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아칸소 LIFE [여행]

두학기간의 미국유학생활이 내게 미친 영향들
글 입력 2019.03.07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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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는 곳이 어디야?" 이것은 바로 내가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눈앞에 두고도 어디서 탑승하는지 몰라 쩔쩔매던 때 했던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구어체로 익히 알고 있었던, 한때 인기몰이를 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유명해진 그곳이 바로 내 고향 삼천포다.

작은 도시에서 자랐던 나는 조금만 걷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쉽게 다다를 수 있어 시내버스 이용 횟수도 아주 적었을 뿐 아니라 지하철은 타본 경험조차 없었다. 이렇게 발전된 문명사회 속에서도 그 기술과 친숙하지 않았기에 대학 진학을 하면서 비로소 지하철이라는 것을 처음 이용해보게 되었다. 지금도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탈 때면 타는 법도 몰랐던 때에서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는 것이 가끔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다.

작은 도시에서 바다 냄새, 들꽃향기와 함께 자랐던 내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성장했듯, 약 1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보냈던 미국 ‘아칸소주’에서의 나의 또 다른 성장기를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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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창가너머로 보는 아칸소의 전경,

얼마남지 않은 착륙의 설레임을 안고.




잊혀졌던 나, 새로운 나를 발굴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영어를 아주 좋아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즐겨듣는 팝송이나 미드뿐 아니라 영어일기나 에세이 등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내 관심과 열정을 불태웠다. 그때는 내 영어가 맞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무작정 자신감 있게 영어에게로 다가갔었는데 이런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영어 주입식 교육의 코스를 그대로 밟으며 수능에서 빈칸에 들어갈 문장이 뭔지 지정 시간 내에 찾고 있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나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영어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나한텐 나름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열등감과 잘해야 된다는 압박은 나를 아주 깊숙한 늪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영어를 말할 때 내가 말하는 문장이 맞나, 혹시 문법이 틀리면 어쩌지에 대한 강박관념은 나를 더욱 옥죄여왔고, 병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이 증상은 대학교 3학년 때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며 완전히 치유되었다. 영어를 쓰는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자주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틀릴 것이라는 걱정으로부터 몰려오는 두려움보단 무작정 내뱉고 봤던 것이다.

 

또한, 혹시 내가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그곳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자책했던 내 영어실력을 아주 높게 평가해주었다.



“Your English is good! Some of my other foreign friends don’t even understand well what I speak. And learning other language is difficult but you’re doing well.”


(너 영어 잘해! 내 외국인 친구 몇몇은 내가 말하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은 걸. 그리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어려운 일인데 너 지금 잘하고 있잖아.)



이렇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 속에서 나는 영어 스피킹에 대한 강박증을 치료할 수 있었고, 다시 영어를 즐기면서 학습하는 예전의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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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의 많은 행복했던 기억들 중 또 하나를 고른다면 바로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 등 예술 활동을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학점관리, 과제 발표, 시험, 자격증 준비 등 해야할 게 산더미였고 더군다나 그를 위한 환경조차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아칸소에서 식후뿐 아니라, 공강 때도 틈만나면 피아노 치는 걸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부담에서 벗어난 학업생활도 한몫했지만, 잘 갖추어진 환경이 훨씬 큰 이유였다. 여러 기숙사가 1층에 피아노를 갖추고 있었고 식당에도 한 곳, 이를 제외하고도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 학습하지 않을 시간대를 이용해 음악학과 건물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림 그리기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학원을 다니며 잠시 배우던 것들이 기억 속에서 다시 깨어나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유학 생활 동안 나의 새로운 모습도 찾을 수 있었다. 수줍음이 꽤 많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던 나는 수업시간 많은 학우들 앞에서 혼자 질문에 답하는 일이 힘든 과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경험 음악'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클래식 음악들인데. 지금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야.”


교수님은 매시간 그때까지 배웠던 클래식 음악들을 30초씩 틀어주고 작곡가와 곡명을 학생들에게 질문하셨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을 때 내가 5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연이어 맞추었던 적이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이 항상 꼭 정답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를 수 있기 마련이다. 가장 멋진 정답은 아마도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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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lly park in FAYETVILLE, ARKANSAS
가을이면 황금빛 잔디와 나무들의
색 향연이 펼쳐지는 멋진 공원


나의 또 다른 모습 NO.2. 바로 나는 내가 알던 방순이가 아니었다. 방이 제일 편하고 침대가 너무 좋아서 떨어질 줄 몰랐었는데 아칸소에서 생활하며 나는 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방이 좋긴 했지만 뭔지 모를 무기력함이 가끔 느껴지곤 했었는데 이것은 바로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칸소에선 방에 있는 시간이 오히려 적었다.


