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우리가 바로 '전설들'이야

글 입력 2019.03.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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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로 '전설들'이야



글 - 여행작가 노동효



나로서도 앞길을 알 순 없었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서 오는 확신이 있었다. 다음날, 차차와 함께 캄피스모(내국인용 휴양지) 사무실을 찾아갔다.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를 지나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간신히 찾아낸 캄피스모 사무실. 시골 복덕방과 비슷한 분위기의 공간엔 책상 3개와 의자 몇 개 그리고 캐비닛이 전부였다. 담당자는 아프리카계 여인이었는데 무얼 물어보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냥 웃기만 했다. 그 직원이 달랑 한 권밖에 없다는 영문판 캄피스모 안내서를 주어, 내용을 들여다보니 외국인용 가격은 별도였지만 카사(외국인 전용 숙소)보다 저렴했다. 22달러. 아침, 저녁 식사에 맥주 4병, 소프트드링크 4캔까지 무료 제공. 이건 마치 신천지잖아!


우리는 배낭을 꾸린 후 아바나를 떠나 피날데리오주의 캄피스모로 갔다. 야자수로 둘러싸인 수영장, 피부색 다른 꼬맹이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공놀이를 하고, 소녀들은 청년들의 물장난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어른들은 풀장 테두리에 앉아 럼주를 마셨다. 긴 의자에 기대 누운 남녀는 미소를 주고받다가 키스를 하고,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파라솔 그늘 아래서 쉬던 사람들이 몸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몸집 큰 아주머니가 피우는 시가 연기가 허공에 새기던 하얀 문자. VIVE EL MOMENTO(현재를 잡아라!)
 

여기가 쿠바라니, 믿기지 않았다.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가 게릴라 전선을 펼쳐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무장혁명으로 세운 사회주의 국가. 쿠바인의 경우 캄피스모 숙박비가 1천 원, 수영장 이용료는 250원, 우리에게 익숙한 ‘1인당 GDP’로 쿠바인의 삶을 환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쿠바인의 자신감, 자부심은 이런 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자본주의 국가들이 아무리 무역봉쇄를 해도 우린 굶지 않고, 아프지 않고, 놀면서 우리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캄피스모 방문객은 일 년에 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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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는 쿠바에 온 후 처음으로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시가를 파는 사람도, 칵테일을 파는 청년도, “치노!”라며 놀리는 사람도 없었다. 차차는 쿠바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쿠바 청년이 즉석에서 쓴 연애시와 꽃다발을 받고 행복해했다.


“로 아저씨, 고마워요. 쿠바에 이런 데가 있을 줄이야!”


“아마도, 하고 짐작만 했지 나도 여기가 이런 곳인 줄은 몰랐어.”


이틀을 묵은 후 예정대로 비냘레스 인근 캄피스모를 찾아가기로 했다. 비냘레스 중심가는 규모가 작긴 했지만 관광도시답게 아바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대상의 레스토랑, 바, 숙박업소, 택시와 호객꾼들. 광장 근처 건물 아래서 잠깐 쉬는데 건물 안에서 음악이 들렸다. 이 건물은 뭐지? 명패가 붙어 있었다. ‘카사 데 쿨투랄 Casa de Cultural’.


흥겨운 리듬에 이끌려 음악이 나오는 방으로 갔다. 좁은 방에 드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마이크와 앰프가 가득했는데, 연주자들은 중년의 드러머를 제외하면 모두 환갑이 지난 노인들이었다. 방 안을 들여다보는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라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고장난 스피커를 의자 삼아 앉자 드럼소리와 함께 합주가 시작되었다. 한 곡이 지나가고, 두 곡이 지나가고, 세 곡이 지나가고. 연주가 끝났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차차가 말했다. “너무 감동해서 하마터면 울 뻔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고 몇 소절이 지나는데, 갑자기 키보드를 치던 노인이 연주를 멈췄다. 그는 후렴구를 한 옥타브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타를 치던 노인이 옥타브를 올리면 안 된다며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다시 키보드를 치던 노인이 낮은 옥타브로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악보는 없었다. 그들은 기억 속의 노래를 끄집어내 함께 공유할 악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아니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 내 노래를 들어봐 이게 맞다니까!” 노인들 사이의 그 사소한 갈등이 아름다워 보였던 건, 왜일까?


