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연극 <여전사의 섬>

힘의 폭력에 반대하는 여전사
글 입력 2019.03.0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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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힘의 폭력에 반대하는 여전사
연극 <여전사의 섬>


포스터(여전사의 섬).jpg
 

'여전사.'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여성 영웅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액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남성중심이었던 탓에, '싸우는 여성'을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가 몇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싸우지 않는 대신, '싸우는 남성'의 욕망과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심지어 여성 영웅 영화인 <원더우먼> 조차 아름답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또한 아름다운 여성들이 세계를 구한다. 마치 게임 캐릭터 속 여전사의 몸이 부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여성이 내러티브의 중심이 된 영화를 외모적 한계만을 가지고 평가할 순 없다. 그렇지만 계속 묻고 싶다. 여성은 어떻게 싸우며,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력의 한계를 깨고 싶은 욕망은, 그 근원을 향해 나아간다.

 

아마조네스, 그 강인함을 찾아서


연극 <여전사의 섬>은 '여전사'의 모태인 '아마조네스(Amazones)'에 영감을 받았다. '아마조네스(Amazones)'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 접두사 'A'에 여성의 유방을 의미하는 '마조스(mazos)'가 붙여진 단어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님페 하르모니아의 후손인 이들은, 사냥을 하며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질 때 가슴이 방해가 돼 한쪽 유방을 제거했다고 한다.

아마조네스는 사냥, 달, 처녀의 신인 아르테미스를 숭배했지만, 자손 번영을 위해 1년에 한 번 남자로만 이뤄진 부족 가르가레이(Gargarei)와 결합해 인구를 유지했다. 그런데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여성을 노예로 삼고, 초음파로 태아 성별을 감별하면 여아 낙태가 이루어졌던 상황들. 정확히 반대가 된 상황 또한 끔찍하지만, 이런 세계가 존재했다는 건 '권력'과 '폭력'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해준다.

<여전사의 섬>은 이 신화 이야기를 일상과 연결했다. 극 중 만년 취업준비생 지니는 면접관들의 냉담한 시선과 일방적인 해고로 상처 받는다. 쌍둥이인 하나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의 폭력에 상처 받는다. 둘은 자신들의 상처를 이겨내고자,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나간다. 이들은 엄마가 결코 부서지지 않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여전사이며 여전사의 섬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여전사)를 찾기 위해 떠난다.


"'여전사’는 단순히 싸우는 전사가 아닌,
개인에 따라 고유한 모습을 갖는다.
작품을 통해 폭력에 희생당하며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이 사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임주현 작가




내 속에 있는 아마조네스


연극은 '엄마'를 '여전사'로 내세운다. 통념상 엄마의 '강인함'은 '모성'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 '모성'은 자기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연극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은, '강인함'이 아니라 파괴적이라 한다. 남성의 폭력 앞에서 관계를 유지하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파괴적이듯 말이다. 여기서 새로운 '어머니'의 상이 제시된다. 즉, 폭력에 반대하며 자기 자신을 되찾는 '용기'를 가진 여성이다.

지니와 하나는 누군가를 파괴하기 위해 힘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복수라는 폭력적인 감정을 가지고 '여전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되찾고자 힘을 얻으려 한다. '인간'의 가치를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열망은, '나'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진정한 강인함, 누가 나를 억압할지언정 나는 나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길을 찾아 떠난다.

임주현 작가는, 어렸을 적 무서운 언니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커서 여전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어른이 돼서는 세상에 여전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판타지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현실화됐다.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고발하는 것을 보고, 여전사는 지금 내 옆에 있고 이 사회에 숨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은 동성 간에도 이성 간에도 이루어지는 권력의 문제다. 다만 사회적으로 권력을 쥔 남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훨씬 저질렀기에, 연극은 억압자인 '여성'을 소환했다. 억압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안다. 그래서 투쟁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상상력의 빈곤은 현실적인 상황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이 불어넣는 상상력은 다른 힘을 가질 것이라 믿는다. 폭력에서 벗어나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떠난 둘의 여정이 어떻게 전개될까. 판타지에 영감을 받았지만, 현실성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젊은 여성들의 힘과 서울시 <창작플랫폼>을 믿으며 기대한다.


*


일시
2019.3.21.(목)~3.24.(일)

시간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3시

장소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

작. 임주현

연출. 송정안

출연진
한윤춘 김시영 권태건 윤성원 김원정
허진 오재성 김유민 장석환 이상승

멘토
김광보(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고연옥(작가)

가격
30,000원

연령
14세 이상(중학생 이상)





상세페이지 여전사의섬.jpg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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