수업이 끝나도 캠퍼스 벤치에 가만히 앉아 학교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볼 때도 많았고, 교내의 스타벅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교외로 나가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서는 모험도 했다. 이렇게 방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했던 사람과 경험들을 마주하며 나의 하루하루는 풍성함을 더해갔고, 지금으로서 난 나를 침대 좋아하는 방순이가 아니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일상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모험에 마음의 소리를 귀울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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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조금 나와 걷다보면 마주치는 벽화
_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나는 평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자기애가 조금 강하다고 해야 할까. 아칸소에서 좋았던 점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존중해주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내가 국제학생이라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이점을 감안해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이렇게 온전히, 진심으로 환대해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파티에 초대되어 참석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네임텍을 붙이는 관습은 인상 깊게 느꼈던 점 중 하나다. 매 순간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더욱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보통 구두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익숙한데 이렇게 이름표를 붙여 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그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알 수 있으니 정말 좋았다. 마치 어릴 적 소꿉놀이에서
날아온듯한 아날로그적 감성같다고 해야 할까.

아칸소에 오기 전 미국은 선진국이고 아주 큰 나라라고 생각해서 멀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미국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과는 달리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족들과 식사를 마친 후에 다 같이 모여앉아 보드게임을 즐겼던 곳. 그리고 개인주의가 만연할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과 달리, 멀리서도 누군가가 문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으면 서슴없이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배려와 친절이 녹아있던 곳이었다.

선진국이라는 거대한 타이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은 미국. 내가 이처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도나 다른 대도시가 아닌 남부의 아칸소를 유학지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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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기운에 목이 아팠던 나를 위해
CINDY가 준 사탕,
나를 생각해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은
결국 이렇게 또다른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했다


그동안 낯을 많이 가렸던 나도 유학 생활 이후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 처음에 먼저 말을 건네는 걸 아주 쑥스럽게 여겼는데 아칸소에서의 삶은 내게 먼저 다가가는 적극성의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내 인생 첫 외국인 룸메이트 CINDY는 이젠 나에게 단순히 룸메이트를 넘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처음 CINDY를 만났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도 수줍어하며 인사를 건넸고 미국 어디살아, 네가 심리학 책을 여러 권 갖고 있길래 심리학과라고 생각했었어 등 소소한 대화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니 국제학생인 나는 파티나 행사,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자주 늦게 들어가곤 했기 때문에 친구랑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직은 어색하다고 느낄 때쯤 CINDY가 내 쪽으로 와 건넨 말은 아주 뜻밖이었다. 자신이 오늘 오래 방을 비워서 궁금하지 않았냐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해서 몇시간 동안 입원해 있느라 늦었는데 너한테 말해주고 싶었다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친구는 그래도 그동안 날 많이 생각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바쁘고 수줍음이 많다는 핑계를 만들어 친구에게 다가갈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반성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려 했고 그렇게 우리 둘은 지금은 서로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둘도 없는 BEST FRIEND가 될 수 있었다.

만약 사이가 어색했던 그때 친구가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마 친구도 내게 먼저 그런 이야기를 건네기까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순간의 용기와 먼저 다가가는 적극성은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걸 CINDY를 통해 더욱 뼈저리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부족하지만 한층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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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내 풍경, 아칸소의 가을은
수업들으러 가는 찰나의 짧은 시간마저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칸소를 잘 알지 못하고, 여러 외국인 친구들도 그곳에 유학 갔다고 하면 거길 왜 갔어?라는 질문을 많이 하곤 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게 있어 ‘아칸소’는 관계에서의 적극성이 가진 가치를 직접 일깨워주었고, 멋진 시도를 해보자고 결심할 수 있게 만든 신이 내린 선물 같은 곳이다.

두 학기 간의 유학 생활은 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자신을 더 알아가고 찾을 수 있었던 곳, 나를 더 성장시켜 준 아칸소에서의 삶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기가 되지 않을까.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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