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이라는 환상을 떠나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도서]

내 삶이 누군가가 설계한 시나리오일 뿐이라면?
글 입력 2019.03.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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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 세상이 누군가가 지켜보고 조작하는 게임이나 시나리오 속의 배경에 불과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영화나 시나리오에서 꾸준히 다뤄지는 흥미롭고 매혹적인 소재이다. 평행 하는 가상의 세계와 그 바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존재라는 주제는 섬뜩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지금부터 소개할 윤이형 소설가의 단편 <피의 일요일>이라는 작품 또한 판타지 게임 속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독자들을 매력적인 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눈앞의 세상은 실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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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피의 일요일>은 ‘판타지 게임 속 세상이 실존한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해, ‘언데드’라는 종족의 게임 캐릭터인 주인공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서 조종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가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기 전 눈을 싸맨 천이 그렇듯, 가장 비참한 종류의 마음의 각오라도 하게 해주는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은 늘 마리오네트의 등 뒤에 달린 피아노 줄을 가볍게 끊어버리는 손가락처럼 툭 하고 왔다. 그러면 나는 얼굴도 팔도 다리도 없이 어둠 속에 깨끗한 무(無)로 주저앉았다.



지금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전 지금 제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요.


“그리고 기억도 사라지지. 우리의 에고도 사라져.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이 남아있지 않게 돼. 어떤 의미에선 짧게 지속되는 죽음이랄 수도 있어.”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게임이 종료되고 난 후에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연결이 끊어진 공간에서 깨어있는 또 다른 존재 ‘마지막마린’을 만나게 된다. 그 공간에서 주인공과 ‘마지막마린’은 어떤 의식도 없고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상태, 즉 로그오프의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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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 속의 게임 세계는 끊임없이 전투해야 하는 워 게임의 판타지 세계이기 때문에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목이 던지는 로그오프 상태 속 게임 캐릭터의 존재에 관한 질문은 현실 세계와 비슷하게 구현된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다른 장르의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마치 모니터 안의 평행 세계 속 일상처럼 느껴지는 게임인 심즈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이 소설은 게임이 종료되고 난 후 캐릭터들의 자의식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이 이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나는 물었다.


“바깥 세계란 뭐죠?”


주인공은 ‘마지막마린’에게서 바깥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게임 세계에서 바깥 세계는 자신들을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있는 현실 세계이다. 게임 캐릭터인 자신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바깥’ 세계. ‘마지막마린’은 로그오프의 어둠 속에서 주인공이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상이 그저 바깥에 있는 초월적인 ‘진짜’ 현실 속에 설치된 무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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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음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야. 저 바깥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는 거야.


우리를 조련하는 것은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에게 이름을 부여한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면 우리를 달리게 만들고 또 재미가 없어지면 갑자기 연결을 끊어서 우리를 이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그들이 우리의 구조를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야. 자신의 뒷모습이 머릿속 화면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이고, 원경으로 우리가 대면하는 상황이 펼쳐지도록. 우린 우리의 머릿속에 든 화면에 갇혀 있는 거야. 그 화면은 사실 우리가 보는 게 아니야. 우리 뒤에 있는 그들이 보는 거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실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야.


게임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삶과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마린’은 보고 느낀 것, 생각하고 행동한 것, 살아 있는 동안 대면한 모든 순간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그들의 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죽음은 영혼 상태로도 게임이 지속되고 심지어 부활할 수도 있는 게임 속 값싼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덧붙인다. 지금까지의 삶이 내 삶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외면한 채 평생 이렇게 살아가는 한,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마지막마린’의 말은 더욱 오싹하게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뒤로 돌아서 그들과 대면해야 해. 그들에게 우리의 화난 얼굴을 보여주어야 해.


‘마지막마린’은 주인공에게 뒤로 돌아 자신들을 조종하는 플레이어와 대면하자고 제안한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자신을 자신으로 만드는 설계된 시스템을 똑바로 응시하고,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알리는 혁명이다. 하지만 어떻게? 만약 내가 게임 속 캐릭터, 혹은 영화 속 인물이라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렌즈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뒤를 돌아보고 난 다음에는? 내가 사는 안락한 환상을 벗어난 다음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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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이대로라면 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멋진 마법사가 되어 살아가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닌가요? 왜 뒤로 돌아야 한다는 거죠?


주인공은 혁명을 말하는 ‘마지막마린’에게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데 왜 사실을 직시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꿈에서 깨어 현실을 바라보는 고통을 감당하는 것보다 현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반응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은유처럼 읽힌다.



지금 내겐 보여, 그들의 얼굴이 보여! 그들이 내 얼굴을 보고 있어, 놀라고 당황하고 있어!


그리고 나도 내 얼굴이 보여!


결국 ‘마지막마린’은 혁명에 성공하고, 세계에서 삭제된다. 그녀와 나눈 대화를 잊은 채 플레이되고 있는 주인공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려움을 느끼지만, 끝내 기억해내지 못하고 게임 속 ‘언데드’로서의 삶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 세계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의 세상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도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소설에서 끊임 없이 반복되는 ‘뒤를 돌아야 한다’라는 정언은 어쩌면 세상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꿈에서 깨어나라는 의미가 아닐까? 사전에서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에 오르는 것을 뜻하는 ‘열반하다’라는 단어의 유의어가 ‘죽다’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바깥 세계를 직시하고 세계에서 영원히 삭제된 ‘마지막마린’의 결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살고 맞닿아 있는 이 현실 세계도 소설 속 게임 세계처럼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상상을 떨쳐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은 내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알 수 없고, 이 세상을 나간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의 반 마디도 채 되지 않는 두께의 짧은 단편이, 순식간에 읽어 내린 것에 비해 너무 긴 시간 나를 생각에 붙들어 놓는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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