나는 한국의 노인들을 떠올렸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슬픈 진실. 한국의 노인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더 나은 세상을 아직 만들어 드리지 못해서. ‘문화의 집’에 모여 마음 맞는 동무들과 어울려 목청껏 노래하고, 신명 나게 어깨춤을 추는 시간을 누리게 해드리지 못해서. “그게 아니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그 문제가 ‘이념’이 아니라 악보이고 그림이고 놀이인 세상을 아직 만들어 드리지 못해서.


택시를 타고 도심을 빠져나왔다. 비냘레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캄피스모는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초록색 용이 꿈틀대며 휴양지를 감싸고 있는 듯한 공간. 숙소를 배정 받고 수영장으로 가니 20대로 보이는 쿠바 청년들이 크게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근데 음악을 연속으로 틀어두는 게 아니라 플레이, 스톱을 반복하며 춤동작을 바꾸는 게, 마냥 노는 것 같지만 않았다. 카메라까지 있었는데 뮤직비디오 촬영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보잘것없었다. 궁금했다.


“뭐하는 중이니?”


“뮤직비디오를 촬영 중이야!”


“너희 그룹 이름은 뭔데?”


“레헨다리오스(전설들)!”


요엔젤, 후안, 레이로 구성된 3인조 쿠바 그룹이었고, 나오미, 프란키엘, 피터, 마리알리스, 아메드를 비롯한 여덟 명은 뮤직비디오 제작을 도와주러 온 동네친구들이었다. 가난한 음악가들의 열정이 대견스러워 나는 술을 샀고,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그들은 체크아웃을 하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마을에 카사가 있니?”


“우리 집에 형이 쓰던 방이 있어. 지금은 돈 벌러 볼리비아로 가서 방이 비었어.”


“정부 허가를 받아야 되잖아?”


“하하하, 우리 마을은 시골이라서 괜찮아!”


“음, 차차야, 어떡할까? 이틀 예약하고 왔는데, 지금 체크아웃을 한다고 숙박료를 환불 받지는 못해. 그렇지만 왠지 저 친구들을 따라가면 재밌는 일들이 생길 것 같아. 때론 가진 걸 버리고 기회를 좇아야 할 때가 있지. 지금이 딱 그 시점인 것 같아.”


“처음엔 불량한 애들인 줄 알고 불안했는데, 이젠 괜찮아요. 따라가 봐요.”


우리는 이미 결제한 숙소를 내버려둔 채 낯선 쿠바 청년들을 따라나섰다. 버스와 봉고를 갈아타며 가이드북에선 소개되지도 않는 마을에 도착했다. 래퍼인 요엔젤의 집에 짐을 풀었다. 그 후 시간은 마치 쿠바판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모두가 아는 친구들이었고, 친구네 집을 마치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에 사는 요엔젤은 저녁이면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들고 한 블록 떨어진 아메드의 집에서 샤워를 했다. 요엔젤의 집에 묵는 우리도 마찬가지. 처음엔 샤워를 하러 다른 집에 간다는 게 어색했지만, 아메드의 가족들은 우리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처럼 맞아주었다.


친구들의 집에 차례차례 초대를 받아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가족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밤거리를 함께 쏘다녔다. 요엔젤은 나와 차차 곁을 걸으며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스페인어 랩으로 표현했다. 반짝이는 별을 본 후 잠들고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이 깼다.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많은 마을, 매연 대신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말똥 냄새조차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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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나흘 전 우리는 카리브 해변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마을에서 세 시간을 달리면 아름다운 바다였다. 해변과 접한 2층짜리 목조주택 한 채를 통째로 빌렸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긴 했지만 넓은 거실과 방이 네 개나 있는 저택인데 쿠바인이 값을 치르니 하루 6달러에 불과했다. 후안의 어머니가 양념에 재워준 돼지고기를 뒷마당에서 구워 먹고 수영을 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100미터 넘게 들어가도 허리춤밖에 오지 않고, 발가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리브의 바다.


