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나요? [영화]

글 입력 2019.03.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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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의 의미



지난 금요일은,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외친 거룩한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정확히 딱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100년 전 그날,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선인들의 두 팔은 이내 전국으로 뻗었고, 심지어는 드넓은 만주벌판으로까지 뻗어 한반도를 살굿빛으로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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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가장 당당하게 외친 날이자, 독립을 향한 우리의 깊은 염원을 세상에 알린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길이길이 남을 민주주의와 평화, 비폭력의 정신이 깃든 세기의 독립운동이었고, 종교계의 연대라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준, 그야말로 위대한 날이었다. 태극기의 건곤감리 순서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지난 금요일이 삼일절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삼일절이란, 단순히 그날의 선인들을 추모하는 날이 아닌, 우리 민족의 옛 정신을 일깨우고 그 위대한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하루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삼일절은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간 살면서 맞이했던 모든 1월과 2월이 '방학'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맞이한 3월의 첫 번째 날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한 해가 진짜로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여기까지, 모두가 알 법한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삼일절이 어떤 날인지, 또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에 대해 나를 비롯한 모두가 알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말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삼일절에 내가 영화 '암살'을 보며 들었던 수많은 생각 중 일부이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지금"



영화 '암살'을 보는 내내 자꾸만 속에서 무언가가 들썩였다. 정지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소리 내 울만큼, '암살' 속 인물들에게 주어진 세상은 믿을 수 않을 만큼 가혹했다. 근 30년간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싸워온 독립운동가들 틈에서,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진 것 마냥 함께 하는 '밀정 염석진'은 그 당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현실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민족적인 일을 행할 수밖에 없었음을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독립운동가의 피가 한때 몸속에 끓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밀정이 된다는 것이, 아마 내 상상 속에서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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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최덕문 배우가 연기한 '황덕삼'이라는 인물은 영화를 보는 내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마 그의 모습에서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현실이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겠지.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수많은 총구를 바로 제 눈 앞에 두고도 일본군을 쏘겠다는 일념하나로 상대에게 총을 겨누는 그의 모습이, 이미 머리에 총을 맞아 의식을 잃었지만, 일본군을 향해 미처 던지지 못한 폭탄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놓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 내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다.  의식을 잃었음에도 그 폭탄의 방향이, 그 총구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던 그들의 몸짓을 몇 분, 어쩌면 몇 초 만에 짓밟아버렸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원통했다. 그리고 나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들이 누려야 할 자유를 내가 빼앗았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100년 전 땅속에 묻은 타임캡슐 같다. 그 시절의 추억, 그 시절의 온기, 그 시절의 설렘을 전해주는 타임캡슐처럼, 힘들고 아팠던 과거로부터 선인들이 간직해 온 추억과 온기, 그리고 설렘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만 같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그 타임캡슐의 뚜껑을 완전히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자유'라는 선물을 얻었다. 독립했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불과 몇 년 전 손에 쥐게 된 '자유'라는 선물은 손에 쥐고 있지만 내 것 같지가 않다. 아마 누군가를 대신하여 누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비록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영화 '암살' 속 그들의 모습은 1919년의 그날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밖으로 나가 두 팔을 들고, 폭탄과 총을 들고, 태극기를 휘날렸다. 그렇기 때문에, 삼일절을 비롯한 선인들을 기리는 모든 날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그 시대의 모든 이들을 잠시 추모하는 것,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태극기모양 이모 지를 적음으로써 부끄러움을 잠시 잊어보려는 것, 경험해보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잠시 빌려보는 것, 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잠시'가 이제는 '항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더는, 하루뿐인 유관순 열사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삼일절을 기념하여 태극기를 흔들어봐도,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도,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도,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는 그들에게 닿을 수 없기에. 그러니 더 열심히 기억하자. 그들이 독립운동을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생각했듯이,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또 다른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밖으로 나가 만세를 외치고, 폭탄과 총을 들어 맞서 싸우고, 태극기를 휘날릴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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