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찌질함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2.2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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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영된 예능 ‘집사부일체’에서 사부로 출연한 개그맨 유세윤은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우리가 대중에게 들어야 할 말은 ‘왜 저래?’ 다.” 말과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대중들이 궁금하게끔 만들고, 대다수가 선호하는 취향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B급 감성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본래 ‘B급 감성’은 비주류적 문화를 일컫는 대표적인 단어로 대중문화 내에서 사용되어 왔다. 특히 그 중에서도 어딘가 찌질하고 유치한 감성을 가리키기에는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대표성을 지닌 단어가 아니었던가. 정제되고 세련된 이른바 ‘A급’ 문화에 비해서, 너무 솔직하다 못해 찌질한 느낌을 마구 내뿜는 B급 감성의 문화들은 그 찌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문화 영역 내에서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B급 감성은 점차 문화 영역 안에서 비주류 문화의 하나가 아닌, ‘B급 감성이라는 이름의 주류 문화’로 변화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빠른 내용 전개 안에 최대한 많은 재미요소를 전달해야 하는 스낵 컬쳐 콘텐츠들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빨리 열 수 있는 B급 감성 요소의 친근함과 공감이 문화 전반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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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타일쉐어)



그 대표적인 예로 먼저 ‘유병재’가 있다. 몇 년 전 SNL을 통해 얼굴을 알린 방송작가 출신 방송인 유병재의 얼굴이 담긴 각종 굿즈와 책 상품들, 그리고 그가 생산해내는 콘텐츠들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SNS 상에서는 마치 유병재 굿즈를 구입해 각양각색의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것이 하나의 놀이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젊은 세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유병재 굿즈는 이른바 ‘인싸템’의 영역에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짧고 가벼운 듯 하지만, 심층적으로 파고들면 뼈 있는 메시지와 사회에 대한 시원한 비판까지 겸비한 유병재 특유의 B급 감성이 젊은 대중들의 니즈를 정확히 공략한 결과다.


한편 B급 감성의 바람은 영화계에도 현재 진행중이다. 과거 수의 관객층이 즐겼던 독립 영화 작품들에 한해 매니아 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얻었던 B급 코드는 마침내 메이저 상업 영화 시장에서도 ‘먹히기’ 시작했다. 그 예로 마블의 ‘데드풀’과 최근 개봉한 한국 코미디 영화 ‘기묘한 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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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A급 문화에 대한 ‘비틀기’에 있다. ‘데드풀’과 ‘기묘한 가족’은 기존의 히어로 무비, 좀비 소재의 영화들이 갖췄던 전형적인 특징들을 충실하게 비튼다. 기존 히어로물의 주인공 설정이 사회에 대한 정의감, 세계 평화에 대한 사명감 등으로 똘똘 뭉친 인물 유형에 기반했던 데 비해 데드풀에게서는 그런 구석을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그의 목적은 자신의 복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망나니’와 영웅의 결합, 시종일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러닝타임 내내 떠드는 데드풀의 찌질함과 왈가닥하는 면모는 곧 대체할 수 없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B급 감성적 매력으로 승화된다.


‘기묘한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기존의 좀비물이 대부분 공포나 스릴러 소재에 집중되거나, 여타 다른 장르로 제작된다 하더라도 좀비 자체가 주인공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데 비해, 이 영화에서 좀비는 주인공 가족들의 등장부터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된다. 좀비에 감염되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정도 신선하고 유쾌하지만, 이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좀비가 주인공이 이용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는 비틀기 설정이 이 영화가 가진 B급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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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포스트- 앱스토리)



한동안 3D를 넘어, 4D를 구현하려는 데에 집중하던 게임 산업에서도, 스마트폰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듯한 투박한 2D 그림체의 신작 게임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 또한 올해 B급 감성이 문화의 전 영역에 심상치 않은 바람을 몰고 올 듯한 예감을 갖게 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연예기획사의 사장이 되어 아이돌 그룹을 육성한다는 스토리를 가진 신작 시뮬레이션 게임 ‘월간 아이돌’의 화면 구성을 보면 마치 2000년대 초반 10대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떠오르게 하고, 직접 자본을 투자하고 경영하는 플레이 방식은 2000년대 초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B급 감성의 게임으로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비비빅닷컴’의 몇몇 게임들을 닮아 있다. 대작 게임에 비하면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마치 옛날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을 통해 유저들에게 친숙함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바로 이들 B급 감성 게임들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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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포스트- 뉴스웨이)


이처럼 B급 문화가 더 이상 아류가 아닌 주류의 한 축으로 점차 편입되고 있는 현상은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B급 감성이 가져오고 있는 ‘어딘가 모자란 것’에 대한 열풍은 지금 대중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80년대 생들 보다도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개성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90년대 생들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성장과 앞서 언급한 스낵 컬쳐 라이프스타일의 결합으로 인해, 찌질하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유쾌한 B급 감성의 문화 코드가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흐름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B급 감성 문화의 침투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참을 수 없는 B급 감성 문화의 찌질함’이 변화시킬 대중 문화의 양상을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써 앞으로도 흥미롭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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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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