저녁식사는 해변식당에 부탁해서 볶음밥 한 솥을 지어왔다. 와서 보니 식기도구를 챙겨오지 않은 까닭에 퍼 먹을 수가 없었다. 식당은 이미 문 닫은 시간. 난감한 순간, 후안이 주민증을 꺼내 밥을 푸며 랩을 했다. “숟가락이 없으면 주민증으로 퍼 먹으면 돼. 기름이 없으면 마차를 타면 돼. 우리는 쿠바인, 쿠바노니까.” 그러자 요엔젤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며 박자를 넣었다. 내 친구들은 모든 순간, 순간을 노래로 만들었고, 흥겨운 노래 덕분에 맞닥뜨린 고난은 웃음으로 승화되었다. 이것이 쿠바였구나!


떠나기 전날, 친구들은 디스코테카에 가자고 했다. 후안이 나와 차차를 위해 클럽용 의상을 준비했다. 차차를 위해 누이의 옷을, 나를 위해 자신의 옷과 모자를. 우리는 한껏 차려입고 동네 나이트클럽으로 갔다. 토요일 밤의 열기. 시골 나이트클럽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1960년대 아바나의 전성기처럼 화려한 불빛과 멋을 잔뜩 부린 젊은이들의 차림새에 어리둥절할 정도.


그날 밤, 차차와 나는 울고 말았다. 그저 주말이니 클럽에 놀러 가자는 건 줄 알았는데, 실은 친구들이 떠나는 우리들을 위해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DJ를 맡은 피터가 ‘차차’와 ‘로’를 부르며 멘트를 했다. 한국에서 쿠바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온 친구들은 우리의 형제이며 결코 잊지 않을 거라며. 그리곤 비냘레스 캄피스모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 영상을 배경으로 후안, 요엔젤, 레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상은 그날 처음 만나서 우리가 나눈 대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뭐하는 중이니?”


“뮤직비디오를 촬영 중이야!”


“너희 그룹 이름은 뭔데?”


“레헨다리오스(전설들)!”


디스코테카에 온 모든 청춘들이 레헨다리오스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점프를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미처 몰랐는데 ‘레헨다리오스’는 이미 쿠바 TV에도 출연한, 마을 최고의 그룹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후안과 요엔젤이 아바나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는 피날데리오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포옹을 나누고 차 안으로 들어가 좌석에 앉았다. 차창을 통해 우리는 거듭해서 인사를 나눴는데 버스운전사가 시동을 걸자 후안도, 요엔젤도 고개를 돌린 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빨갛게 물든 눈과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아바나로 돌아왔다. 숙소엔 또 다른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차차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쿠바에서 추천할만한 도시는 어디죠? 아바나에서 꼭 봐야 되는 건 뭐죠? 아바나에서 꼭 해야 하는 건 뭐죠? 어느 해변이 제일 좋아요?” 그런 질문에 주춤거리며 대답하던 차차가 사람들이 사라지자 말했다.


“지금껏 나도 늘 먼저 온 여행자에게 했었던 질문인데, 그 질문들이 이젠 모두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게 너무 어색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갔다 온 그 마을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진 않아요. 그 장소만은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란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나라나 한 도시가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하지.”


“로 아저씨,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뭔가요?”


“중남미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단다. 나중에 출판을 하게 되면 읽어보렴.”


“로 아저씨라고 부르다 보니 이름도 몰랐네요. 아저씨, 이름이 뭐죠?”


“내 이름은, 노. 동.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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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남미 히피 로드>

(2019년 4월 15일 발간)의 일부입니다.






노동효



노동효 프로필.jpg



2010년부터 2년간 '장기 체류 후 이동 Long stay & Run'하는 기술을 연마한 후, 한국과 다른 대륙을 2년 주기로 오가며 '장기 체류 후 이동'하는 여행기술을 평생 수련하고 있는 여행가.


EBS세계 테마기행 여행작가.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전직 방랑자였거나 현직 방랑자인 자매, 형제들과 어울려 보낸 800일간의 기억. 방랑의 대륙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가 건져 올린,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를 당신 앞에 내려놓는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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