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당신이 본 쿠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글 입력 2019.03.0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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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본 쿠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글 - 여행작가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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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찾는 도시는 아바나, 바라데로, 시엔푸에고스, 트리니다드, 카마궤이, 산티아고데쿠바, 산타클라라, 바라코아, 비냘레스 등으로 한정된다. 관광도시를 벗어나면 잠잘 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호텔이나 정부인증 민박(카사)이 아닌 집에서 묵으려면 집주인이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에 따르는 세금이 한 달치 월급과 맞먹는다. 신고 없이 숙박을 했다가 당국에 적발되면 집주인이 법정에 서거나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도 외국인은 외국인용 비아술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쿠바인이 이용하는 옴니버스를 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여행자가 쿠바에서 만나는 사람은 관광업 종사자, 택시운전사, 민박집 주인, 아니면 같은 처지의 외국인이다.


아바나를 떠나 쿠바의 동쪽 끝까지 갔다. 카리브 해변, 살사클럽, 명소들은 저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의미심장했다. 트리니다드, 카마궤이, 산티아고데쿠바가 특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쯤 지나자 어떤 갈증이 차올랐다. 내 여행의 원칙 – 로컬 식당을 이용하고, 남아메리카 출신 히피로 가득한 숙소에서 지내고, 현지인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일반버스를 타는 것 – 을 고수할 수가 없었다. '현지에선 최대한 현지인에 가깝게!'라는 원칙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름간의 쿠바 동부 여행을 마치고 아바나로 돌아오니 이전엔 알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아메리카와 인접한 섬나라인데도 남아메리카 출신 여행자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히피들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짐작하건데,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히치하이킹할 수는 없다는 것. 둘째, 외국인은 호텔이나 정부인증 민박집(1박 평균 25달러)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것. 셋째, 길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돈 버는 걸 금지하니 여비를 벌 수 없다는 것. 쿠바는 버스킹을 비롯해 길에서 춤추고 재주 부리며 돈 버는 걸 금지하고 있었으니까.


쿠바 어디서든 길거리 악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얘길 미디어를 통해 접했는데,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비에하 광장에서도, 오비스포 거리에서도, 말레콘에서도 거리의 악사를 만났다. 그러나 '어디서든'은 관광지에 한정되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길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쿠바인을 찍은 사진을 숱하게 접했는데, 그들 중 99퍼센트는 사진촬영으로 돈을 버는 업자(!)들이었다. 악사들은 술집과 레스토랑을 순회하며 돈을 벌거나, 방파제 앞에서 달러를 줄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다녔고, 오직 외국인만 바라보며 연주했다. 얼른 팁을 내라는 레이저(?)를 쏘면서. 지나가던 외국인은 "오호,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을 보게 되다니!" 하고 운 좋게 그 찰나를 카메라에 담거나, 돈을 내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촬영된 이미지가 아바나의 랜드마크가 되어 수없이 복제되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 사실을 몰랐기에 아바나 레스토랑에서 퍼지는 라이브 음악과 말레콘의 악사와 광장에서 살사를 추는 무리를 볼 때면 '우아! 이게 쿠바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러나 차츰 이면을 알게 되자 속은 듯한 느낌이었다. 쿠바가 갖고 있는 독특한 에너지도, 춤과 음악에 대한 열정조차 다 가짜였던 것일까? 아바나는 거대한 복사기 같았다. 바깥세계에 알려져 있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재생하고, 관광객은 그 이미지를 다시 재생산했다. 물론 운 좋게 자유로운 악사와 춤꾼을 아바나에서도 만날 수 있겠지만, 아바나가 천편일률적인 이미지를 찍는 공장이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캄피스모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쿠바 여행이 어떻게 끝났을까? 숙소에 앉아 자료집을 뒤적이다가 캄피스모(Campismo)란 단어를 발견했다. 뭐지? 알아보니 쿠바인의 여가생활을 위해 설립된 국영 휴양지로 쿠바 전역에 걸쳐 80여 개소가 있었다. 수영장, 야자수, 그림 같은 풍경. 한국의 국립휴양림과 비슷했는데, 쿠바인에게만 제공하던 캄피스모를 외국인에게 허용한 건 최근의 일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다녀온 사람이 없었다. 다음 목적지로 염두에 두었던 비냘레스 인근 캄피스모로 전화를 걸었다.


