보다, 어떤 삶이라도 어떻게든 그 모양을 유지해내는 관성이 차라리 더 궁금했다.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하기보다, 일단 살아내기라도 하는 존재에 박수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죽지 않았어, 잘하고 있어, 그만큼이어도 대단해, 아니 그만큼으로도 충분해, 더할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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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갈망’ 정확히 이 표현을 처음 떠올린 순간은 <목소리의 형태>를 본 때였다. 청각 장애인인 쇼코와 그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쇼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품은 가해자 쇼야를 쇼코와 같은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전환점을 마련한다. 하지만, 모든 화해의 순간에 쇼코가 '다시' 자살 시도를 한다는 극적인 사건이 개입하면서, 이야기의 층위는 깊어진다.


주제에 관해서만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별도로 내가 집중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쇼코와 쇼야의 갈망이었다. 상황은 조금 달라도 죽고 싶다는 마음을, 그 갈망을 실천에 옮긴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궁금했다. 이 갈망이 어느 정도까지 치달아야 육체를 허공에 던지게 되는 걸까, 온몸이 감당하지 못할 물리적인 충격까지 이겨버리는 이 갈망의 실체는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074. 죽지 못했다



죽을 용기가 없어 돌아선 때가 언제였나. 나는 죽지 못했다. 어떤 죽음도 시도하지 못한 까닭은, 그러니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만든 최후의 보호막은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두려움이겠지. 인간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죽음에 관한 선택권도 없다. 죽고 싶다는 갈망과 정 반대편에 선 어떤 지식과 신념은 늘 줄다리기에서 이겨, 날 살아있게 하고 죽을 수 없는 상태에 놓아둔다. 몇 년 전 본 <단테의 신곡> 뮤지컬도 한몫하는 것 같다. 여러 단계의 지옥에서 등장한 자살 나무의 소름 끼치는 비명에 가까운 노래, 잔상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죽지 못한 것이다.


죽지 못했다고 갈망이 약한 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간절함이 전달될 수 있다면 단언하고 싶다. 진정 죽고 싶었다. 다음에 쓸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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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를 타면 주로 운전사 바로 뒷자리, 그러니까 왼쪽 맨 앞 좌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가에 얼굴을 기대고, 아니 붙이고 차가운 유리와 뺨의 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 상태로 가만히 시선을 창밖에 고정하면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들이 보였다. 쌩쌩 내 뺨을 스치고 무수히 많은 차량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운동이었다. 정말, 일 센티만 차선을 이탈하면 이 버스는 완전히 박살 날 것 같은데. 이때야, 지금이야, 지금인가, 이때인가. 진짜로 너무 그럴 것 같은 순간에는 겁을 내면서, 그렇게 여러 버스를 보내고 뜻 없는 숨을 내쉬면서, 있었다.


종종 신기하다. 하루하루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뺑소니를 당하지 않고 벼락을 맞지 않고 살해당하지 않고 길이 꺼지지 않고 오늘 하루도 죽지 않고 산 자신이, 이 존재가 죽지 않도록 허락하는 오늘이.

안도하지 못한다. 늘 두렵다. 프리다 칼로의 육체를 관통한 철근이 언젠가는 내게도 올 수 있다. 가끔 기도한다. 아프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아픈 상태로 살고 싶지도 않아요. 죽는다면 조용히, 누구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죽어 사라지고 싶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주세요.


죽음과 함께 살고 죽고 싶다는 갈망과 함께 살며, 그 갈망은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죄책감과 함께 살고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함께 산다.



 

#075. 울지 못했다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왜. 질문까지 나아갔다. 의외로 대답은 빨리 나왔다.


삶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대답을 잊어버릴까 얼른 내게 보내는 카톡에 쓰고 나니 와타나베의 말이 생각났다.

 


아아 기즈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너와는 달리, 살려고 결심했고,

그것도 내 나름대로 올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었었어.

너도 틀림없이 괴로웠겠지만 나 역시 괴롭다, 정말이야.

이렇게 된 것도 네가 나오코를 남겨 놓고 죽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388쪽

 


여기서 ‘죽었기 때문이다.’의 어조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라 답하는 나의 어조는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때문이다’에는 누군가를 탓하는 원망이 담겼다. 내가 삶을 사랑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원망하는 마음인가보다.

 

삶에 폭력적인 면이 하나라도 있으면, 삶의 모든 면면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진다. 검은 물방울 하나는 아주 많은 물을 검은 색으로 쉽게 물들일 수 있으니까.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담담한 고백은 아니었다. 문득 떠오른 그 명제를 읽고 나는 많이 놀랐고, 참담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삶을 사랑할 수 있을지, 아니 사랑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어 창문을 닦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좀 울까 하다가 앞에 손님이 걸어오길래 그냥 관뒀다.

 

 


#076. 울었다


 

“00씨,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쉬세요.”

 

바쁜 점심시간, 손님은 몰리고 빌지는 밀렸고 언제나처럼 급하게 컵에 얼음을 잔뜩 담고 있었는데 옆에 누가 말하더라. 그러면서 내가 든 컵을 조용히 가져가더라. 자신이 괴로운 이유는 사람이 섬세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어떤 사람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돌아서 손님이 없는 곳으로 가 훌쩍훌쩍 울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는데도. 그렇게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나는 나를 쉬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 싶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고 서러웠다.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서 있었다.

 

어떤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괴로울 수 있었다. 누군가 상처받길 바라지 않는 마음은 선한 마음이라고만 생각했지, 인간의 한계를 몰랐다. 인간이라면 그 마음만으로 무장한 채 견딜 수 없다. 누구를 위하는 마음에는 어쩐지 일정량이 있어서, 필히 다른 선택지로 나라는 희생 제물을 지목한다. 뒤늦게 알았다. 너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칼의 방향을 돌려 수없이 나를 찔렀다. 차라리 너를 상처 입히는 게 나았을까, 나는 모른다.


그 사람에게 이 말을 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고, 단지 이 말을 했을 뿐이었다.




#077. 새로운 갈망



지금까지는 늘 그랬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글 전체를 감싸 안는 단락을 쓰고 싶지 않다. 사실 그 내용도 있기는 하다. 불쑥 떠올라 언젠간 가라앉는 마음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이런 마음만으로 살지 않도록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나, 그런 비슷한 내용은 쓰지 않기로 한다. 이번 글은 이렇게 남겨두기로 한다. 그렇게 마무리될 수 없는 나날과 감정을 위해 [시절의 너]가 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갈망은 감정의 파편을 그 모양 그대로 숨 쉬게 놔둘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넝마를 애써 이어붙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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