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지 않을 권리 [도서]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유대없는 인간의 관계 맺기
글 입력 2019.03.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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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유대없는 인간의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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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 현대의 합리성은
가벼운 외투를 추천하고
강철 주형(鑄型)은 비난한다


예측 가능함, 규칙, 반복, 안정이라는 형태를 띠었던 초기 근대와 달리, 현대 사회는 변화, 비규칙, 복잡함, 불안정, '유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급속한 기술의 발전, 욕망을 이리저리 자극하는 광고, 빠른 결제를 촉구하는 소비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끔은 너무 빨리 지나가 판단조차 힘들 때가 있다.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양면성을 포착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는 분명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에 사는 개인들에게 위험을 선사한다. 목적을 향해 인간성을 버리고 달려가는 사람이나, 그 와중에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 모두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지금’ ‘여기’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만 한다. 아는 것은 방어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만은 우리에게 끊임 없이 ‘콜드 팩트’를 던지며 질문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 중, 『리퀴드 러브』는 유동하는 사회의 인간들의 모습과, 그들이 겪는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유동하는 사회의 인간은 특성이 없다. 모든 것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시대는 인간에게 고유한 특성을 만들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빨리 소비하고 빨리 버리기를 원하는 소비 사회에서 인간들은 제 각각 유행하는 이미지를 허겁지겁 소화하고 내뱉는다. 온갖 혼란스러운 신호와 급속한 변화로 가득 차 있는 곳에서 자유롭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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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질에서 실망했다면
양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지속성이 없다면 교체의 신속성이
이를 벌충해줄 것이다.


이를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관계다. 어느 것도 묶여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연대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재간이 없는 인간은 ‘접속’을 통해 얄팍한 연대감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접속은 빠르고, 쉬우며, 문제가 없다. “‘가벼운 외투’처럼 ‘언제든 처분 가능’”하다. 친밀감을 느끼고 상처받기 일보 직전엔 ‘삭제’하면 된다. “유대를 긴밀하게 하려는 동시에 느슨하게 유지하려는 상충적인 욕구”를 가진 현대인에게 아주 합리적인 방식인 셈이다.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 형태는 ‘썸’으로 불린다. 썸의 보편화는 현대인이 얼마나 인스턴트적 관계에서 만족을 느끼는 지를 보여준다.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는 현대인은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찾지만, 아쉽게도 소비사회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기란/대상을 찾기란 어렵다.

따라서 단시간에 만들어 내는 편의점 음식처럼 위험없고 환불 가능한 관계를 선호한다. 썸은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즉각 제공받고, 노력은 하되 땀을 흘릴 필요까진 없고, 결과는 있되 부담스럽지는 않다. 현실의 비루함을 제거하고 말끔하고 능숙한 나의 모습만 보여주는 사용자 친화적인 형태는 우리 입맛에 꼭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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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의 은수 또한, 라면같은 사랑을 했다.


그 사이 섹스는 더욱 순수해진다. 쾌락과 즐거움만 있고 결과에 대해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원나잇 스탠드를 도덕적 잣대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성이 그렇게 해방되는 것은 괜찮은 일이고, 아마 심지어 신나고 너무 멋진 일이기도 했다. 애로점은 중심을 잡기 위한 밸러스트가 사라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고정시키느냐이다”

사랑 없는 섹스는 더욱 휘발성이 강해 금방 잊어버리지만, 어쩐지 그 가벼움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이에 바우만은 안전, 사랑, 영원함, 친족의 지속과 섹스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꼭 우리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모순들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문화적 창의력의 솜씨라고 말하기도 한다.

관계의 가벼움에 피로해진 개인들은 이제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뒤로 물러선다. <선다방>, <하트시그널>, <로맨스 패키지>를 보며 ‘함께 함’의 산업화를 가까이 한다. 연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엄친아’와 ‘엄친딸’이다. 그들은 굳이 TV에 나와 연애 상대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과시하거나 일종의 스펙처럼 출연하는 것에 가깝다. 그들도 시청자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보지 않고, 부담 없이 관음한다.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영역에 연애까지 추가되면서, 사람들은 직접 관계를 맺지 않고 응원하거나 지지하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가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 장면이다.


르 메리무스-인스턴트 Love

그래 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여자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그게 그렇게 쉽니
뭐가 그렇게 쉬워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모든 게 끝이니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는 괴로움이 있다. 사회가 진보했다면, 분명 잃는 것도 있다. 일종의 대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근대적인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은 해결 방법도 아니며 사실 현대인들은 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변화된 시대가 주는 ‘가벼움’이라는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

가벼움은 본질적으로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소비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타인들은 외로운 소비 행위를 함께하는 사람으로 의미를 지니기 쉽다. 우린 이 지독한 자기 소외- 타인 소외가 시대의 산물이기에 개인이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행에 따라 타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책임을 어느 정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순간 순간 어느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가벼움의 시대에서 나름대로의 진지함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깊은 관계를 맺었던 상대와 전화 한통 혹은 카톡으로 헤어짐을 맞이 했던 순간을. 그 순간에는 아무리 관계를 쉽게 맺던 사람이라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관계의 핵심을 책임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에겐 충격의 순간이다. 바우만의 책을 통해 ‘사랑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서로가 희생자가 되는 순간 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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