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근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서 [시각예술]

아름답지 않은 미술 이해하기
글 입력 2019.03.0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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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내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잘 그린 그림이란 크고 웅장한 풍경이나 사물을 아름답고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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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를 좋아했는데, 마지막 편에 네로가 죽기 직전에 본 그림인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모습같이 사실적이면서도 웅장한 그림들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의 미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가장 많이 접했던 고전 미술 형식이 익숙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2)



그러다 근대 이후의 그림을 보면서부터는 조금씩 혼란스러웠다. ‘아름답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이거 모야?'싶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에서 내가 느낀 건 그림이 아름답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도로 뭘 그려 넣은지도 모르겠는 그림들을 보면서 특이하게 그리면 예술이 되는 건가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이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좋은 그림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왜 아름답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거지?’ 익숙했던 완벽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미술작품들은 오히려 나의 눈과 개념을 낯설게 만들어서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낯설기만 했던 새로운 작품들도 '자꾸' 보다 보니 일반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재미난 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종교화나 풍경화보다는 새롭고 파격적인 스타일에 끌리는 나도 발견했다.


현대로 올수록 똑같이, 잘 따라 그리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잘 그린 그림보다 남과 다른 그림이 그 작가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미술에 있어서 ‘미’라는 기준이 아름다움이 아닌 까닭이다. 현대의 ‘미’는 나다움이다.


예술가는 나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왜 어려운 거냐고? 작가의 나다운 생각이 집약되어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새로운 타인의 생각을 해설 없이 이해한다는 것도 어렵고 설령 이해했다 해도 나의 생각이나 나에게 익숙한 표현방식과 다르면 쉽게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



나에게 처음 이런 혼란과 나름의 정답을 알려준 작가는 세잔과 피카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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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형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세잔의 <생 빅투아르산>은 뭔가 그리다 만 그림 같았다. 비슷한 시기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다 세잔의 그림을 보면 왜 저 산을 20년이나 그렸다는 건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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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피카소의 그림은 더 기괴했다. (원래는 잘 그린다는데) 일부러 인물들의 형태를 왜곡시킨 그의 작품은 '내가 더 잘 그릴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근자감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그들은 아름다움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었다. 이제 없던 새로운 생각, 독특한 행보로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미술계에 혁신을 일으켰고 그 결과물이 아름답게 기록된 것이다.




4)



예술가들 중에서는 아예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겐 정식 기술 연마를 통해 잘, 정식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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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는 하급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그림은 당시의 평론가들에게 종종 비웃음을 살 정도로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주 꿋꿋하게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유지해온 결과 말년에는 성공적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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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모구 다카하시도 정식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만 같은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데 현재는 세계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만약 이들이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면 이만큼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남들과 다른 생각과 표현을 찾는 것은 잘 그리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차라리 입시 미술을 배워서 똑같이 따라 표현하는 쪽이 쉽지 않나 싶다. 남과 다른 '나다움'이 잘 표현되고 드러나있는 작품들은 처음에는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으나 그러한 '차이'가 작가와 작품에 특별함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런 성공 공식에는 약간의 예술가스러운 '고집'도 필요하다. 비평가나 대중적인 의견, 시대의 흐름과 다르더라도 익숙한 생각이나 표현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간 기호지세는 많은 성공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다.




5)



이처럼 우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근대 현대 미술은 결국 타인을 깊이 들여다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해나 공감이 시작된다.


우리의 눈과 시선은 티브이 속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꽂혀있고 생각은 미디어에 휘둘려 고정화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라이 기질마저 보이는 작가들의 독특한 생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생각, 관점의 작품을 자주 마주하며 익숙한 생각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이다.


그렇기에 왜 저 사람은 일부러 못생기게 그린 거지? 이런 의문을 품고 다양한 미의 관점을 접하며 가끔씩이나마 아름답지 않게 묘사된, 아주 특이한 미술들에 감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현대미술을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매번 새롭게 '나다움'을 표현하고 사는 작가들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며 삶의 다채로움과 풍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주 미술관으로 가서 신선한 자극을 느끼고 오자.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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