"아바나 본부 사무실로 가서 결제를 먼저 하고 오세요."


"사무실 위치가 어디쯤 되죠?"


"오비스포 거리에서 두 블록 떨어져 있어요."


전화를 끊고 테이블로 돌아오는데 맞은편 의자에 한국인 여행자가 긴 한숨을 쉬며 앉았다. 성이 차씨라 '차차'라고 불러달라던 아이였다.


"어제 아저씨가 저보고 운이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 의미를 이제 알겠어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좋았어요. 사진으로만 보던 올드 카,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오비스포 거리의 악사, 광장에서 살사를 추는 사람들. 아이스크림를 사려는데 잔돈이 없어서 망설일 때 저 대신 1페소(24페소=1달러)를 내주시던 할아버지까지! 그때만 해도 '운이 좋다'는 말의 속뜻을 몰랐어요.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아침식사를 하고 카피톨리오 근처 골목길을 걷다가 쿠바 가족을 만났어요.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이랑 인사를 하니 아주머니께서 음료수 한 잔 마시고 가래요. 그래서 집으로 들어갔더니 아이가 우는데도 계속 시가를 늘어놓으며 사라고 했어요. 담배를 안 핀다고 하니, 친구에게 선물하라며 자꾸 시가를 사라고. 안 사겠다고 하니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데…."


"저런! 많이 놀랐겠구나!"


"답답한 마음에 바다를 보러 방파제로 갔어요. 파도를 보며 앉아 있는데 쿠바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거는 거예요. 쿠바는 인터넷 사정이 안 좋다고, 외국인을 통해서만 다른 나라 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한국은 어떤 나라냐면서. 그러더니 갑자기 모히토를 마시고 싶지 않냐고 했어요. 술 못 마신다고 하니 모히토 말고 다른 음료를 주문해도 된다고, 자꾸만 좋은 바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


"레스토랑 호객하는 사람이었구나."


"맞아요. 자리를 피해서 카테드랄 광장으로 갔어요. 굵은 시가를 피우며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할머니들이 계단에 앉아 계시는 거예요. 가이드북에서도 본 분들이었어요. 인자하신 표정으로 저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어요. 한국이라고 대답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쭸더니 웃으시며 멋진 자세까지 취해주셨죠. 그리고 찰칵,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는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건, 저를 노려보는 할머니 얼굴이었어요. 원 쿡!(약 1달러)이라며 손가락 끝을 이렇게 부비면서…."


"네가 가이드북이나 잡지에서 본 사진들은 대부분 연출된 사진이야."


"몰랐어요. 사진에서 본 사람들이 모두 돈벌이를 위한 모델들이었다니!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어요. 쿠바 일정을 3주 넘게 잡고 왔는데 너무 길게 잡은 게 아닐까, 이제 어떡하지,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중남미 여행을 하면서 늘 조심했지만 쿠바 사람들은 더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정 힘들면 비행기 티켓을 바꿔서 예정보다 일찍 쿠바를 뜨기로 결심했어요."


"쿠바에 온 여행자 대부분은 외국인용 숙박업소인 카사, 외국인용 버스 비아술을 이용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투어가이드, 호객꾼, 카사 주인, 레스토랑 종업원들만 만나다가 떠나버려. 그런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내일 날 따라오렴."


"정말요? 이런 길과 이런 도시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요. 아저씨를 따라갈게요!"






위 글은

<남미 히피 로드>

(2019년 4월 15일 발간)의 일부입니다.






노동효



노동효 프로필2.jpg



2010년부터 2년간 '장기 체류 후 이동 Long stay & Run'하는 기술을 연마한 후, 한국과 다른 대륙을 2년 주기로 오가며 '장기 체류 후 이동'하는 여행기술을 평생 수련하고 있는 여행가.


EBS세계 테마기행 여행작가.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전직 방랑자였거나 현직 방랑자인 자매, 형제들과 어울려 보낸 800일간의 기억. 방랑의 대륙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가 건져 올린,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를 당신 앞에 내려놓는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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